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직장人 직장忍] "선물을 달라는 거야, 뇌물을 달라는 거야"
입력 2014-07-03 07:02 

우리나라의 직장 생활 중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가족적인 문화가 강조한다는 것이다. 직장 상사가 때로는 단순히 결제라인이 아닌 어른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진심이든 아니든 아랫사람은 직장 상사에게 단순히 지시 사항에 충실한 것 이상의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등장하는 게 선물이다. 명절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직장 상사에게 건네는 선물은 '나는 당신을 비즈니스 관계 이상으로 존경한다'라는 의사 표현이다.
실제로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실시한 한 취업포털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17.3%가 직장 상사에게 명절 선물을 한다고 응답했다.반면 직장 동료에게 명절 선물을 한다는 응답자는 3.9%에 그쳤다.
모든 일은 과유불급이다. 적당한 선물은 서로의 직장 생활을 즐겁게 하지만 과하면 뇌물로도 비쳐질 수 있다. 또 어떤 선물은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공물로 바쳐진 영덕 대게…돌아오는 건 싸늘한 '눈총'
지난해 하반기 한 중견기업에 입사한 A씨는 고향이 경북 영덕이란 것 때문에 처음부터 회사 생활이 꼬여버린 케이스다. '영덕=대게'라는 인식 때문이다. 영덕에 사는 사람은 모두 대게 잡이 어선을 타는 줄로 생각한다. 특히 A씨가 근무하는 부서의 담당 임원은 A씨가 처음 부서 배치를 받고, 회식을 한 이후부터 A씨 얼굴만 보면 줄기차게 영덕 대게 이야기를 꺼냈다.

진짜 대게를 보내라고 하는 것인가 고민하던 차에 직장 선배에게 살짝 물어보니 "우리 회사는 임직원끼리 사내에서 선물 주고 받는 게 원칙적으로 금지란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나도 영덕 대게 맛 좀 보자", "대게철이 다 가겠다", "올해 대게는 많이 잡힌다냐" 등 농담인지 진담인지 아리송한 수준으로 수위가 높아져갔다.
그러다 설 명절을 지나고 보니 직장 선배 중 상당수가 이 임원에게 명절 선물을 건넨 것을 알게 됐다. 뒤늦게 A씨도 '명절 때 깜빡하고 못 챙겨서 죄송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임원에게 영덕 대게 한 박스를 사보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선배들의 눈총이 따가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졸지에 라인 타려고 줄 대는, 정치하는 신입사원이 된 거죠. 그 이후로 임원분은 대게 이야기를 안 꺼내시긴 하는데, 올 겨울에 다시 대게철이 돌아오면 또 드려야 하나 하는 것도 벌써 걱정입니다."
◆"출장 선물, 양주는 이제 그만"
B씨는 해외 출장이 잦은 부서에서 근무한다. 팀원들은 거의 한달에 한번 꼴로 돌아가면서 해외 출장에 나선다. 직원들이 해외 출장을 가면 꼭 사오는 게 양주다. 양주를 사와서 부장에게 선물을 하면 부장이 회식 때 그 양주를 들고 나와서 팀원들이 나눠 마시는 식이었다. 팀원들도 이같은 전통 아닌 전통이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부장의 심기였다. 한 팀원이 동남아 출장을 다녀온 뒤 그 나라 전통 럼주를 사온 것을 두고 부장이 버럭 화를 낸 것이다. 부장은 "이렇게 독한 술을 누가 먹겠냐"며 난데없이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나섰다. 그제서야 부서원들은 부장이 가져왔던 불만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부서원들의 선물 고민이 시작됐다.
다음 차례로 해외 출장을 가게 된 B씨는 선배들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출장 선물로 부장에게 고급 와이셔츠를 선물했다. 부장은 그 선물에 매우 흡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부터는 아무도 양주를 선물로 사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전엔 없던 '일 하러 가지, 놀러 가냐'라는 불만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
선물이 과하면 뇌물이 된다. 뇌물과 선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제공되는 물품에 대한 '대가가 있느냐 없느냐'다. 지금 당장 노골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더라도, 암묵적인 대가가 뒤따르거나 받은 물건으로 인해 추후 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진다면 선물이 아닌 뇌물이 된다. 선물이 과해져 뇌물이 되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부담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상사의 수고로움에 대해 팀원으로서 고마움을 표시하려는 마음은 사실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최근 기업윤리 문화는 임직원 간에 선물을 포함해 금품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를 금액을 불문하고 모두 금지하고 있다. 자발적이고 순수한 마음으로 선물한다고 해도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공정한 인사고과와 인사이동 등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물질적인 선물보다 '안 주고 안 받는' 대신 이메일이나 전화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을 권하는 직장이 많다.
출장 선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업무상 해외 출장을 가는 것인데 출장비의 일부나 사비를 털어 선물을 사는 것은 그 자체로서 다소 불합리해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자신이 의도해서 선물을 사와 상급자에게 준다면 이는 명백한 비윤리 행위에 해당하며, 관행상 부득이하게 사와서 나눠줬더라도 자칫 비윤리 행위에 해당될 소지가 있으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며 "처음에는 상급자와 동료를 모른 척하기가 다소 어렵겠지만 선물을 사오지 않는 것을 팀내 분위기로 만들어가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매경닷컴 고득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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