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자살보험금 약관대로 지급해야"
입력 2014-07-24 17:38  | 수정 2014-07-25 06:03
약관에 '자살 때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일명 자살보험금) 한다'는 내용이 있으면 이를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금융당국 결론이 나왔다. 생명보험업계가 미지급하고 있는 자살보험금 규모만 2179억원에 달하고 있어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이지만, 보험사가 행정ㆍ민사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데다 이번 징계가 '보험금을 즉시 지급하라'고 직접 강제하는 내용은 아니어서 지급까지 어느 정도 단계와 시간을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은 24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자살보험금과 관련해 당초 약관을 지키지 않고 기초서류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ING생명에 대해 기관 주의와 과징금 4900만원을 결정했다. 또 이 회사 임직원 4명에 대해 주의 등 징계를 내렸다. ING생명은 금융당국 종합검사에서 재해사망특약 가입 2년 후 자살한 428건에 대해 약관대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일반사망보험금을 내준 것이 적발됐다. 이로 인해 보험금 560억원이 미지급됐다는 게 금융당국 판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ING생명에 대한 징계는 약관대로 자살 때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다만 자살을 재해로 볼 것인지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있는 만큼 중징계가 아닌 경징계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재해사망특약과 함께 생명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재해로 사망했을 때는 보통 일반사망보험금 대비 2~4배인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보험 가입 2년 내에 자살했을 때는 보험금을 주지 않고, 그 이후 자살했을 때는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 현행 표준약관이 '자살은 재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 4월 표준약관 개정 이전에는 재해사망특약에 '가입 2년 이후 자살 때 재해사망보험금이 지급된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는 약관을 갖춘 상품이 많았다. 업계에서는 당시 약관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면서도 사회 통념상 자살을 재해로 볼 수 없다며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은 약관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자살보험금 문제에는 라이나ㆍ푸르덴셜생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생보사가 연관돼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4월 말을 기준으로 이들 업체가 미지급한 자살보험금만 2179억원에 달한다. 특히 삼성ㆍ교보ㆍ한화생명 등 대형 생보사가 미지급한 금액만 859억원에 이른다. 여기에다 보험금을 늦게 지급한 데 대한 지연이자까지 감안하면 보험사 부담은 훨씬 커진다. 또 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 문제에 얽혀 있는 계약을 281만7000여 건이나 보유하고 있어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보험금 규모가 최대 1조원까지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험사들이 순순히 자살보험금 지급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행정ㆍ민사 소송 등 보험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응책이 있는 데다 금융당국이 '보험금 지급' 자체를 직접적으로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ING생명은 이번 징계에 당혹해 하면서 법률 대응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행정 소송 등에 나서면 결론이 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이번 징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추가ㆍ가중 징계를 하면서 보험사를 압박할 수는 있지만 '바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이번 징계를 통해 보험사 잘못이 인정됐으니 당초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이번 건은 보험에 대한 신뢰 문제여서 보험사들이 시간을 끌면 자칫 불매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규식 기자 /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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