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잘못 끼워진 첫 단추…유망하던 중소기업의 몰락
입력 2014-07-18 07:02  | 수정 2014-07-18 09:35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던 사람이 있었다. 삼성전자 출신이던 그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걸 쏟아 부었다. 그리고 그는 한국 최초의 태블릿 PC 출시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품을 출시한 회사의 대표이사 이름은 물론 제조사명, 태블릿 PC 모델명까지도 기억에서 사라졌다. 아니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바로 유망 코스닥 상장사였던 엔스퍼트와 이창석 대표이사 이야기다.
2012년 6월 상장폐지된 엔스퍼트는 통신기기용 단말기 제조업체였다. 인스프리트의 자회사였던 엔스퍼트의 몰락은 결국 인스프리트의 발목까지 잡았다. 인스프리트 역시 이창석 대표가 경영하던 회사지만 결국 상폐 됐다.

주목 받던 코스닥 기업 2곳이 부지불식간에 망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
엔스퍼트가 퇴출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자 뒤에 두 가지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잘못 끼워진 첫 번째 단추는 바로 '태블릿 PC'다.
"완성된 제품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KT가 빠른 출시를 원했습니다. 애플의 아이패드가 공급되기 전에 또 삼성전자에서 갤럭시탭이 나오기 전에 중소기업이 먼저 출시해 흥행몰이를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일단 먼저 출시해야 한다는데 어쩌겠습니까. 결국 결정을 따라야 했습니다"
인스프리트·엔스퍼트 측 관계자였던 A씨는 2010년 출시됐던 엔스퍼트의 태블릿PC '아이덴티티탭'이 미완성 제품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KT 등쌀에 떠밀려 일단 출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매출액의 45%를 KT에 의존하는 구조상 엔스퍼트가 KT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불량품이 속출했고 소비자들의 불만은 급격히 증가했다.
누구보다 욕심이 많던 이창석 대표는 실패한 첫 번째 제품을 포기하고 브랜드 홍보 후 2차 제품에서 승부를 걸 생각이었다. 광고선전비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엔스퍼트의 광고선전비는 2009년 1억4000여만원 수준이었지만 2010년 34억8000여만원까지 대폭 증가했다.
KT 측에서 510억원 상당의 선주문을 넣었기 때문에 발빠르게 완벽한 제품만 출시하면 성공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KT는 1차 제품의 하자 등을 이유로 남은 물량의 발주를 미뤄오다 초기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약 450억원 규모)의 주문을 취소했다. 테스트를 이유 삼아 6개월 이상 시간을 끌며 발주를 지연하는 방식이었다.
이미 관련 제품을 만들기 위해 부품을 발주해 대금까지 지급한 엔스퍼트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엔스퍼트가 부품을 의뢰한 중소기업들도 덩달아 타격을 입었다.
엔스퍼트 측 한 임원은 "2차로 만든 물건은 갤럭시탭 등 당시 출시 태블릿PC와 비교해도 하드웨어 스펙이나 가동 등에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고 구글 인증도 받아 문제가 없었다"며 "하지만 KT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주문을 취소해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폐된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물품 대금 지급 문제로 하청업체로부터 연락이 온다. 당시 수백여 곳의 하청업체가 있었고 이 여파로 폐업한 곳도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인터넷전화 사업으로 2009년 2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던 엔스퍼트는 2010년 204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2011년엔 적자폭이 428억원으로 커졌다.
내부 문제도 있었다.
인터넷 전화 등 디바이스 사업을 위해 막대한 인력을 채용했지만 구조조정 등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고정비가 계속 늘어나는 문제가 있었다. 인건비만 한 해 수십억 원에 달하다 보니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늘어난 판관비도 실적 악화의 원인 중 하나다.
여기에 부채와 적자 누적으로 자금 조달이 힘들다 보니 끊임없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만 했고 뒤늦게 엔스퍼트를 매각하려고 했으나 수차례 자금조달로 지배구조가 희석되고 적자가 누적된 회사를 인수하려는 투자자는 없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스퍼트는 당시 모회사인 인스프리트와 더불어 주목받던 샛별 같은 기업이었다"며 "한 분야에 올인했다 실패할 경우 큰 타격을 입고 회생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불운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이어 "엔스퍼트처럼 새로운 제품 출시로 기대를 받는 기업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며 "하지만 계약체결 발표 건에 주목하기보다 진행상황과 과거 납품 실적, 계약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점검 후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경닷컴 최익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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