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분배는 제로섬 게임 아냐” vs "한국은 자수성가형 사회에서 상속의 사회로 변질"
입력 2014-11-04 15:17 

피케티 신드롬을 두고 국내 진보, 보수 진영에서 손꼽히는 경제학자 두 명이 '맞짱토론'을 벌였다. 모두 부가 1%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해석은 엇갈렸다.
4일 숭실대 경제학과의 60주념 기념행사인 '피케티 신드롬과 한국경제 - 어떻게 볼 것인가?'토론회에서 진보진영의 이진순 숭실대교수와 보수진영의 조동근 명지대 교수가 맞붙었다. 상위계층으로 부가 쏠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동의했지만 원인과 처방에 있어서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먼저 이 교수는 "1960년대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우리경제는 소득 등의 유량(flow)이 지배적인 경제였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재벌과 부동산 가격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급속히 저량경제(stock economy)로 전환됐다”고 평가했다. 유량은 일정시간 동안 측정한 흐름을, 저량은 일정시점 쌓아놓은 규모를 의미하는데 연간 소득은 유량으로, 부(富)나 상속은 저량으로 분류된다.
그는 "예전엔 빈부 격차는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의 격차가 아니라, 사업 성공 여부나 조직 내에서의 승진 정도에 크게 의존했다”며 "고도성장기 한국경제는 낙수효과를 통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폭등 이후 토지소유자는 자본가치가 증가했지만, 토지를 보유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부담은 더 증가했다”며 "저량사회에서의 빈부는 진지한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과거로부터의 자산보유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조 교수는 "지금까지 상위 1%로의 '극적인 집중'과 '생활수준의 민주화'가 동시에 이뤄졌다”며 "후자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받아쳤다. 그는 "한 계층의 번영이 다른 계층의 희생을 전제로 달성된 것이 아니라면 불평등 현상은 현대 경제가 성공적으로 성장했다는 징표”라며 "자본주의로 인해 세계가 빈곤·보건·교육 등에서 의미 있는 진보를 이룬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예컨대 김 서방이 돈을 벌어 최 서방이 돈을 못 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피케티는 분배를'제로섬 게임(zero-sum game)'으로 보고 있는게 문제”라며 "'부가가치'의 합인 국민소득(GDP)을 분배하는 것은 고정적인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므로 경제가 성장하면 '정합게임(positive-sum game)'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계층의 희생 없이 전체 계층의 절대적 자원의 크기가 동시에 증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두 사람은 양극화에 대한 처방에서도 갈렸다. 이 교수는 "소득분포 최상위 0.1%에 대해 최고세율 계급을 신설해야 한다”며 "한국이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점을 고려해 피케티가 제안한 80% 보다는, 프랑스나 독일의 50~60% 수준에서 결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제언했다. 또한 그는 "박근혜 정부가 세계사에서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업소득 환류세제'와 고배당 주식 배당소득 원천징수 세율 인하,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선택적 분리과세 등의 정책은 배당소득이 주로 최고소득계층의 소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제2의 부자감세'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정책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은 빈곤문제”라며 "사회 구성원의 '소득분포 구조'가 정책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잘 알려진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는 "문제의 본질은 불평등이 아닌 불공정"이라며 "불공정은 제도적 차원의 문제로 비교적 용이하게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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