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라그룹의 재구성] 만도, 지주사 전환으로 한라 지원 `선 긋기`
입력 2014-07-09 07:02  | 수정 2014-07-09 14:36
정몽원 한라 회장

현재 공정위 기준 재계 서열 43위의 한라그룹. 지금은 중견그룹 정도지만 IMF 직전까지 한라그룹은 재계 서열 12위권의 위세를 가졌다. IMF로 그룹 부도 사태를 맞으면서 한라중공업(현 현대삼호중공업) 등이 떨어져나갔고 만도기계도 외국계 자본에 매각해 한라(한라건설) 정도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 2008년 만도를 재인수하면서 영광 재현에 나섰다.
만도는 지난 2010년 재상장으로 증시에도 복귀했다. '옛 명성 부활', '화려한 복귀', '금의환향' 등 각종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현재의 시장 평가는 180도 달라졌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휘청이는 모기업 한라를 살리기 위해 만도를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만도가 한라를 지원하면 할수록 시장의 반응은 냉담해졌다.
한라그룹은 지주사 체제 전환, 만도 정관 변경 등을 통해 추락한 시장의 신뢰를 복구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만도가 벌면 한라가 갚는다"
한라그룹은 건설사인 한라와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를 핵심 계열사로 두고 있다. 만도는 탄탄하다. 2011년 4조5600억원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5조6300억원으로 늘어났고 영업이익도 3000억원대에서 안정적인 수준을 보이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 매출 구조가 안정적이고 기술력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문제는 한라다. 한라는 지난 2012년 2390억원, 2013년 428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회사채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위기론이 불거졌다.
한라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만도는 두 차례에 걸쳐 자회사 한라마이스터를 통해 모회사 한라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3600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마이스터의 증자에 만도가 자금을 대고 이 자금이 다시 한라건설의 증자에 활용되는 구조다. 마이스터라는 단계를 하나 더 거쳤을 뿐 자회사가 모회사의 증자에 참여하는 기형적 구조였다. 이렇게 되면서 한라-만도-마이스터로 내려오던 지배구조가 한라-만도-마이스터-한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변했다.
두 차례의 유상증자는 상당한 논란을 불러왔다. 모기업 한라의 부실이 우량 계열사 만도로 전이되는 구조여서 만도 주주 입장에서는 기업가치 훼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 한라그룹은 만도에 대한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마이스터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해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만도가 한라 지원에 나서자 만도의 지분 1.77%를 보유한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주금납입중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냈다. 올해 만도 주주총회에서는 거수기라 비판받는 국민연금조차도 이사 선임안에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한라그룹이 이같은 대내외적 압박 속에서도 한라 살리기에 올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정몽원 한라 회장의 지분율 때문이다. 정몽원 한라 그룹 회장은 한라의 지분 23.58%를 보유하고 있다. 만도의 지분은 7.71% 밖에 되지 않는다. 회장님의 지분이 대부분 한라에 몰려있다보니 한라를 살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주사 전환으로 또 논란…정관 변경 '승부수'
"연속된 악재들로 주주들은 지쳐있다. 피로감이 해소되기 전에 분할에 따른 선택 강요는 또 한차례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올 4월 7일 한라그룹이 만도 분할을 통한 지주사 체계 전환을 발표하자 나온 한 증권사 연구원의 레포트다. 보통의 지주사 전환 발표는 투명한 지배구조에 대한 기대감 덕분에 시장의 환영을 받지만 한라그룹의 케이스는 딱히 그렇지 않았다. 시장의 반응은 '이제 그만 좀 하자'라는 데에 더 가까웠다. 지주사 전환 발표가 나자 만도는 하한가로 추락했고 한라는 10% 급등했다.
한라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만도 중 일부를 떼어내 지주사인 한라홀딩스를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라그룹의 지주사 전환을 위해 다시 만도를 희생시키는 구조다. 만도가 가지고 있는 현금 5010억원 가운데 4500억원을 한라홀딩스가 가져가고 만도에는 510억원만 남는다. 또 분할 전 만도의 부채 2조2038억원 가운데 한라홀딩스는 4081억원, 만도는 1조7956억원이 배정된다. 부채 가운데 차입금만 떼어놓고 보면 한라홀딩스는 단기차입금 0원, 만도는 800억원, 장기차입금은 한라홀딩스 700억원, 만도 2957억원이다. 만도의 알짜 계열사였던 한라마이스터,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한라스택폴 등도 한라홀딩스가 가져간다. 결국 한라그룹의 지주사가 되는 한라홀딩스는 만도에서 현금과 알짜 계열사를 챙겨가고 만도에는 빚만 남는 구조다.
한라그룹의 지주사 전환은 이제 지주사 설립만 준비하는 걸음마 단계다. 한라홀딩스에 대한 정 회장의 지분율을 확보하는 것과 한라홀딩스가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여전히 정몽원 회장의 한라홀딩스 지분율은 7.71%에 불과하다. 또 한라홀딩스의 100% 자회사인 한라마이스터가 한라의 지분 15.86%를 보유하고 한라가 한라홀딩스의 지분 17.29%를 보유한 순환출자 구조도 여전하다.
현재 한라홀딩스가 한라와 합병해 정몽원-한라홀딩스-만도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또 정 회장이 한라 지분을 한라홀딩스에 현물출자해 지주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한라홀딩스가 보유 현금으로 한라로부터 자사주를 매입하는 방안도 언급되고 있다. 이 시나리오로 되면 한라홀딩스가 자회사로 만도와 한라를 거느리는 지배구조가 된다. 두 시나리오 모두 만도에서 나온 현금이 결국 한라로 흘러들어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주사 설립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자 지난달 한라그룹은 갑작스레 만도의 정관을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지주사 분할을 결정하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달래기와 시장 신뢰 회복에 나선 것이다. 정관 변경의 핵심은 향후 설립되는 한라홀딩스가 한라 증자에 참여하거나 자산을 매입해 자금을 지원할 경우 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를 받도록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관 변경, 감자, 회사의 해산, 합병 등 아주 중요한 사항들만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받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만도의 정관 변경은 더이상 한라에 자금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도의 정관 변경을 계기로 만도의 주요 주주들도 분할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서고 있다. 게다가 어찌됐건 지주사 체계가 되면 만도가 한라를 직접 지원하는 방법이 없어진다는 점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현수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정관변경은 한라에 대한 직간접적 지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만도의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라며 "여러 차례 한라에 대한 지원이 진행되면서 만도에 대한 투자 신뢰는 크게 하락한 상황이지만 이번 정관 내용 변경을 통해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이 가능해 보이고, 만도의 밸류에이션 디스카운트도 점차 축소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매경닷컴 고득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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