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리허설을 치렀다는 기사를 봤다. 과연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을까 궁금했다"
이해준 감독의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영화 '나의 독재자'는 아버지의 부성애를 그린 뻔한 스토리에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이라는 양념을 더해 특별한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그래서 일까. '나의 독재자'는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이라는 무대 위에서 김일성 역을 소화하기 위해 사상과 이념까지 바꿔버린 한 연극 배우의 이야기에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보편적 공감대를 더해 때론 강렬하면서도 때론 유쾌한 웃음이 녹아 있는 진한 드라마로 완성됐다.
1972년, 열정은 가득했지만 실력은 형편 없었던 무명배우 성근(설경구 분)은 극단 생활 8년 만에 운좋게 리어왕 배역을 맡는다. 성근은 배역을 멋지게 소화해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버리고 만다. 무대 위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대사를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아들에게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여 실의에 빠진 성근, 그런 성근에게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 대역' 오디션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는 지난 날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김일성의 말투부터 제스처 하나까지 필사적으로 몰입한다. 하지만 유신이 선포되고 남북회담은 결국 무산된다.
그토록 고대하던 무대 위에 서지 못한 성근은 이후 자신의 배역을 내려 놓지 못한 채 20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스스로를 김일성이라 믿게 된 성근과 20년 후 어른이 된 아들 태식(박해일 분), 영화는 두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잔잔하면서도 코믹하게 풀어냈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태식은 아버지와 살던 옛 집을 팔아 빚을 청산하기로 마음 먹는다. 아버지로 인해 인생이 꼬여버린 그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이 죽기 보다 싫었지만 오로지 인감 도장을 얻기 위해 성근의 비위를 맞추며 동거를 시작한다.
매일 '혁명위업!'을 외치는 성근 때문에 바람잘 날 없지만 태식은 그런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점차 독재자의 모습 속에 감춰진 성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또 그런 태식 앞에서 자신의 진심을 숨긴 평범한 아버지로 돌아서는 성근의 변화는 보는 이들의 가슴 한구석에 진한 여운과 울림을 선사한다.
영화는 주인공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려는 한 희극인의 삶과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한 아버지의 삶을 동시에 그려냈다.
특히 설경구는 1인 2역을 연기했다고 해도 될 만큼 아버지 성근과 김일성 대역, 각각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여기에 영화 '은교'에서 박해일을 노인으로 변화시킨 바 있는 송종희 분장감독의 특수분장이 더해져 극의 완성도와 몰입도를 높였다. 때문에 20년 후 노년이 된 독재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스크린 속의 배우가 설경구 임을 잊을 정도다.
아울러 태식을 연기한 박해일은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애증을 섬세한 감정연기를 통해 표현했다. 이렇듯 아버지와 아들로 만난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은 특별한 시너지를 발휘하며 극을 탄탄하게 채우고 있다.
다만 극의 후반부에서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장치들을 한 번에 터뜨리려고 하다보니 오히려 개연성이 떨어지는 듯해 다소 아쉬웠지만 성근이 아들 태식에게 선보이는 마지막 무대는 벅찬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러닝타임 127분.
MBN 영상뉴스국 강보미 인턴기자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