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1초가 빠르게 지나가는 요즘, 본방사수를 외치며 방영일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날은 점점 줄고 있다. 클릭 한 번만으로 지나간 방송을 다운 받고, 언제든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시대다. 모든 것이 빨리 흘러가는 현재, 지난 작품들을 돌아보며 추억을 떠올리고 이를 몰랐던 세대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MBN스타 남우정 기자] 이만큼 고생하기도 힘들다. 연이어 고생이 훤하게 보이는 작품들만 선택하고 있는 이준기 얘기다. 액션은 기본, 사연 많은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 그렇다보니 히어로물 하면 이준기가 떠오르는 것이 당연한 이야기다. 드라마 속 이준기의 생고생 리스트를 정리해봤다.
◇ 가장 호강하던 시절 ‘마이걸
영화 ‘왕의 남자로 스타덤에 오른 이준기가 주연급으로 출연한 첫 드라마는 ‘마이걸이었다. 거짓말쟁이인 주유린(이다혜 분)을 도와주는 서정우 역으로 출연한 이준기는 젊은 20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바람둥이에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주유린 앞에서는 순애보를 자랑하는 캐릭터로 여심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이준기가 맡아던 드라마 속 남자 캐릭터와 비교하면 서정우는 가장 호강했던 캐릭터다. 호텔 창업주의 손자로 나왔던 이준기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재력과 여유를 지닌 캐릭터였다. ‘마이걸에서 그가 고생한 것이라면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를 짝사랑한 마음 고생 뿐이었다.
◇ 이준기 고생 시리즈의 출발 ‘개와 늑대의 시간
2007년 여름 방송됐던 MBC ‘개와 늑대의 시간(이하 ‘개늑시는 ‘왕의 남자와 석류 음료 광고로 ‘여자 보다 예쁜 남자로 불리던 이준기의 이미지를 깨게 해 준 작품이다. 선이 고운 이준기가 액션 연기가 가능하고 처연한 캐릭터를 잘 살릴 수 있다는 것으르 보여줬다.
‘개늑시에서 이준기는 국정원 요원인 이수현으로 분해 한 작품에서만 무려 세 번의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은 부모님에 대한 복수를 위해 국정원 요원이 된 이수현은 마피아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위장으로 조직의 일원이 된다. 하지만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고 자신이 언더 커버 요원이라는 것을 잊고 조직원인 케이로 살아간다. 진짜 조직원으로 나쁜 짓을 하며 경찰과 대립하던 케이는 점차 기억을 찾으면서 혼란을 겪게 된다.
직접 부모의 죽음을 눈 앞에서 보게 된 비운의 캐릭터이며 국정원이 되고 나서도 끊임없이 죽을 위기를 넘겼다. 거기다 기억을 잃으면서 사랑하는 여자를 가장 친한 친구에게 빼앗긴 것도 모자라 그 여자가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의 딸이었다. 이준기는 국정원과 조직원이 보여줄 수 있는 강도 높은 액션신과 1인 2역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덕분에 ‘개늑시는 작품으로도 호평을 받고 시청률까지 상승세를 타는 1석 2조의 효과를 누렸다.
◇ 아버지의 복수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일지매
‘개늑시에서 1인 2역을 해야 했던 이준기는 ‘일지매에서도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인물로 분했다. 부모를 잃고 기억도 잃었으며 부모의 복수를 하는 것까지 닮았다. 다만 시대 배경이 조선시대가 되면서 이준기는 영웅이 되었다.
반정을 통해서 왕이 된 인조는 자신의 동생인 이원호(조민기 분)에게 역모죄를 씌워서 죽였고 이원호의 가족들을 몰살 위기를 겪었다. 그의 아들이 바로 이준기가 연기한 겸이다. 다행히 쇠돌(이문식 분)에 의해 목숨을 구한 겸이는 부모님의 죽음을 목도하고 충격으로 기억을 잃고 겸이가 아닌 용이라는 인물로 살아간다. 기억을 찾고 나서도 연기를 하며 용이로 살아가지만 노비가 되었던 친누나의 죽음 후 양반들을 처벌하는 영웅으로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영웅이 된 후에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그를 끔찍이 아꼈던 양아버지 쇠돌이 그가 위험에 빠지자 자신이 일지매인 척 변장해 대신 죽음을 맞았다.
가족을 모두 잃고 키워준 양아버지까지 잃는 박복한 캐릭터였던 용이는 자신의 이복 형제인 시후(박시후 분)과 이 사실을 모르고 대립까지 하게 된다. 일지매 역을 맡은 이준기가 더 고생한 이유 중 하나는 뜨거운 한여름 날씨와 생방송 촬영 때문이었다. 빡빡한 촬영 스케줄에 홀로 특수제작된 갑옷에 철로 된 마스크까지 쓰고 액션까지 해야 했던 이준기는 결국 촬영 중간에 탈진하고 말았다. 그래도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얻으며 승승장구했다.
◇ 사회비리를 까발린다 ‘히어로
‘일지매이후 2년 만에 브라운관에 돌아온 이준기가 선택한 작품은 ‘히어로였다. 제목부터 히어로물 느낌을 물씬 풍기지만 ‘히어로는 사회 고발성이 짙었던 드라마였다.
삼류잡지의 기자, 도혁 역을 맡은 이준기는 백윤식과 함께 용덕일보를 창간하고 거대 자본을 갖고 있는 대기업이 사주인 대세일보를 향해 계란으로 바위치기식 도전을 해왔다. 소시민인 이준기가 상류 1%의 비리를 까발리는 모습이 현실적이진 않았지만 통쾌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이준기가 맡은 캐릭터는 단순한 신문기자가 아니었다. 뺑소니 사고로 죽은 부모님이 사실은 대세일보의 사주인 최일두(최정우 분)의 사주로 인해 죽었던 것.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준기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마지막회까지 고군분투를 벌여 정의가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전했다.
◇ 이제 귀신들의 한까지 풀어준다? ‘아랑사또전
또 다시 한복을 입고 등장한 이준기는 이번엔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또 은오로 분했다. 귀신 아랑(신민아 분)에 의해 의도치 않게 귀신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그 과정에서 최대감(김용건 분)의 악행을 파헤치게 된다.
판타지 사극이지만 그 안에서도 이준기는 백성들을 물론 귀신들의 원한까지 풀어주는 히어로가 됐다. 물론 이번에도 부모를 잃은 슬픔은 존재한다. 어린 시절 갑자기 사라진 어머니는 악귀에게 몸을 빼앗겼고 결국 이준기는 직접 어머니를 죽여야 하는 비운이 운명이었다.
그럼에도 다른 캐릭터에 비하면 사또라는 신분이 그를 여유롭게 만들었다. 귀신과 사랑에 빠지며 이별의 순간을 맞았으나 환생해 결국 사랑까지 쟁취하며 해피엔딩을 알렸다.
◇ 딸 생기니 고생도 두 배 ‘투윅스
딸을 가진 아버지의 역할, 만년 청춘 같았던 이준기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투윅스에서 이준기는 절절한 부성애를 보여줬다. 여주인공도 아닌 딸 이채미와 환상의 케미를 보여주며 여느 멜로드라마 못지않은 애절함을 선사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의고 조직폭력배로 살아온 장태산(이준기 분)은 조직의 보스를 대신해 감옥에 수감됐고 첫사랑인 인혜(박하선 분)와 이별을 겪었다. 하지만 8년 만에 인혜와 재회한 장태산은 자신에게 딸이 있고 그 딸이 백혈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에 딸에게 골수를 기증하기 2주 전 살인 누명을 쓰면서 도망자 신세가 되고 이 과정에서 부패한 권력의 모습을 보게 되고 이를 파헤치기까지 한다.
‘투윅스에선 그 동안 이준기가 여러 작품에서 보여줬던 고생의 끝을 보여줬다. 탈주자가 된 이후로 그는 분장은 기본, 산속을 질주하고 차에 뛰어들었고 심지어 총에 맞아 계곡에서 떨어지기까지 한다. 멋있어 보이는 액션이 아니라 생존 액션이었다. 매회 조직의 보스인 문일석(조민기 분)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통해 쫄긴한 긴장감을 선사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 이준기 공식의 집대성 ‘조선총잡이
현재 방영 중인 KBS2 ‘조선총잡이는 이준기의 드라마 공식이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걸‘히어로를 제외하곤 여름 드라마에만 출연해 왔던 이준기답게 이번에도 여름에 돌아왔다. 그것도 칼도 아닌 총으로 하는 액션 연기까지 펼쳐야한다.
박복팔자 캐릭터 담당답게 이번에도 아버지를 잃었고 죽은 아버지에겐 역모죄 누명이 씌워졌다. 이로 인해 동생은 노비가 됐다. ‘개늑시 ‘일지매에서 신분을 위조했듯이 이번엔 개화기 시대에 맞게 일본인 한조로 위장했다. 아버지의 복수에 성공했지만 백성들이 삶을 알고 민중의 영웅으로 거듭났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의 액션이다. 그 동안 이준기는 현대극에선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니고 사극에선 도포를 휘날리며 칼을 썼다. 하지만 ‘조선총잡이에선 칼은 기본이요 총까지 쏴야한다. 총잡이 역할답게 이준기는 매회 총을 자유자제로 돌리며 묘기까지 선보이고 있다.
실제로 이준기는 ‘조선총잡이를 촬영하면서 4주 만에 한번 집에 들어갈 정도로 바쁜 스케줄에 치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열정 덕분에 조선의 히어로물인 ‘조선총잡이는 치열한 수목극 사이에서 시청률 1위 자리를 유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스스로도 히어로물이 자신에게 특화된 장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준기 장르로 불리길 희망하듯이 히어로물에서 이준기는 대체 불가능한 배우가 됐다.
남우정 기자 ujungnam@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