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지붕 덮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니 마음이 짠합니다. 40년 전 초심으로 돌아가 암흑 속의 횃불이 되겠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은 2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창립 40주년 감사미사와 학술대회를 열었다.
미사 강론에 나선 정의구현사제단 전 대표 전종훈 신부는 "인간이 중심이고 목적인 공동선의 원리를 실현하는 게 교회의 사회적 소명"이라며 "피와 땀, 죽음으로 일군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민생이 무너지고 통일의 꿈이 가로막히는 시대에 초심으로 돌아가 암흑 속의 횃불이 돼야 하는 게 시대적 소명"이라고 밝혔다.
전 신부는 "자신과 돈밖에 모르는 이들이 넘쳐 용산참사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용산참사의 진실 규명이 안 돼 나타난 결과가 세월호 참사인 것처럼 세월호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더 큰 참사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교회가 정치, 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해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라는 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였다"며 "교황의 외침이 있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교회 쇄신에 접목하고자 하는 움직임은커녕 교황의 흔적을 지우려는 안타까움만 감지된다"고 말했다.
그는 "유족의 고통을 위로하려는 이들을, 고통을 이용하는 세력으로 폄하하고 자식이 바닷속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야겠다는 유족에게 양보하라는 추기경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교황과 뜻을 같이해야 할 교구장의 이런 발언은 사제의 첫 마음인 십자가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염수정 추기경을 강하게 비판했다.
나승구 사제단 대표는 "40년이 훌쩍 지나고 또다른 4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강한 압박이 다가와 두렵기도 하다"며 "예수께서 얘기하셨듯이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한 마음과 끓는 열정으로 처음처럼 뚜벅뚜벅 걸어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날 미사에서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와 북한 조선가톨릭교회협회의 축하 메시지도 낭독됐다.
이어 열린 학술대회에서 연세대 박명림 교수는 정치민주화 분야 발제를 통해 "정의구현사제단과 안중근은 한국 천주교에서 사회적 영성과 자기혁신, 공공성의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최고 권력과 맞서야 하는 중요한 사회의제들의 공론화가 사제단에서 시작된 것은 공적 기구와 영역의 역할이 죽어버리고 전문성과 실천이 극도로 불일치하는 비극적 현실을 드러낸다"며 "사제를 사제로 돌아가게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말했다.
김도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인권·정의 분야 발표에서 "폭압적 법질서의 토대를 무너뜨린 사제단의 활동은 저항적 법담론의 근거를 제시하고 법질서 쇄신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공동선에 기초한 정의와 인권의 이론적, 실천적 토대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실체도 없는 통일론에 사로잡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당면과제를 방기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화해 노력 강화, 평화에 대한 공감대 조성,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협력이 필요하다고 사제단에 조언했다.
신앙공동체 '산위의 마을' 박기호 신부는 현장성, 투쟁의 일관성, 복음정신으로 점철된 영성의 순수성,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등을 사제단 40년 활동의 특징으로 꼽았다.
박 신부는 "본당사목을 기본으로 삼는 사제생활에서 시간과 힘을 사제단 활동에 할애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며 "사제단이 광야의 고단한 예언자로서 40년을 가볍게 살지 않았지만 인력과 예산, 집단행동에서 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박 신부는 "예전과 비교할 때 현재 가톨릭교회는 역사상 가장 진보적 성향이 분명한 주교들이 교회를 이끌고 있다"며 사제단은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보고, 사회정의 실현 운동을 영성의 실천 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매경닷컴 속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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