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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휴먼터치] 차우찬, “나는 아직 더 던지고 싶다”
입력 2014-08-28 07:01  | 수정 2014-08-29 00:32
‘혹사’와 ‘분투’ 사이? 그러나 삼성의 불펜 에이스 차우찬은 “더 많이 던지고 싶다”고 말한다. 사진=MK스포츠 DB
[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전문기자] 차우찬(27)의 이야기를 들으러 간 삼성 더그아웃에서 밴덴헐크가 먼저 큰 목소리를 낸다.
"차우찬! 에브리데이 굿 피처!"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시끌벅적하게 동료를 소개한다.
굿은 건너 뛰고 에브리데이 피처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은 평소 가졌던 의문 때문이다.
‘어깨가 빨리 풀리는 편이고, 빠른 공의 위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불펜 카드로 너무 매력적이다. 선발 자리 싸움에서는 조금 손해를 본 건 아닐까. 몸풀기가 더디고 연투가 힘든 스타일이었다면, 오히려 선발로만 고려됐을지도?
차우찬의 대답은 단호하다.
제가 경쟁에서 밀렸을 뿐입니다. 경험도, 기회도 있었는데, 올시즌 토종 3선발 이내로 선택이 못된 거니까요.”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였다면, 계속 선발 투수로 뛸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경쟁에서 밀리는 거죠. 환경에서 이유를 찾으면 안되고… 내 능력으로 내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는 10승을 세 번이나 해본 투수다. 그 중 두 시즌(2010, 2011년)은 거의 풀 시즌 선발로 던졌다. 그러나 지난해의 전천후 활약에 이어 올해는 셋업맨 붙박이. 못내 아쉬울 법 한데, 차우찬은 지금의 자리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한번 올라가면 많이 던지고 싶거든요. 긴 이닝에 더 자신 있으니까… 필승조로 뛰면서 길게 막는 롤이 주어지는 게 좋습니다. 분명히 팀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고.”
한두 타자 막고 내려와야 할 때는 좀 섭섭하겠지만, 왼손 투수는 어쩔 수 없다. 불펜으로 들어가면, ‘원포인트 쓰임새에 노출이 된다. 그러다보니 연투가 많은 편이다. ‘길게 막아주는 불펜 에이스의 위력을 뽐내면서도 틈틈이 한두 타자를 솎아내러 올라간다. 체력 부담이 걱정스럽다.
더그아웃에 앉아있으면 더 많이 나가고 싶은 걸요. 제가 일주일에 3~4경기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릴리프로서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그렇고… 제 역할이 나설 그림이 그 정도는 나와야 팀이 잘 돌아가는 거죠. 저도 부상이 없고 몸이 좋을 동안, 바짝 던져야 하구요.”
연투 피로를 이겨내는 비결은 ‘숙면 우찬의 힘이다.

잠은 차우찬이죠. 누구랑 붙어도 자신 있습니다.”
‘굿잠 전문가로 팀 내에서 첫손에 꼽히는 차우찬은 베개에 머리를 눕히는 순간, 바로 곯아떨어질 수 있다. 아무리 일찍 잠들었어도 무작정 늦게 일어날 수 있다. ‘꿀잠 덕분에 깨어있는 동안은 누구보다 쌩쌩한 듯.
시즌전 셋업맨으로 보직이 결정됐을 때, 스스로 세웠던 올해의 목표 기록은 50경기 60이닝 10홀드다. 27일 현재 벌써 55경기 64⅔이닝 20홀드. 민망할 정도로 오버페이스?
홀드가 원래 요건이 쉽지 않은 건데, 올해 이렇게 다들 기록이 올라갈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지금 보니 원래 목표가 너무 낮았던 거죠. 그래도 다행히 자부할 만큼 좋은 성적은 됐는데, 평균자책점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아직 4점대인 평균자책점이 마뜩찮은 차우찬은 끝내 목표를 거뜬히 달성한 시즌”이라고 큰소리치지 않는다. 남은 시즌 동안 3점대로 꼭 끌어내리고 비로소 스스로에게 온전히 만족스러운 시즌으로 만들고 싶다.
데이터 보다 주로 직관에 기대서 던지는 타입인 차우찬은 매 순간 자신의 공을 믿는 것이 승부의 포인트다.
데이터를 들이판다고 타자의 약점에 정확하게 던질 컨트롤이 꼭 있는 것도 아니라서… 훈련할 때는 내가 부족한 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죠. 하지만 마운드에 올라가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만 집중합니다.”
위력적인 구위를 가진 파워 피처는 국제대회에서 특히 기대되는 면이 있다.
차우찬은 다음달 개막하는 인천아시안게임의 국가대표 투수. 이미 2013 WBC에서 태극마크의 경험이 있는 그는 번번이 꽤 괜찮은 성적을 내기도 했지만, ‘국제용이라는 단어에는 손사래다.
많이 던진 것도 아닌데 아직 검증됐다는 소리는 못하죠. 믿어주시면 감사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은 대표팀에 좋은 투수들이 많아서 얼만큼의 기회가 올지 잘 모르겠네요.”
그저 주어진 몫은 열심히 해내겠다는 각오뿐이다.
차우찬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류중일 감독이 내세웠던 필승 ‘1+1 전략의 핵심 카드였다. 한템포 앞서 출격해서 한템포 오래 책임지는 두번째 선발 롤을 듬직하게 해내면서 우승 마운드의 일등 공신이 됐다. 사진=MK스포츠 DB
누군가의 코멘트를 전했다. ‘차우찬이 없었다면, 삼성은 작년 한국시리즈를 이기지 못했다
절대 아닙니다. 내가 없었어도 삼성은 우승했습니다. 내가 해낸 몫이 작았다는 게 아니라, 내가 없었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해냈을 겁니다.”
차우찬이 이해하는 경쟁은 그렇다. ‘나만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내가 차지해야 하는 역할을 목표로 온 힘을 쏟아야 하는 게 프로라고 느낀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지만, 특히 학교 다닐 때보다 지금 더 재미있고 운동이 좋습니다. 프로 선수가 돼서 운동하는 게 더 즐거워졌어요. 각자 스스로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 9시즌째, 달려온 길 만큼 앞으로 달려갈 길도 많다.
선수로서의 목표도, 인생의 목표도 미리 세워둔 게 있다”는 차우찬은 그러나 지금은 꺼내놓을 때가 아니다”라고 말을 아낀다. 소중하게 키워가는 꿈이 있는 모양이다.
문득 ‘마이웨이의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가 대중 앞에서 마지막으로 불렀다던 노래가 떠오른다.
‘The Best Is Yet To Come.(최상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차우찬 최고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chicleo@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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