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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인터뷰] 女 럭비 주장 서미지 “우즈벡전, 꼭 첫 승 합니다”
입력 2014-10-01 06:01  | 수정 2014-10-02 12:00
사진을 찍자는 기자의 말에 어색한 포즈를 취해보는 서미지 선수.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사진=MK스포츠 김세영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김세영 기자] 싱가포르와 조별리그 첫 경기 0-19 패배. 내심 안방에서 아시안게임 첫 승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래도 지난 2010년 광저우대회(5-31 싱가포르 승) 때보다 적은 점수 차로 패했단 사실에 위안을 삼았다. 물론 득점 기회도 있었지만, 상대 수비는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예선 두 번째 경기는 운명의 한일전. 한일전이지만, 일본의 기량은 벌써 저만치 앞서있는 상황이다. 역시나 0-50 완패다. 경기 후 눈물을 훔치던 몇몇 선수들이 걱정스러웠다.
여자럭비팀이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사실은 여러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비록 승리는 없었지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한일전이 끝나고 곧바로 믹스드존으로 내려갔다. 선수들은 이날 하루 3경기씩 치러진 바쁜 예선 일정 탓에 경기 후 컨디션 회복에만 전념했다. 얼음찜질과 함께 다음 경기를 위한 휴식을 취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여유 있게 인터뷰할 시간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주장 서미지(23) 선수가 먼저 믹스드존 쪽으로 걸어 나왔다. 까맣게 그을린 그녀의 얼굴은 패배의 수심보다 옅은 미소를 더 머금고 있었다. 손에는 동료 선수들이 사용한 듯한 물병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그녀를 붙잡고 한일전 소감부터 물었다.
▲일본, 부딪쳐보니 어땠나?
아! 저 오늘 일본전 못 뛰었어요. 첫 경기에서 여기(가슴팍을 가리키며) 갈비뼈를 다쳤어요. 일단 상태가 어떤지 확실히 모르니까…감독님께서 내일 경기가 더 중요하다고 해서 쉬기로 했어요. 그래서 오늘 중국전(3차전)까지 쉬어요. 괜찮은데 더 다치면 내일 못 뛰니까요.
▲첫 아시안게임 출전이다. 소감은?
아시안게임은 처음이에요. 생각보다 긴장감은 덜 했어요. 전에 국제대회 나갈 때가 오히려 더 떨렸죠. 지금은 그래도 나름의 경험이 있고, 선수들과 함께 훈련한 기간이 있어서 자신있어요. 연습게임도 많이 해봤고, 경기 경험도 많이 쌓였어요. 첫 게임치고는 떨리지 않았어요.
▲유력한 1승 상대였던 싱가포르 전이 아쉽다.

자신 있게 경기를 뛰었지만, 첫 경기이다 보니 아무래도 노련미에서 진 것 같아요. 해볼 만한 상대였지만, 첫 게임 이후로 붙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첫 승, 가능할까? 대표팀에게 첫 승이란 뭔가?
간절함이죠. 아직 꿈이 없어진 건 아니에요. 내일 우즈베키스탄과 경기가 있어요. 기회가 없는 게 아니라고요. 내일 경기에서 꼭 첫 승 할 거예요. 지켜봐 주세요.
▲다른 선수들은 첫 경기 끝나고 우는 것 같던데…
주장인 제가 울면 안 되죠. 제가 울면 다른 친구들이 더 속상해할 거예요. 나름대로 선수들이 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모두 잘했다고 생각해요. 아직 기회는 있으니까요.
럭비는 미식축구와 달라 그 흔한 보호장비 하나 없다. 상대방 선수들과 직접 몸끼리 부딪치는 거친 운동이다. 강렬한 몸의 대화(?) 덕분에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다. 4월부터 오로지 아시안게임만을 위해 달려온 그녀의 다리도 온통 멍투성이다. 무릎만 겨우 남기고, 붕대로 칭칭 감은 그녀의 다리가 안쓰럽다.
온통 붕대로 감은 서미지 선수의 다리. 그녀의 고된 훈련 정도를 알 수 있다. 무리한 사진 촬영 요구에도 흔쾌히 응해줬다. 사진=MK스포츠 김세영 기자

▲4월부터 계속 훈련해왔다. 육체적으로 힘든 점은 없나?
물론 있죠. 그렇지만 아시안게임 하나 바라보고 열심히 해왔어요. 부상이야 뭐. 제 다리를 보세요! 다리가 이런데…내일 첫 승만 한다면야 이런 부상쯤 싹 없어질 건데요. 뭘.
▲감독님은 오늘 경기에 대해 별말씀 없으셨나?
(망설이다가) 음.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중국전이 남았으니까. 당연히 우리가 열세겠지만, 지더라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라고 말씀하셨어요.
▲한마디로 외인구단이다. 프로팀도 없이 지원이나 운영방향 같은 것에 아쉬운 점이 있나?
아쉬운 점이야 물론 있지만, 바뀔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바뀌었겠죠? 사실 아쉬운 점이야 많죠. 많아요.
6전 전패. 15득점, 239실점. 한국 여자 럭비대표팀의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성적이다. 지금의 성적도 별반 차이가 없다. 예선통과는 둘째치고 제대로 된 득점으로 첫 승을 해보는 것이 소원이다. 게다가 여자럭비팀은 실업팀 하나 없이 대학생과 예비 사회인으로 구성된 ‘외인부대의 성격이 짙다. 순수 동호인 클럽 2개가 전부다. 지금의 여자 럭비팀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만큼 현실적인 여건이 매우 부실하다. 그에 비하면 남자 럭비팀의 이력은 화려하다.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따내며 아시아 최강팀에 속한다. 한때 광고출연까지 섭렵하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남자 오빠들 팀을 보면 부러운가?
우리도 몇 년 뒤에는 남자선수들처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광저우 때부터) 훈련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예요. 다들 그렇게 말해요. 한국 여자선수들이 결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뒤처지지 않는다고요. 자신 있거든요. 그래도 매번 지는 이유는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들 해요. 지금과 같은 환경이 아니라 꾸준히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어요. 충분히 메달권도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이다. 언젠가 올릴 첫 승을 위해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없나?
(동료들에게) 진짜 이게 끝이 아니야.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까 열심히 하자. 그리고 응원 와주신 분들 너무 감사해요. 아! 이 말 기사에 꼭 실어주세요. 내일은 꼭 첫 승 할 겁니다. 제가 장담합니다(미소). 우즈벡은 해 볼 만해요.
피곤한 몸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한 그녀는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주변에선 팀 내에서 말도 잘하고, 쾌활해서 주장직을 맡았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수줍은 듯 돌아서는 그녀에게 대뜸 물었다. 손에든 물병 바구니가 뭐냐고.
▲(물병 바구니를 가리키며)이게 뭐예요?
아프면 원래 이런 거 해야죠. 동료들을 위해서...(웃음)
첫 경기 싱가포르전을 앞두고 화이팅을 외치는 여자럭비 선수들. 앞으로가 더욱 기대를 모은다. 사진=MK스포츠 김세영 기자

열심히 뛰고 있는 동료선수들을 위해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멋진 주장이다. 멋쩍게 웃으며 돌아서던 그녀는 끝인사도 잊지 않았다. 바쁜 일정 탓에 발길을 돌려 남동럭비장을 빠져나왔다. 저녁 무렵 들려온 소식은 이날 마지막 3차전 중국(0-64 패)과의 경기에서도 완패했다는 사실. 하지만, 그녀의 확신에 찬 대답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그녀가 첫 승을 장담했던 우즈베키스탄(1일 오전 11시 22분)과의 마지막 예선전이 끝나면, 한국 여자 럭비팀의 아시안게임 일정은 거의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제 겨우 시작이다.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또다시 2016년 리우 올림픽을 위해서 구슬땀을 흘릴 그녀들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여자럭비팀의 건승을 빈다.
[ksyreport@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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