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매력 있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다수 등장합니다. 이 캐릭터는 관객을 울리기도, 웃기기도 하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런 캐릭터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 ‘가상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가상인터뷰는 극중 캐릭터의 설정을 반영한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의 생각과는 무관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편집자 주>
[MBN스타 손진아 기자] 전세계 명장들은 말한다. 그는 호걸(豪傑)이고, 성웅(聖雄)이라고. 충무공 이순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1597년 임진왜란 6년, 조선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했다.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됐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 뿐이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였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 장군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바다를 향해 나섰다.
12척의 조선 대(對) 330척의 왜군. 이미 승패가 예견됐다는 말에도 이순신 장군은 남아 있는 12척의 배로 지형적 환경과 치밀한 전술을 이용해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조선의 해상권을 회복했다.
이는 바로 이순신 장군의 대표적 전투, 거북선 없이 출전해 커다란 승리를 거둔 전쟁 명량대첩(鳴梁大捷)이다.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 명량대첩, 이순신 장군의 지혜도 빛을 발했지만 그를 보필하던 사람들의 공(功)도 위대했다.
손진아 기자(이하 손): 이렇게 만나게 돼서 너무 영광입니다. 명량대첩은 정말 어려운 싸움이었을 것 같아요. 사실 12척과 330척 배의 싸움은 누가 봐도 무리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이순신(이하 이): 모두들 그 전투를 반대했죠. 하지만 필생즉사 사필즉생(必生卽死 死必卽生)이라 했거늘,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각오로 뛰어들었죠. 결코 백성을 포기할 수 없었고, 바다를 버리는 건 조선을 버리는 거였으니까요.
손: 그래도 두려움은 존재했죠?
이: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어요. 지형적 환경을 이용하고 점점 커지는 내 용기를 믿었고, 절 따르는 자들 역시 믿었어요.
손: 장군님을 보필하던 많은 분들 때문에 더 든든했을 것 같아요. 승리에 대한 확신도 커져갔을 것 같고요.
이: 처음엔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고 반대했었어요. 하지만 결국 따라와 주었고, 그들이 없었다면 그 바다 위에서 환하게 웃지 못했을 지도 몰라요. 하하. 이 기회에 날 보필하던 몇 명을 소개해주고 싶네요.
손: 정말 좋은 생각 같아요. 저도 그들에 대해 궁금했고, 알고 싶었거든요.
이: 먼저 안위는 명량대첩에서 선봉장에 나섰던 인물이에요. 참으로 충직한 사람이고 명량대첩 때 어려운 싸움에서도 흔들림 하나 없는 모습으로 큰 공을 세운 인물 중 하나죠. 누구보다 절 잘 따르고 믿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제 아들 이회에요. 부상으로 이번 전투에 출정이 어려웠지만 멀리서 저에게 큰 힘을 준 사람이죠. 강한 정신력만큼은 절 빼닮은 것 같네요.
손: 왜군을 염탐하고 이번 전투에서 결정적인 활약을 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요.
이: 임준영이라고 조선의 탐망꾼이라 불리죠. 목숨이 보장 안되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군 진영에 몰래 침투해 기밀을 빼오거나 작전을 살피고 오는 중요한 임무를 했어요. 정말 말보다는 행동으로 충정을 바치던 사람이죠. 명량대첩에서 결정적인 정보를 빼온 인물이 하나 더 있어요. 왜군 병사였다가 우리 조선 편에 섰던 준사인데, 왜군의 기밀을 전해줬어요.
손: 진짜 많은 인물들이 활약해주었네요. 그들도 분명 두렵고 무서웠을 법한데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우리 모두가 그들이 그렇게 고생했기에 지금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네요.
이: 다들 나에게로 시선을 모으는데, 충실한 부하들도 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병사가 아니었음에도 배에 탑승을 자청했던 사람도 있었죠. 수봉이라는 아이인데, 아버지가 죽은 후 왜군에 대한 증오심이 불탔던 소년이었어요. 그의 용감하고 패기 있던 모습이 정말 대단하고 용기 있다 생각했죠. 수봉을 따라 얼떨결에 배에 탔던 김중걸도 있었는데, 그는 살기 위해 노를 저었어요. 그래도 그가 노를 열심히 저어줬기 때문에 우리의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