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210 김웅용 교수' '김웅용'
IQ가 210으로 알려진 김웅용 교수의 과거 업적이 공개됐습니다.
29일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는 IQ 210의 천재소년 김웅용이 남긴 전설의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김 교수는 4살 때 IQ 테스트에서 210을 기록해 기네스북에 등재됐으며, 4개의 언어를 구사하고 적분 문제를 푸는 등 천재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당시 내가 천재라고 소개돼 신문에 많이 나왔다. 외국에서도 나를 취재하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생후 80일에 걸어 다니고 6개월에 간단한 문장을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세살 때 우리말은 물론 영어와 독일어, 일본어를 읽었으며 5살 때 동경대 학생과 미적분을 풀이하는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취재하러 온)그분들이 우리 집에서 1달에서 2달 정도 묵으면서 내 생활을 찍어갔다. 그때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울 수 있었다"며 "일본에서 취재가 많았고 미국과 독일에서도 취재가 왔다. 그렇게 4개 국어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웅용 교수는 5살에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과학교육과에 입학하고, 초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8살에 건국대학교 이공대학 문리학과를 수료했습니다.
김 교수의 IQ는 아인슈타인과 레오나르도 다빈치보다 높은 수치로 알려져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그는 8살 당시 미항공우주국(NASA) 선임연구원과 책임연구원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고 활동했습니다.
당시 생활에 대해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지 모르고 왜 이렇게 일이 재미없는지 생각했다"며 "행복하기 위해 나사를 그만두었지만, 주변에서는 좋은 직장을 그만 두었다며 이해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김 교수의 담당은 계산 업무. 1970년대 컴퓨터 사용을 할 수 없던 시절 그는 주로 역행렬(행렬식을 거꾸로 만들어서 푸는 것) 풀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김 교수는 "한국에 돌아온 뒤 연구소에 취직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다니고 싶은 연구소를 찾아서 지도교수님의 추천과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갔다. 그런데 대학 졸업장이 없기 때문에 받아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 한국에서 취업을 실패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그래서 대학 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볼 수 없었다"며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이상의 증명서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것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 때 검정고시라는 제도를 알게 되서 초등학교부터 쭉 졸업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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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가 210으로 알려진 김웅용 교수의 과거 업적이 공개됐습니다.
29일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는 IQ 210의 천재소년 김웅용이 남긴 전설의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김 교수는 4살 때 IQ 테스트에서 210을 기록해 기네스북에 등재됐으며, 4개의 언어를 구사하고 적분 문제를 푸는 등 천재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당시 내가 천재라고 소개돼 신문에 많이 나왔다. 외국에서도 나를 취재하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생후 80일에 걸어 다니고 6개월에 간단한 문장을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세살 때 우리말은 물론 영어와 독일어, 일본어를 읽었으며 5살 때 동경대 학생과 미적분을 풀이하는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취재하러 온)그분들이 우리 집에서 1달에서 2달 정도 묵으면서 내 생활을 찍어갔다. 그때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울 수 있었다"며 "일본에서 취재가 많았고 미국과 독일에서도 취재가 왔다. 그렇게 4개 국어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웅용 교수는 5살에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과학교육과에 입학하고, 초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8살에 건국대학교 이공대학 문리학과를 수료했습니다.
김 교수의 IQ는 아인슈타인과 레오나르도 다빈치보다 높은 수치로 알려져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그는 8살 당시 미항공우주국(NASA) 선임연구원과 책임연구원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고 활동했습니다.
당시 생활에 대해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지 모르고 왜 이렇게 일이 재미없는지 생각했다"며 "행복하기 위해 나사를 그만두었지만, 주변에서는 좋은 직장을 그만 두었다며 이해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김 교수의 담당은 계산 업무. 1970년대 컴퓨터 사용을 할 수 없던 시절 그는 주로 역행렬(행렬식을 거꾸로 만들어서 푸는 것) 풀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김 교수는 "한국에 돌아온 뒤 연구소에 취직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다니고 싶은 연구소를 찾아서 지도교수님의 추천과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갔다. 그런데 대학 졸업장이 없기 때문에 받아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 한국에서 취업을 실패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그래서 대학 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볼 수 없었다"며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이상의 증명서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것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 때 검정고시라는 제도를 알게 되서 초등학교부터 쭉 졸업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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