허리나 엉덩이, 가슴 등의 모양을 바로 잡아주는 신소재를 개발해 속옷을 제조하고 싶었던 중소기업 A사. 스포츠 용품 중에도 비슷한 것이 출시돼 있기에 제조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보고 개발에 착수하려 했다. 그러나 곧이어 정부(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규제를 통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속옷인데 왜 식약처의 의료관련 규제를 받아야 하느냐는 항변도 소용없었다. 같은 압박밴드 제품인데 스포츠용품은 규제가 없고 속옷은 의료규제에 막혀 제조가 불가능해 지자 A사는 제품 개발을 포기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1일 의료산업의 규제개혁 연구 보고서를 발간하고 관련 산업 규제를 철폐를 주장했다. 싱가포르가 복합리조트 산업과 함께 의료·교육·관광 서비스 규제를 철폐하여 관광객(단기체류 인구)을 늘리고 그로써 경제성장의 도약을 가져가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크기를 불문하고 규제 걸림돌이 너무 많다는 의견이다. 한경연 관계자는 "치료 용도로 제작되지 않은 보정용 속옷을 의료기기로 구분하는 것이 대표적으로 황당한 사례였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호소력있는 좋은 서비스 수출 품목이 의료산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무역협회 고위관계자는 "의료서비스 산업은 우리가 경쟁 우위에 있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변양규 한경연 거시경제실장은 "국내 의료기술은 선진국의 80~90%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경연 조사결과 이밖에도 의료기기인데 공산품과 결합해 제품을 만들려면 다시 의료기기 인증을 받아야 하는 규제, 의료관광을 육성하려 해도 상급종합병원의 외국인 병상 숫자가 5%로 제한돼 있는 규제 등이 산적해 있다. 정부도 과거 윤증현 경제부총리 때부터 병원의 자본력 확충방안 등을 마련하려 했고, 이번 정권 들어서도 대통령 주재 무역투자진흥회의를 통해 의료산업 육성방안을 내놓았지만 정치적 논리로 번번히 실패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의료규제에 관해서는 국정 중심에 있는 당정청이 합심해서 돌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현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