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원피스를 단정히 차려입은 한 여고생이 지난달 23일 건국대병원 지하 1층 유방암센터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섰다. 서울 모 예고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있는 박지은 양(17.가명)이다. 박 양은 수줍은듯 관객들에게 인사하고는 건반에 손을 올렸다. 섬세하고도 강렬한 베토벤 소나타 23번 '열정'이 지하 1층 홀에 울려 퍼지고 이어지는 곡은 'Dream & Wish'(꿈과 희망). 여고생의 첫 자작곡이었다.
박 양이 자작곡을 만들어 연주한 것은 이 병원에서 암투병 중인 동생 지호 군(11.가명)을 위해서였다. 어린 나이에 병마와 싸우는 동생이 쾌유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단 두 시간 만에 만든 곡이 'Dream & Wish'라고 한다. 박양은 동생과 함께 즐겨 불렀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독도는 우리땅' 등을 경쾌하게 연주하며 음악회를 마쳤다.
박양의 어머니 선영례 씨(45)는 약 30분간에 걸친 연주를 스마트폰으로 녹음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누나의 연주를 직접 듣지 못하는 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선씨는 아들에게 이어폰을 꽂아주며 "누나가 너랑 같이 불렀던 노래들이랑 너 얼른 나으라고 지은 노래 연주했어"라고 속삭였다. 박군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표정은 평온했다. 선씨는 "산소호흡기 때문에 말은 못해도 의식이 있기 때문에 누나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2012년 어느 봄날, 박군에게 갑자기 병마가 닥쳤다. 열이 나고 숨을 쉬기 어렵다기에 가족들은 박군이 감기에 걸린 줄 알았지만 의사는 박군의 폐와 횡격막 사이에 암이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박군은 그 후 2년 반 동안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 등 여러 차례 큰 수술을 쉴새 없이 받았다. 박군은 밝은 모습으로 꿋꿋하게 잘 버텼지만 결국 누나의 연주회 일주일 후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정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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