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행정수반인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은 민주화 시위대의 요구대로 2017년 행정장관 선거에서 일반 시민의 후보 추천을 허용하면 빈곤층이 선거에서 득세할 수 있다며 수용 불가 방침을 재확인했다.
렁 장관은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내셔널 뉴욕타임스(I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영미권 주요 일간지들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렁 장관이 시위 사태 이후 외신 기자들과 보도를 전제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방안처럼 후보추천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일반 시민이 직접 행정장관 후보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학생들의 요구는 (수용)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렁 장관은 중국의 요구대로 후보추천위원회를 이용해야 광범위한 계층에게 대표권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광범위한 대표권이라는 의미는 숫자상의 대표권이 아니며 만약 전적으로 숫자놀음으로만 간다면 우리는 월 1800달러 미만을 버는 홍콩 인구의 절반에게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면서 빈곤층이 선거 과정 전반에서 득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렁 장관은 "그렇게 되면 결국 그런 류의 정치와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INYT는 렁 장관의 발언에 대해 일반 대중이 홍콩을 잘 통치할 수 있을 것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홍콩 엘리트의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이번 발언이 민주 진영의 새로운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며 시위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FT도 렁 장관의 발언이 홍콩 정부의 시스템이 부자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고 비판하는 이들을 화나게 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자선단체인 '피딩 홍콩'에 따르면 홍콩은 전체 주민 5명 중 1명이 빈곤층으로, 선진국 가운데 빈부 격차가 가장 큰 지역 중 하나다.
이와 함께 렁 장관은 중국 정부가 지금까지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싼 홍콩 소요사태에 개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은 행운이라며 시위대에 "중국 정부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가 홍콩에서 하는 것과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혹은 생각할지도 모르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서 "아직 중국 정부는 상황에 대한 대처를 홍콩 정부에 맡겨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21일 처음으로 열리는 학생시위지도부와 정부 관리들의 대화에 대해서는 "협상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정부에 직접적으로 전달할 기회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렁 장관은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대해서는 "올 하반기에 결정될 예정인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에서 학생시위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절충안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경닷컴 속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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