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인 쉰 줄에 '먹는 사업'을 시작한 CEO가 있습니다.
바로 연 160억의 매출을 올리는 대형 식당 경영자인 ‘(주)꿈꾸는이상의 이승호 대표입니다.
‘갈비명가 이상과 좋은 품질의 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대형 정육식당인 '소한마리'까지 그의 가게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며 손님들에게 그 맛과 품질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를 성공으로 이끈 숨은 비밀! MBN ‘정완진의 최고다(최고 경영자의 고귀한 다섯 가지 비밀) 제작진이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대형 갈빗집 사장 이승호 대표! 그가 처음부터 외식업에 종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15년간 청계천 '부품 메카'에서 부품 장사를 하다가 돌연 대일외고 근처에 대형 입시학원을 차렸습니다.
학원은 대박이 났고 그는 한창 일하는 40대에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부유함을 만끽하며 골프를 치거나 바둑을 두며 보내는 생활은, 매사 활동적이며 도전적인 그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가 회의감을 느끼고 있을 무렵 IMF가 닥쳐왔습니다. 경제 위기로 가정 내 사교육비가 줄자 학원시장이 위기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승호 대표는 '차라리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대학모임에서 우연히 탈북 사업가 전철우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전철우 씨는 '전철우 고향 랭면'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외식업계의 주역이었죠. 전철우 씨랑 얘기를 하며 저는 외식업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운영하던 학원 건물에 '전철우 고향 랭면' 가맹점을 냈죠.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다가 냉면의 계절인 여름이 가자 매출이 4분의 1로 확 줄어서 직원 월급도 못 주게 되었습니다. 정말 힘든 순간이었죠. 그 때 저는 ‘아, 내가 외식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뛰어 들었구나 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에 굴복하지 않고 외식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당 운영에 관한 책을 섭렵하고 직접 맛 집 순회를 다녔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맛 집에 가서 음식을 맛보기도 하고 메뉴판을 몰래 들고 나와 맛 집 메뉴를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각 맛 집에서 느낀 점들을 꼼꼼히 메모해두고 배울 점들을 하나씩 분석해두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꼬박 발로 뛰며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그는 외식업에 대한 두 가지 원칙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첫째, 고객은 귀신이니 속일 생각을 하지 말자. 둘째, 고객한테 본전 생각나지 않게 하자.가 그 원칙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이상 고향냉면'으로 상호를 바꾸고 고기류로 메뉴를 넓혀서 재오픈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푸짐하고 저렴하게 팔기 시작했습니다. 숟가락이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로 푸짐한 갈비탕을 만들어서 1000원에 팔았습니다. 고기 좀 덜 넣고 더 남겨봤자 얼마나 남기겠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전문가들과 함께 확인한 좋은 품질과 원재료의 고기였습니다. 말도 안 되게 너무 싼 가격에 직원들이 모두 말렸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1000원으로 부담 없이 갈비탕을 맛본 후 그 맛을 인정하는 손님이라면 그 다음부터는 가격과 상관없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멀리 봐서 그만한 마케팅도 없었죠."
그의 예상은 정확했습니다. 손님들은 그의 식당을 찾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오고 식당 밖까지 길게 줄을 섰습니다. 장사가 매우 잘 돼서 그는 이미 성공을 거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국 유명 음식점에 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분석을 계속 해나갔습니다. 매일 밤낮으로 유명 인기 음식점들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이러한 비결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기 음식점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오래된 맛 집'이고 또 하나는 '고급스럽고 근사한 맛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맛 집'이라 하면 수십 년째 대대로 가업으로 이어져 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겐 해당사항이 없었죠. 그래서 저는 지금보다 더 '근사하고 멋진 맛 집'을 만들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상 고향냉면' 맞은편에 고급스럽고 근사한 맛집으로 무장한 3층짜리 '갈비명가 이상'을 열었습니다. 그의 식당은 이미 갈비명가로 소문나 있었기 때문에 또다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그간 그가 흘렸던 땀방울들이 보상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두 곳 모두 갈비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승승장구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순간들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신이 나고 재미있어서 꿈만 같았죠. 제게 외식업, 특히 갈비 사업의 묘미를 알게 해준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고, 줄을 길게 늘어서 기다리는 모습도 재밌고, 식당이 꽉 차는 모습도 재미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신발을 막 정리하는 것도 재미있었으니까요. ‘갈비 사업이 정말 내 운명이구나. 하는 걸 그 때 느꼈죠”
하지만 탄탄대로였던 그의 사업에 예상치도 못한 문제가 터졌습니다. 갑작스런 ‘광우병 파동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울며 겨자먹기로 업종을 바꿔서 ‘갈비명가 이상을 대게집으로 바꿨으나 해산물 특성상 여름에는 잘 상했기 때문에 장사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자꾸 일희일비 하니까 고생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갈비 사업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했죠. 대게집을 정리하고 다시 갈비명가를 이어나갔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죠. 이제 잠깐의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버텨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갈비명가 이상' 문을 열고 식당 유지에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지인과의 약속으로 북악정에 가게 되었습니다. 북악정은 30년 전통의 숯불갈비 전문점으로 한 때 꽤 유명했던 고급 식당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경영난으로 어려워 가게를 내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최초로 고기 굽는 연기를 아래로 빠지는 시스템을 만든 쾌적한 곳이었습니다. 건물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러자 그간 '갈비명가 이상'의 현상 유지에만 전념해오던 이승호 대표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북악정이 제 외식업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당시 북악정을 향해 수많은 러브콜들이 쏟아졌는데 근무하던 직원들을 그대로 승계한다는 조건으로 제가 인수하게 되었죠."
그렇지만 북악정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외진 곳에 위치 해 교통이 좋지 않아서 손님들을 끌어오기 힘들었습니다. 또 손님들이 사 먹기 쉽지 않은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승호 대표는 이 곳을 혁신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비싼 가격에 주저하는 손님들을 위해 한시적이지만 갈비탕을 천 원에 팔았습니다. 또 저렴한 다른 메뉴들을 개발했습니다. 외진 위치 때문에 홍보가 잘 되지 않아서 전단지 120만 장을 뿌렸습니다. 전단지를 들고 안 다닌 곳이 없습니다.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인천공항에 가서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했죠. 거짓말처럼 손님이 점점 늘기 시작했습니다. 북악정은 회생했고 저는 전보다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훌륭한 주방장들과 지배인들을 직접 찾아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러 번 거절당했지만 다시 찾아가 그들을 영입하기 위해 발로 뛰었습니다. 그렇게 든든한 조력자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인수 후 북악정을 8배로 성장시키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그는 점포를 늘리고 출판사인 '이상미디어'를 설립했습니다. 출판사는 직원들의 교육용 교재를 주로 펴내는 조직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이승호 대표는 '(주)꿈꾸는이상' 이라는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본격적인 기업화를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직원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했습니다. 대형 정육식당 '소한마리'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그의 가게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이승호 대표는 연 160억을 버는 외식업계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실수 끝에 이룬 성과입니다. 저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실수는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실수는 전화위복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그러나 실수에 안주한다면 실패하는 것이 되겠죠. 저는 수많은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 이렇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연 매출 1000억원을 기록하는 기업형 식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계속 뛰고 또 뛸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목표를 향해 뛰어가는 (주)꿈꾸는이상 이승호 대표의 자세한 이야기는 7월 19일 오전 5시, MBN ‘정완진의 최고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연 160억의 매출을 올리는 대형 식당 경영자인 ‘(주)꿈꾸는이상의 이승호 대표입니다.
‘갈비명가 이상과 좋은 품질의 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대형 정육식당인 '소한마리'까지 그의 가게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며 손님들에게 그 맛과 품질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를 성공으로 이끈 숨은 비밀! MBN ‘정완진의 최고다(최고 경영자의 고귀한 다섯 가지 비밀) 제작진이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대형 갈빗집 사장 이승호 대표! 그가 처음부터 외식업에 종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15년간 청계천 '부품 메카'에서 부품 장사를 하다가 돌연 대일외고 근처에 대형 입시학원을 차렸습니다.
학원은 대박이 났고 그는 한창 일하는 40대에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부유함을 만끽하며 골프를 치거나 바둑을 두며 보내는 생활은, 매사 활동적이며 도전적인 그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가 회의감을 느끼고 있을 무렵 IMF가 닥쳐왔습니다. 경제 위기로 가정 내 사교육비가 줄자 학원시장이 위기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승호 대표는 '차라리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대학모임에서 우연히 탈북 사업가 전철우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전철우 씨는 '전철우 고향 랭면'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외식업계의 주역이었죠. 전철우 씨랑 얘기를 하며 저는 외식업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운영하던 학원 건물에 '전철우 고향 랭면' 가맹점을 냈죠.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다가 냉면의 계절인 여름이 가자 매출이 4분의 1로 확 줄어서 직원 월급도 못 주게 되었습니다. 정말 힘든 순간이었죠. 그 때 저는 ‘아, 내가 외식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뛰어 들었구나 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에 굴복하지 않고 외식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당 운영에 관한 책을 섭렵하고 직접 맛 집 순회를 다녔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맛 집에 가서 음식을 맛보기도 하고 메뉴판을 몰래 들고 나와 맛 집 메뉴를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각 맛 집에서 느낀 점들을 꼼꼼히 메모해두고 배울 점들을 하나씩 분석해두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꼬박 발로 뛰며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그는 외식업에 대한 두 가지 원칙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첫째, 고객은 귀신이니 속일 생각을 하지 말자. 둘째, 고객한테 본전 생각나지 않게 하자.가 그 원칙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이상 고향냉면'으로 상호를 바꾸고 고기류로 메뉴를 넓혀서 재오픈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푸짐하고 저렴하게 팔기 시작했습니다. 숟가락이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로 푸짐한 갈비탕을 만들어서 1000원에 팔았습니다. 고기 좀 덜 넣고 더 남겨봤자 얼마나 남기겠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전문가들과 함께 확인한 좋은 품질과 원재료의 고기였습니다. 말도 안 되게 너무 싼 가격에 직원들이 모두 말렸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1000원으로 부담 없이 갈비탕을 맛본 후 그 맛을 인정하는 손님이라면 그 다음부터는 가격과 상관없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멀리 봐서 그만한 마케팅도 없었죠."
그의 예상은 정확했습니다. 손님들은 그의 식당을 찾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오고 식당 밖까지 길게 줄을 섰습니다. 장사가 매우 잘 돼서 그는 이미 성공을 거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국 유명 음식점에 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분석을 계속 해나갔습니다. 매일 밤낮으로 유명 인기 음식점들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이러한 비결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기 음식점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오래된 맛 집'이고 또 하나는 '고급스럽고 근사한 맛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맛 집'이라 하면 수십 년째 대대로 가업으로 이어져 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겐 해당사항이 없었죠. 그래서 저는 지금보다 더 '근사하고 멋진 맛 집'을 만들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상 고향냉면' 맞은편에 고급스럽고 근사한 맛집으로 무장한 3층짜리 '갈비명가 이상'을 열었습니다. 그의 식당은 이미 갈비명가로 소문나 있었기 때문에 또다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그간 그가 흘렸던 땀방울들이 보상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두 곳 모두 갈비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승승장구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순간들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신이 나고 재미있어서 꿈만 같았죠. 제게 외식업, 특히 갈비 사업의 묘미를 알게 해준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고, 줄을 길게 늘어서 기다리는 모습도 재밌고, 식당이 꽉 차는 모습도 재미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신발을 막 정리하는 것도 재미있었으니까요. ‘갈비 사업이 정말 내 운명이구나. 하는 걸 그 때 느꼈죠”
하지만 탄탄대로였던 그의 사업에 예상치도 못한 문제가 터졌습니다. 갑작스런 ‘광우병 파동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울며 겨자먹기로 업종을 바꿔서 ‘갈비명가 이상을 대게집으로 바꿨으나 해산물 특성상 여름에는 잘 상했기 때문에 장사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자꾸 일희일비 하니까 고생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갈비 사업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했죠. 대게집을 정리하고 다시 갈비명가를 이어나갔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죠. 이제 잠깐의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버텨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갈비명가 이상' 문을 열고 식당 유지에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지인과의 약속으로 북악정에 가게 되었습니다. 북악정은 30년 전통의 숯불갈비 전문점으로 한 때 꽤 유명했던 고급 식당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경영난으로 어려워 가게를 내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최초로 고기 굽는 연기를 아래로 빠지는 시스템을 만든 쾌적한 곳이었습니다. 건물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러자 그간 '갈비명가 이상'의 현상 유지에만 전념해오던 이승호 대표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북악정이 제 외식업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당시 북악정을 향해 수많은 러브콜들이 쏟아졌는데 근무하던 직원들을 그대로 승계한다는 조건으로 제가 인수하게 되었죠."
그렇지만 북악정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외진 곳에 위치 해 교통이 좋지 않아서 손님들을 끌어오기 힘들었습니다. 또 손님들이 사 먹기 쉽지 않은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승호 대표는 이 곳을 혁신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비싼 가격에 주저하는 손님들을 위해 한시적이지만 갈비탕을 천 원에 팔았습니다. 또 저렴한 다른 메뉴들을 개발했습니다. 외진 위치 때문에 홍보가 잘 되지 않아서 전단지 120만 장을 뿌렸습니다. 전단지를 들고 안 다닌 곳이 없습니다.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인천공항에 가서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했죠. 거짓말처럼 손님이 점점 늘기 시작했습니다. 북악정은 회생했고 저는 전보다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훌륭한 주방장들과 지배인들을 직접 찾아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러 번 거절당했지만 다시 찾아가 그들을 영입하기 위해 발로 뛰었습니다. 그렇게 든든한 조력자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인수 후 북악정을 8배로 성장시키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그는 점포를 늘리고 출판사인 '이상미디어'를 설립했습니다. 출판사는 직원들의 교육용 교재를 주로 펴내는 조직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이승호 대표는 '(주)꿈꾸는이상' 이라는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본격적인 기업화를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직원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했습니다. 대형 정육식당 '소한마리'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그의 가게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이승호 대표는 연 160억을 버는 외식업계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실수 끝에 이룬 성과입니다. 저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실수는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실수는 전화위복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그러나 실수에 안주한다면 실패하는 것이 되겠죠. 저는 수많은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 이렇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연 매출 1000억원을 기록하는 기업형 식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계속 뛰고 또 뛸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목표를 향해 뛰어가는 (주)꿈꾸는이상 이승호 대표의 자세한 이야기는 7월 19일 오전 5시, MBN ‘정완진의 최고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