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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보신주의를 깨자] "기술 잘몰라 손쉬운 재무제표만 의존"
입력 2014-08-29 15:46  | 수정 2014-08-29 20:01
■ 기술금융 제동거는 '은행 여신심사부'
건물 단열 기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재료를 개발한 한 중소기업 대표인 김 모씨. 지난해 기술에 대한 특허를 받은 그는 최근 정부의 기술금융 활성화 대책이 나온 후 설비투자 자금을 빌리려고 은행을 찾았다. 김씨는 은행 지점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꼈다. 지점 담당자들이 기술 수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서 최대한 대출해 주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은행 본점으로 대출서류 심사가 올라간 뒤 번번이 거절당했다. 김씨의 신용등급이 낮고 회사 자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기술신용평가를 받아 대출을 받기 위해 기술보증기금을 찾았다. 하지만 기보에서는 "기존에 신용보증기금에서 받은 대출이 있기 때문에 기술평가를 해 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정책금융기관인 신보와 기보에서는 중복 지원이 불가능하다. 또 기보 미거래 기업은 기보에서 기술평가서를 받을 수 없다.
김씨는 "다른 기술평가기관인 나이스와 KED를 통해서 기술평가를 받으려고 했지만 이들 기관의 자료는 은행에서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며 "여전히 대출 받기는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일선 은행 지점에서 기술금융 실적을 올리려고 본점에 대출승인 요청을 해도 거절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금융당국에서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본점 심사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기술금융 대출에서 부실이 나중에 발생하더라도 담당자에 대한 면책과 함께 인사상 불이익이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은행 지점에서는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하지만 최종 대출심사를 하는 은행 본점 심사역들은 여전히 신용등급과 재무제표만 요구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B은행 지점장은 "같은 은행 직원이지만 본점에 대해서 답답하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건전성을 염려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최근 기술기업에 대한 지원을 활성화하자는 분위기와 무관하게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기 일쑤"라고 항변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본점 심사역들이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다는 것. 기술 수준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는 이공계 인력이 절대적으로 적다 보니 재무 상황만을 보며 심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민ㆍ기업ㆍ신한ㆍ하나은행 등 주요 4개 시중은행의 기업여신담당 인력 413명 가운데 이공계 출신은 17명(4.1%)에 그쳤다. 금융ㆍ건설ㆍ부동산ㆍ병원ㆍ식음료ㆍ조선ㆍ해운ㆍ전자ㆍ섬유 등 업종별로 다양한 대출심사를 진행하지만 해당 분야 전문성보다는 상경계 출신의 회계ㆍ재무 전문가로 채웠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뒤늦게 이공계 출신 전문 여신심사역 확보에 나서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식기술금융전담팀을 신설하면서 이공계 석ㆍ박사 출신 인력 채용 절차에 착수했다. 기업은행은 기술평가 전담 인력 10명을 뽑아서 운영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이공계 인력 채용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권 보신주의 타파를 위해 은행권의 혁신ㆍ평가지표를 신설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는데 이 평가지표에 이공계 인력 채용을 반영할 방침이다.
기술력 있는 기업에 대한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방안도 마련 중이다.
이를 위해 은행권이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금융을 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대책이 검토되고 있다. 또 현장에서 은행과 기업이 '관계형 금융'을 통해서 상생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각 지점에 대출에 대한 전결권을 좀 더 확대해 주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계만 기자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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