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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M] 삼성전자-정부, 사내유보금 처리 `동상이몽`
입력 2014-09-01 11:46 

[본 기사는 08월 28일(06:02) '레이더M'에 보도 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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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160조원에 육박하는 사내유보금을 무기 삼아 적극적인 인수·합병(M&A) 행보에 나선 가운데 정부 내에선 당혹스런 기류가 감지된다.
최근 삼성전자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로 경쟁력을 강화하기 보다 특정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인수하는 '속전속결' 방식을 선호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이는 최근 사내유보금 과세 카드로 기업들이 보유 현금을 고용창출·시설투자·배당 등에 활용해 국내 경기 활성화에 기여하길 바랬던 정부 측 기대와 다소 어긋나는 행보다.
자본시장에선 사내유보금 처리방향을 두고 정부와 기업이 동상이몽을 꾸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달 들어 미국 사물인터넷(IoT) 개방형 플랫폼 개발업체인 스마트싱스와 미국 공조전문 유통사인 콰이어트사이드 등 2건의 M&A를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이 두 업체를 인수하는데 사용한 금액은 2500억여원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는 스마트싱스를 주력인 모바일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인 사물인터넷 경쟁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인수했고, 콰이어드사이드는 북미시장에서 시스템에어컨 등 공제제품 매출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사들였다. 신규 설비투자와 판로개척 보단 M&A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포석인 셈이다.
삼성전자의 이번 M&A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사내유보금 과세 정책을 야심차게 내놓은 직후 발표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최 부총리는 지난달 16일 취임 직후 기업들의 과도한 사내유보금을 쟁점화했다. 기업들이 돈을 쌓아두고만 있으니 경제활력이 떨어진다는 논리였다. 그는 몇주간 여론을 살펴 이달 초 신규로 누적되는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방침을 공식화했다.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와 배당에 나서 기업유보금이 가계로 흘러들어가게 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국내 최대 기업이자 증시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됐다. 삼성전자의 사내유보금은 국내 기업을 통틀어 가장 많은 158조원으로, 2위인 현대차(114조원)를 40조원 가량 웃돈다.
이에 따라 지난달 31일로 예정됐던 삼성전자의 2분기 확정실적 발표 때 중간배당금 증액이나 자사주 매입과 같은 주주 친화적인 정책이 발표될 거란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삼성전자의 중간배당금은 예년과 다를 바 없는 주당 500원에 그쳤다. 2010년 주당 5000원의 중간배당을 실시하기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배당정책이 퇴보했다는 지적까지 일었다. 기대를 모았던 자사주 매입 방침도 발표되지 않았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유통주식수가 줄어 주가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다.
이후 삼성전자는 기업인수 자금으로 수천억원의 자금을 지출하며, 정부 측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사내유보금을 활용했다. M&A로는 당장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데다, 이들 업체는 모두 미국 기업이라 추가 투자를 실시한다 하더라도 단기간에 국내 가계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결국 사내유보금을 바라보는 정부과 기업의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의 M&A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삼성전자는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M&A로 신수종사업을 발굴하겠다는 의지를 이미 피력한 상태다. 이미 2010년 이후 삼성전자의 연도별M&A 및 지분투자 건수는 매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연도별 관련 건수를 살펴보면 △2010년 1건 △2011년 3건 △2012년 5건 △2013년 7건으로 증가 추이가 뚜렷하다. 올해도 8월까지 3건의 M&A가 단행됐다. 총 19건의 M&A 및 지분투자 중 국내기업과 관련된 투자는 3건에 불과하다. 따라서 향후 사용될 삼성전자의 사내유보금이 국내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채준 서울대 교수(경영학과)는 "정부가 단시간 내 경기활성화를 이끌어내고 싶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면서 "기업 입장에선 경제활성화를 목적으로 사내유보금을 풀 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패러다임이 바뀐 만큼 정부 주도로 경제활성화을 이끌어내려기 보다 정부 역할을 운동장 내 심판으로 한정하는 게 (경제활성화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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