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권리금 보호? 주인이 재건축하면 끝!"
입력 2014-09-25 17:28  | 수정 2014-09-25 20:14
가로수길 전경
"작은 도둑은 막았지만 큰 도둑을 막기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겠어요? 불안하긴 여전해요."
8년째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A빌딩 1층을 임차해 작은 커피숍을 운영 중인 고영우 씨(가명ㆍ45)는 건너편 길 대기업 의류 매장을 가리키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신사역 부근에 위치한 가로수길은 지난 2000년 중반부터 유럽풍 카페와 맛집이 모여 서울 강남의 새로운 문화거리가 됐다.
그러나 맨손으로 상권을 일군 상인들은 월세 부담, 빌딩주 퇴거 요구에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지난 24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상가 임차권 및 권리금 보호 방안을 내놓자 가장 반색을 한 곳도 이곳이다. 현재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라 5년간 임대기간을 보장 받으려면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4억원 이하여야 한다. 에프알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신사역 인근 지역에서 환산보증금이 4억원 이하인 상가 비율은 고작 5.5% 수준.
정부는 이번에 환산보증금 기준을 아예 없애고 모든 상가임대차 계약에 대해 5년 임대기간을 보장키로 했다. 건물주가 바뀌어도 이런 계약을 승계하고 임대인에게는 권리금을 보호할 의무도 부여했다.

5년째 이곳에서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 C씨는 "지난해 힙합그룹 리쌍이 새 건물을 산 후 임대차 계약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해서 이슈가 됐는데 여기선 건물주 바뀌는 게 비일비재한 일"이라며 "앞으로 건물주가 바뀌는 경우에도 계약이 승계된다고 하니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재건축과 대기업 자본의 진출이다. 가로수길이 위치한 지하철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부터 압구정동 현대고 큰길 맞은편 대로변은 이미 3~4년 전 모습이 아니다. 대형 해외 의류 브랜드와 프랜차이즈 음식점, 각종 커피전문점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대기업 중 가장 먼저 가로수길에 둥지를 튼 곳은 LG패션이다. 뒤이어 질스튜어트, TNGT, 편집숍 라움 등이 자리를 잡았다. 가로수길 이면도로 D공인 관계자는 "통상 '컨설팅회사' 등을 통해서 빌딩 주인에게 기존 임차인을 비우고 건물을 통으로 재건축해 새 임차인을 구해 주겠다고 설득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은 건물주가 상가건물을 '구조안전상' 이유로 재건축하거나 철거할 때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전혀 없다.
이번 법 개정안에서도 이런 내용은 '쏙' 빠졌다. 과도한 재산권 침해 등을 우려해서다.
그런데 이 안전이라는 것도 '재건축'사업처럼 안전진단연한이 있는 게 아니다. 5층 이하 빌딩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재건축을 할 수 있다. 모 의류매장이 들어선 건물도 건물주가 "구조안전에 문제가 있어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며 상인들에게 나가지 않으면 영업방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상인들을 내몰았다.
기존 임차인 권리금이 증발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가로수길뿐만 아니라 명동, 신촌 일대 임대료가 폭등하는 것도 이런 재건축에 의해 스타벅스 등 카페, 지오다노 등 옷가게를 들여오는 '풍선효과'다.
홍대상권에 위치한 마포구 서교동 C공인 관계자는 "외식 프랜차이즈 본사들이 상가를 통임차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임대료 상승세가 가파른 탓에 임차인 입장에서는 5년 임차 계약기간을 채우기 쉽지 않다"며 "이번 대책이 시행되기 전 상가 주인이 임대료 인상에 나서면 영세하고 경기를 많이 타는 창업 식당과 주점 업종이 가장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용 기자 / 임영신 기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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