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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임팩트 없이 강력한 여운,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
입력 2014-07-13 15:36  | 수정 2014-07-13 16:31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분명 뇌리에 박히긴 했는데 무작정 강렬하다기 보단 곱씹을수록 선명해지는 쓰라림이다. 첫 눈에 반한 운명 같은 사랑이 아니다. 자꾸만 미련이 남고 가슴 한 쪽이 아려오는 게, 오히려 예기치 않은 이별에 가깝다. 찰나의 실수로 떠난 보낸, 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첫 이별의 아픔,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를 감상한 느낌이다.
뮤지컬 ‘블라드 브라더스의 극작가이자 작곡가인 윌리 러셀은 애초에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이 공연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 뮤지컬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고음의 아리아도, 심장을 마구 뛰게 하는 댄서들의 구둣발 소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화려한 퍼포먼스도 없다. 배우들의 연기, 극적 구성 등에서 크게 흠잡을 구석은 없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 이 작품은 뮤지컬의 본고장 웨스트엔드에서 1983년 초연 이래 무려 10,000회를 넘는 공연을 했고 웨스트엔드 역사상 최장기 연속공연을 기록했다. 뮤지컬의 상업성과 틀에 박힌 연기, 노래에 신물이 나 만들어진 게 오히려 가장 상업적인 작품이 된 셈이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이것이 가능한 건 ‘블러드 브라더스에는 여느 뮤지컬에서 쉽사리 만날 수 없는 인간 본성을 충격하는 진정성과 감동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1960년대 경제 공황 시기의 영국 리버풀을 배경으로 한 배 아래에서 태어났지만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극복할 수 없는 가난과 인간적인 욕망 아래 휘둘려 버린 어느 쌍둥이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린다.
곳곳에서는 손가락을 꼬고 하나부터 열을 세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탁자 위에 신발을 두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 자루 귀신이 잡아갈지도 몰라” 등 각종 미신이 등장하는 데, 이는 곧 비극의 강력한 복선이 된다.
손가락을 꼬기만 하면, 모든 게 장난이 된다는 이들의 놀이는 결코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한 순간의 선택조차도 무를 수 없고,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그 선택은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옥죄어온다. 운명이 뒤바뀐 쌍둥이 형제의 불행은 그렇게 예상 가능한 루트로 담담하게 진행된다.
음악, 스토리, 무대 등 어느 곳에서 클라이맥스가 없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오히려 이 덤덤함이 진한 잔상을 남게 한다. 관객 스스로 각자의 세계관에 빠져들 수 있는 충분한 여유도 생긴다.
배우들은 특수 분장도 없이 오롯이 연기력만으로 20여년의 세월을 표현해낸다. 조정석 송창의 오종혁 구원영 문종원 등 누구 하나 뒤쳐짐 없이 각자의 색깔을 제대로 낸다.
왜 날 안 보냈어? 그럼 내가 쟤처럼 될 수 있었잖아.” 절망스러운 환경속에서도 한 번도 엄마를 탓해 본 적 없었던 가난한 쌍둥이는 마지막 순간 엄마를 원망한다. 공연 내내 해맑은 모습을 보여줬던 부유한 쌍둥이는 이 한마디조차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
이들은 각각 어떤 생각에 빠졌을까. 이들을 죽음으로 몬건 진정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순간, 잔인한 진실을 털어놓은 이들의 엄마를 우리는 비난할 수 있을까. 관객들은 저마다의 인물에게 빠져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된다. 섣불리 시비를 가릴 수도 없도 결론을 내기도 어렵다. 단조로움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매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공연이다.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는 9월 14일까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미키에는 조정석 송창의가, 에디는 장승조, 오종혁이 번갈아 연기한다. 진아라, 김기순, 최유하, 심재현 등이 출연한다.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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