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의 '돈풀기' 여파로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국내 증시에 타격을 주고 있다. 수출주를 중심으로 기업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퍼지면서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선 이를 놓고 지난주 엔·달러 환율이 115엔에 다가서면서 바닥을 통과했다는 의견과 국내 증시에 중장기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해석이 함께 나온다.
◆ "기존 정책의 확장판일 뿐…부담 줄 것"
BOJ는 20년간 지속된 디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지난달 추가 양적 완화를 결정했다. 이에 엔·달러 환율이 115엔을 뛰어 오르면서 엔화의 가치가 뚝 떨어졌다. 일본 회사와 경쟁하는 현대차, 기아차, POSCO 등 기업들의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대형주들이 약세를 이어가자 코스피도 미국 경제 지표 호조 등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박스권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양적완화는 일본 금융당국이 추진해온 정책의 확장판이기 때문에 엔저 공포가 시장에 장기간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엔화 약세를 유발한 이번 양적 완화 결정은 기존 정책을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며 "향후 추가적인 정책 기대감을 갖긴 어려워 엔화약세가 이 이상 가파르게 진행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이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통화 정책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두 국가의 금리차이가 커질 경우 엔화를 추가 절하하긴 힘들 것이란 의미다. 일본과 미국의 2년 및 10년 금리차에 해당하는 적정 엔·달러는 95엔 정도로, 현재 엔화는 20엔 가량 저평가 됐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엔화의 평가절하 속도가 느려 조만간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해 상반기 엔·달러 환율은 70엔에서 105엔으로 치솟으면서 기업 이익 악화로 연결됐지만 이번엔 다르다"며 "엔화는 최근 3~4개월 동안 15% 절하되는데 그쳤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기간 원화가 10% 떨어지면서 엔화 약세를 희석시켰다"고 전했다.
◆ "기업 실적에 악영향 줄 수 있어…중장기적으로 봐야"
반면 일본이 추가 양적완화를 추진하면 엔·달러 환율이 내년에 더욱 상승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문정희 KB투자증권 연구원은 "BOJ는 본원통화 공급 및 자산매입을 더 확장할 것이며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증액할 것이라고 밝혔다"며 "일본 경제가 더욱 취약해지면서 통화공급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금융당국이 올해 경제 성장률을 기존 1.0%에서 0.5%로 내려잡으면서 더욱 강도 높은 경기부양책을 시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BOJ는 통화 공급을 연간 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국채 매입도 기존 50조엔에서 80조엔으로 증액할 계획이다.
문 연구원은 "올해 엔·달러 환율은 114엔대를 웃돌았지만 내년 연평균은 116엔 내외를 웃돌 것"이라며 "달러 강세로 당초 예상보다 상승세가 좀 더 이어질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아람 NH농협증권 연구원도 "BOJ의 유동성 공급과 일본 공적연금(BPIF)의 해외 투자 확대로 엔화 약세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며 국내 증시가 단기간 내 반등하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연구원은 "엔화 하락폭이 컸던 만큼 일본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면서도 "원화 대비 엔화 약세가 가파르게 진행돼 우리 증시의 대내외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의 3분기 실적 부진에 이어 4분기에도 세계 수요 회복이 둔화돼 개선 기대감이 크지 않다"며 "보수적인 투자 전략을 세워야한다"고 조언했다.
[매경닷컴 이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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