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성소수자들을 위한 사회적 외침? 그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면 결코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인생이야기입니다. 게다가 배꼽 빠지게 웃을 수 있는 유쾌한 공연인데,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어요?”
이는 한국 초연 뮤지컬 ‘프리실라의 출연 배우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뮤지컬 ‘프리실라는 그만큼 소재만으로 멀리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다. 단순히 성소수자들의 설움을 대변한다거나 ‘그들만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여긴다면 명백한 오산이다. ‘수박 겉핥기로 봤다간 아주 특별한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되는 셈이다.
최근 ‘프리실라의 매혹적인 ‘버나뎃인 고영빈을 만났다. ‘버나뎃은 지금은 퇴물이 되어버린 왕년의 드랙퀸(Drag Queen, 여장남자) 스타. 배우자를 잃고 상실감에 빠졌지만 특유의 유쾌하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슬픔을 벗어던지고 ‘절친들과 긴 여정을 떠나게 되면서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된다.
‘버나뎃에 대한 첫인상을 묻자, 그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사실 원작 그대로 간다고 하면, ‘버나뎃은 내가 캐스팅되면 안 되는 캐릭터”라고 답했다.
그가 그렇게 대답할 만도 한 것이 원작 ‘프리실라 속 버나뎃은 무려 60세에 가까운, ‘할머니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캐릭터다. 세 명의 주인공 가운데 음악적인 분량은 가장 적으면서, 연기적인 부분이 가장 강조되는 인물.
고영빈과 트리플 캐스팅된 조성하는 48세, 뮤지컬 경험은 없지만 연기적으로는 가장 베테랑. 34세 김다현은 고영빈과는 또래지만 ‘여장 전문 배우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여성 캐릭터의 달인 격이다. 연령뿐만 아니라, 그간 유독 진지하고 남성적인 역할을 많이 해온 고영빈에게 ‘버나뎃은 입기란 굉장히 어려운 과제였다.
작품을 선택하기 전까지는 고민이 참 많았죠. 작품에 대한 편견(?)부터 제 캐릭터에 대한 부분들까지요. 그런데 막상 결심하고 나니 걱정할 게 아니더라고요. 꼭 할머니 역할을 할 필요도, 성소주자의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었어요. 캐릭터는 설득력 있게, 작품은 즐겁게 표현되면 되잖아요? 나의 장점들을 입힌 ‘버나뎃은 자연스럽게 나만의 ‘버나뎃이 되는 거죠. 진실한 모습만이 관객들에게 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는 고영빈표 ‘버나뎃을 만들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했다. 트랜스젠더들을 직접 만나기도 하고 이들의 무대를 주의 깊게 감상했다. 주변의 여성들을 그 어느 때보다 자세히 관찰했고 다양한 책들도 찾아봤다. 하지만 가장 큰 답은 대본 그 자체에 있었다고.
이 작품이 정말 명작인 건, 배우들이 특별히 재해석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추구하는 메시지에 완벽하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거예요. 성소수자들이 등장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다만 그런 갖가지 고통들을 성소수자들이 가진 특유의 위트와 유쾌함으로 희화시키죠. 이들이 가진 밝고 긍정적이고 에너지를 아주 완벽하게 접목시키고 있어요. 저절로 ‘힐링될 수밖에 없죠.”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그가 솔직히 살면서 성소주자만 힘든 건 아니잖아요? 누구나 나름대로의 고통과 고민이 있죠. 다만 편견 때문에 애초에 마음을 닫아버리는 거에요. 참 안타깝죠”라고 운을 뗐다.
개인적으로 ‘프리실라를 통해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인생은 어차피 다 똑같으니까.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웃으며 자신들의 길을 가는 사람들, 진짜 사랑을 할 줄 아는 이들을 보면서 새삼 힘이 났어요. 많은 분들이 가벼움 속에 숨겨진, 웃음 뒤에 찾아오는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해요.”
작품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졌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표현한다는 건 애착만으로는 부족하다. ‘트랜스젠더라는 소재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서는 그만큼 배우들의 자연스럽게 여자로 다다가야 했다.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아야 온전히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장 남자? 트랜스 젠더? 여자가 되고 싶은, 사실은 남자? 처음엔 저 스스로도 어떤 정의를 내리지 못해 모호함이 있었는데 결론은 그냥 ‘여자 였어요”라고 설명했다.
‘00인 듯한 여자, ‘00를 한 여자 등의 수식어는 필요치 않았어요. 그냥 ‘여자면 되는 거였어요. 몸가짐 행동 하나 하나에 신경을 썼죠.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들의 욕구, 여자들의 우정 방식, 사랑 등에 대한 다양한 감성들도 입혀야 했어요. 시종일관 몸을 긴장하고 있다 보니 힘들기도 했지만, 그 조차 여자들이 겪는 고통이라고 생각하니 감당이 되더라고요. 여자분들 대단해! 독해…하하!”
그가 처음의 점잖은 모습을 넘어 어느 새 여자처럼 ‘종알대기를 시작하더니, 솔직히 ‘버나뎃 이 언니, 성격도 좀 독특해요”라고 이어갔다. 한층 업된 표정이다.
‘버나뎃은 용감하면서도 여성스럽고, 푼수 같으면서도 엄마 같은 인자함이 있어요. 공주병도 좀 있는 것 같고…캐릭터의 겉모습, 둘러싸고 있는 표면에만 집착했다면 이해가 훨씬 느렸을 거에요. 대본을 보면 그녀의 내면, 깔려 있는 진심이 아주 잘 표현돼있거든요? 제가 그녀에게 공감하기 시작하니 저절로 ‘버나뎃이 되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신기하죠?”
배우들의 호연 덕분일까? 자극적인 첫 만남에도 불구, ‘프리실라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걸쭉한 성적 농담과 욕설도 거부감 없이 즐기게 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편견에 물러서지 않는 이들은 결국 사랑도, 가족애도, 꿈도 찾는다.
우리 배우들은 이렇게 즐기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데…사실 관객들은 어떨지 걱정도 좀 됐어요. 더군다나 전 무대에서 단 한 번도 관객을 웃겨본 적도 웃어본 적도 없거든요~ 하하! 막상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니 얼떨떨했어요. 첫 인상은 다소 거리감이 있었을지 몰라도 대부분 공연을 본 사람들의 평은 너무 좋아서 자신감도 생겼고요. 행복할 따름입니다.”
한편, 뮤지컬 ‘프리실라는 여장남자 ‘드랙퀸(Drag Queen)의 이야기를 80~90년대의 히트팝 을 배경으로 신나는 무대로 선보인다. 마돈나, 신디 로퍼 등의 세계적인 히트팝과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삽입곡 등 국내 관객들 귀에 친숙한 곡들이 쓰였다. 대신 수백개에 달하는 총천연색 의상과 가발, 색정적인 남자의 몸의 아름다움, 수준급 앙상블까지 조화를 이뤄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9월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kiki2022@mk.co.kr
성소수자들을 위한 사회적 외침? 그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면 결코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인생이야기입니다. 게다가 배꼽 빠지게 웃을 수 있는 유쾌한 공연인데,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어요?”
이는 한국 초연 뮤지컬 ‘프리실라의 출연 배우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뮤지컬 ‘프리실라는 그만큼 소재만으로 멀리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다. 단순히 성소수자들의 설움을 대변한다거나 ‘그들만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여긴다면 명백한 오산이다. ‘수박 겉핥기로 봤다간 아주 특별한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되는 셈이다.
최근 ‘프리실라의 매혹적인 ‘버나뎃인 고영빈을 만났다. ‘버나뎃은 지금은 퇴물이 되어버린 왕년의 드랙퀸(Drag Queen, 여장남자) 스타. 배우자를 잃고 상실감에 빠졌지만 특유의 유쾌하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슬픔을 벗어던지고 ‘절친들과 긴 여정을 떠나게 되면서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된다.
‘버나뎃에 대한 첫인상을 묻자, 그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사실 원작 그대로 간다고 하면, ‘버나뎃은 내가 캐스팅되면 안 되는 캐릭터”라고 답했다.
그가 그렇게 대답할 만도 한 것이 원작 ‘프리실라 속 버나뎃은 무려 60세에 가까운, ‘할머니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캐릭터다. 세 명의 주인공 가운데 음악적인 분량은 가장 적으면서, 연기적인 부분이 가장 강조되는 인물.
고영빈과 트리플 캐스팅된 조성하는 48세, 뮤지컬 경험은 없지만 연기적으로는 가장 베테랑. 34세 김다현은 고영빈과는 또래지만 ‘여장 전문 배우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여성 캐릭터의 달인 격이다. 연령뿐만 아니라, 그간 유독 진지하고 남성적인 역할을 많이 해온 고영빈에게 ‘버나뎃은 입기란 굉장히 어려운 과제였다.
작품을 선택하기 전까지는 고민이 참 많았죠. 작품에 대한 편견(?)부터 제 캐릭터에 대한 부분들까지요. 그런데 막상 결심하고 나니 걱정할 게 아니더라고요. 꼭 할머니 역할을 할 필요도, 성소주자의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었어요. 캐릭터는 설득력 있게, 작품은 즐겁게 표현되면 되잖아요? 나의 장점들을 입힌 ‘버나뎃은 자연스럽게 나만의 ‘버나뎃이 되는 거죠. 진실한 모습만이 관객들에게 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는 고영빈표 ‘버나뎃을 만들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했다. 트랜스젠더들을 직접 만나기도 하고 이들의 무대를 주의 깊게 감상했다. 주변의 여성들을 그 어느 때보다 자세히 관찰했고 다양한 책들도 찾아봤다. 하지만 가장 큰 답은 대본 그 자체에 있었다고.
이 작품이 정말 명작인 건, 배우들이 특별히 재해석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추구하는 메시지에 완벽하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거예요. 성소수자들이 등장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다만 그런 갖가지 고통들을 성소수자들이 가진 특유의 위트와 유쾌함으로 희화시키죠. 이들이 가진 밝고 긍정적이고 에너지를 아주 완벽하게 접목시키고 있어요. 저절로 ‘힐링될 수밖에 없죠.”
개인적으로 ‘프리실라를 통해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인생은 어차피 다 똑같으니까.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웃으며 자신들의 길을 가는 사람들, 진짜 사랑을 할 줄 아는 이들을 보면서 새삼 힘이 났어요. 많은 분들이 가벼움 속에 숨겨진, 웃음 뒤에 찾아오는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해요.”
작품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졌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표현한다는 건 애착만으로는 부족하다. ‘트랜스젠더라는 소재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서는 그만큼 배우들의 자연스럽게 여자로 다다가야 했다.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아야 온전히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장 남자? 트랜스 젠더? 여자가 되고 싶은, 사실은 남자? 처음엔 저 스스로도 어떤 정의를 내리지 못해 모호함이 있었는데 결론은 그냥 ‘여자 였어요”라고 설명했다.
‘00인 듯한 여자, ‘00를 한 여자 등의 수식어는 필요치 않았어요. 그냥 ‘여자면 되는 거였어요. 몸가짐 행동 하나 하나에 신경을 썼죠.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들의 욕구, 여자들의 우정 방식, 사랑 등에 대한 다양한 감성들도 입혀야 했어요. 시종일관 몸을 긴장하고 있다 보니 힘들기도 했지만, 그 조차 여자들이 겪는 고통이라고 생각하니 감당이 되더라고요. 여자분들 대단해! 독해…하하!”
그가 처음의 점잖은 모습을 넘어 어느 새 여자처럼 ‘종알대기를 시작하더니, 솔직히 ‘버나뎃 이 언니, 성격도 좀 독특해요”라고 이어갔다. 한층 업된 표정이다.
‘버나뎃은 용감하면서도 여성스럽고, 푼수 같으면서도 엄마 같은 인자함이 있어요. 공주병도 좀 있는 것 같고…캐릭터의 겉모습, 둘러싸고 있는 표면에만 집착했다면 이해가 훨씬 느렸을 거에요. 대본을 보면 그녀의 내면, 깔려 있는 진심이 아주 잘 표현돼있거든요? 제가 그녀에게 공감하기 시작하니 저절로 ‘버나뎃이 되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신기하죠?”
배우들의 호연 덕분일까? 자극적인 첫 만남에도 불구, ‘프리실라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걸쭉한 성적 농담과 욕설도 거부감 없이 즐기게 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편견에 물러서지 않는 이들은 결국 사랑도, 가족애도, 꿈도 찾는다.
우리 배우들은 이렇게 즐기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데…사실 관객들은 어떨지 걱정도 좀 됐어요. 더군다나 전 무대에서 단 한 번도 관객을 웃겨본 적도 웃어본 적도 없거든요~ 하하! 막상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니 얼떨떨했어요. 첫 인상은 다소 거리감이 있었을지 몰라도 대부분 공연을 본 사람들의 평은 너무 좋아서 자신감도 생겼고요. 행복할 따름입니다.”
한편, 뮤지컬 ‘프리실라는 여장남자 ‘드랙퀸(Drag Queen)의 이야기를 80~90년대의 히트팝 을 배경으로 신나는 무대로 선보인다. 마돈나, 신디 로퍼 등의 세계적인 히트팝과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삽입곡 등 국내 관객들 귀에 친숙한 곡들이 쓰였다. 대신 수백개에 달하는 총천연색 의상과 가발, 색정적인 남자의 몸의 아름다움, 수준급 앙상블까지 조화를 이뤄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9월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