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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AG] 조호성-박태환, 금메달이 아쉽지 않은 ‘한국의 영웅’들
입력 2014-09-24 06:01 
박태환의 레이스는 이제 금메달이 아니어도 큰 감동을 준다. 사진(인천)=옥영화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인천) 이승민 기자] 한국은 그를 강하게 길렀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내보냈을 때, 고작 열다섯살. 미숙하고 떨리던 중학생을 참 무시무시한 첫 무대에 세웠다. 부정출발 실격으로 헤엄도 못 쳐보고 돌아올 때, 소년은 두 시간을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10년 동안, 한국은 많은 대회에서 참 많은 출발대에 박태환(25)을 올렸다.
언제부터였을까, 금메달이 당연해진 이름. 7개의 메달을 목에 건 3관왕, 대회 MVP에 올랐던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이후, 박태환은 줄곧 ‘이겨야 본전인 레인을 헤엄쳤다.
많은 즐거움과 더 많은 감격의 순간을 대한민국에 안겨준 그는 점점 심해지는 부담감을 돌려받았다. 박태환이 가장 힘차고 강력했을 때 넘치는 극성으로 압박감을 보탰던 한국은 정작 그가 조금 지치고 더 힘들어졌을 때, 절실히 필요했던 도움과 이해에선 모자람을 보이기도 했다.
AG 한국 선수 최다 금메달(6개) 주인공으로서 7번째 골드에 도전하기 위해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박태환은 23일까지 3개 종목에서 동메달만 3개를 따냈다.

이제 한국팬들은 ‘잘했다 박태환으로 포탈 검색어 순위를 올리고, 죄송하다”는 그의 말에 괜찮다”고 아우성을 한다. 드디어 한국이 그만큼 자랐다.
23일 한국은 또 다른 전설의 ‘마지막 질주를 지켜봤다.
마흔살 조호성이 인천아시안게임 사이클 트랙 남자 옴니엄 은메달을 따내면서 27년의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는 ‘굿바이 트랙을 달렸다.
"한국 사이클의 전설" 조호성이 은퇴를 예고하고 뛰었던 23일 마지막 AG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사진(인천)=김남구 기자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종합대회 무대에 데뷔했던 조호성은 1999년 세계선수권 3위로 한국 사이클 최초의 기록을 세웠던 스타다. 다섯 번의 아시안게임에서 5개의 금메달을 포함, 7개의 메달을 캐내며 한국 사이클의 중흥을 맨 앞줄에서 이끌었다.
아마선수 은퇴와 4년의 프로 경륜 생활, 그리고 다시 ‘국대의 품격으로 돌아오기 까지 그는 트랙위에선 늘 화려하고 강인했던 선수였다.
조호성은 언젠가 개인적인 영웅으로 자신보다 열다섯살이나 어린 박태환을 꼽았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앞선 자의 두려움, 외로운 레이스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박태환의 고독한 역영에 더 큰 감동을 전해 받았던 것 같다.
조호성은 두 번째 올림픽이던 2000년 시드니대회에서 포인트레이스 4위를 기록했다. 1점차로 올림픽 포디움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전에도 그후에도 없는 한국 사이클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그는 메달만 주목받는 한국 스포츠의 현실에 적잖이 실망했다고 한다.
‘27년 사이클링 최고의 레이스 때, 우리는 마땅한 칭찬과 환호를 보내주지 못했다. 섭섭하고 풀죽었던 비인기종목의 영웅. 14년후 펼쳐진 그의 마지막 레이스에는 가장 뜨거운 찬사와 가장 열렬한 박수가 쏟아지기를... 기억하자. 인천아시아드의 소중한 18번째 은메달이었다.
[chicleo@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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