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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희의 에딘버러 프린지페스티벌 리포트⑨] 1947년에 시작됐지만 아직도 발전하는 ‘젊은 축제’
입력 2014-08-15 13:54 
무료로 배포되는 프린지 공연 안내서와 포스터들(좌) 거리홍보 공연 포스터

빨간 자동차가 삐요삐요. 내가 먼저 가야해요. 삐요삐요”
비가비팀의 귀염둥이 서현이가 규진이의 손을 잡고 신나게 노래 부른다. 4살짜리 현이는 비가비에서 무예의 여신역을 맡고 있는 조주희 무용선생님의 아들이고, 15살 규진이는 사랑하는 나의 딸이다.

오늘은 비가비 공연 전에 일찍 시내로 나가 현이와 규진이를 위해 어린이극을 보기로 했다. 어린이극이라 해도 나이차가 많아 서로 다른 극을 보여주려고 했으나 그냥 현이의 눈높이에 맞춰 같은 공연을 보기로 했다. 공연안내서에 소개된 어린이극들 중 현이와 규진이가 고른 것은 극단 하땅세의 브러쉬라는 작품이다. 아마도 한국문화원 행사에서 본 5분의 쇼케이스가 인상에 남은 것 같다.

공연을 보고 난 후 비가비 공연 리허설 시간에 맞춰 어쿠스틱뮤직센터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공연안내서를 보며 다음에 볼 공연을 또 하나 찾아보았다. 매일 비가비 공연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 다른 공연들을 볼 수 있는 것은 프린지가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본 공연에서 아코디언과 실로폰으로 연주되었던 아름답고 서정적인 극음악이 귀에 남아 동심으로 돌아간 듯 환하게 미소 짓는다.


[MBN스타]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비공식적으로 1947년에 시작되었다고 하니 올해로 67년이 된 셈이다. 1957년 해를 거듭할수록 프린지에 참여하는 공연단체가 늘어나고 이들 사이에서 교류와 협의가 진행되면서 페스티벌 프린지협회가 결성된 시점을 본격적인 시작으로 본다면 57년이 되었다. 67년이든, 57년이든 정말 오래된 축제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프린지를 오래되어 구태의연한 축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오래된 축제는 아직도 젊은이의 터질 듯 생생한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무료로 배포되는 프린지 공연 안내서(좌) 코미디 장르 공연 홍보물
그러나 하나씩 깊게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소홀한 부분 없이 매우 치밀하게 짜여 있는 여러 시스템에서 프린지만의 오랜 연륜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루어졌을 축제의 시스템들은 참가자나 관객이 그 시스템 안에서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유도한다. 마치 백화점에서 고객들의 편의에 맞춰 배치해놓은 듯 보이는 매장들이 실은 고객들의 동선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좀 더 오래 머무르고 더 많이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해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우선 프린지 기간 동안 어디서든 쉽게 무료로 얻을 수 있는 공연안내서에는 이곳을 처음 찾는 관광객들도 극장의 위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지도가 함께 들어 있어 꼭꼭 숨어 있는 프린지의 여러 공연장을 찾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올해는 3000개 이상의 공연이 소개되어 거의 지역 전화번호부와 같은 두께이지만 총 10개의 장르로 나누어 관객들이 공연을 선택하기가 수월하다. 태권타악퍼포먼스 비가비처럼 움직임이 활발한 퍼포먼스들은 댄스와 신체극 장르에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아동극, 매년 가장 많은 공연팀들이 참여하는 코미디, 서커스, 뮤지컬과 오페라, 클래식부터 팝송까지 다양한 연주가 이루어지는 뮤직, 재담, 정극 등 우리가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르의 공연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공연보러가는 규진이와 서현이
공연을 위주로 보기 위해 프린지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원하는 장르의 공연들을 시간대별로 연결해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어린이들이 함께 있는 가족단위의 관객들은 오전 시간에 어린이극을 보고 오후에 쇼핑을 하거나 관광지를 찾은 후 밤에는 어른들을 위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기도 하다. 이것은 다양한 장르의 수천개의 공연들을 여러 시간대로 치밀하게 계산하여 구성하였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놀이동산에 가서 지도를 들고 어떤 놀이기구를 먼저 탈 것인지 정하는 것처럼 프린지에서는 공연안내서를 들고 공연들을 어떤 순서로 볼 것인지를 정한다.

또 매스컴에서 주는 별점이나 관객들의 리뷰와 같은 평가시스템은 실험극이 많은 프린지에서 관객들이 공연을 선택할 때 강력한 조언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프린지의 별점은 매우 공정한 평가를 통해 얻게 된다는 것을 공연자나 관객들이 모두 인정하게 만든 것도 프린지가 지닌 시스템의 힘이라 할 수 있다. 관객들의 리뷰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연의 티켓을 구매한 회원만 쓸 수 있게 되어 있어 리뷰가 지닌 공정성도 매우 크게 평가받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에딘버러 프린지의 성공적인 시스템이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어 이제는 프린지가 세계화되었다는 점이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는 1970년대부터 ‘오프라는 명칭으로 프린지와 동일한 시스템의 공연들이 선보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1982년 캐나다 알베르타 지역에서 에드몬튼 프린지 페스티벌이 창설된 이래 밴쿠버, 빅토리아, 위니펙, 토론토, 섹서툰, 몬트리올, 올랜도 등 북미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고 있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안내지도
오래된 축제로 기본과 원칙을 지켜가면서도 꾸준히 변화되어 가는 프린지는 여전히 젊고 생생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이 축제에도 해당된다면 프린지는 스무살 청년임에 틀림없다.

공연 포스터들


성상희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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