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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그때 그 가수] 거북이 지이 “팀 해체 후 노숙까지 했었죠”
입력 2014-06-25 15:03 
이 가수를 기억하십니까?”
그때 그 시절, 가요계에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졌지만 반짝 스타로 사라진 가수들. 혹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돌연 대중들의 곁에서 사라진 이들의 발자취를 쫓는다. 사라진 것들의 그리움에 대하여… <편집자 주>


[MBN스타 박정선 기자]

‘빨간 꽃 노란 꽃 / 꽃밭 가득 피어도 /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 거북이 ‘사계 中

지난 2001년 1집의 수록곡이자 히트곡인 ‘사계를 시작으로 눈도장을 찍고 4집 ‘비행기를 통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그룹 거북이. 원했던, 그렇지 않던 겪어야했던 멤버 변화를 거치고 지금은 대중들의 곁에서 사라진 그룹이다.

과거의 인기가 무색할 만큼 히트곡들만 남긴 채 사라진 그룹 거북이는 팀 해체 이후에도 팀내 불화와 같은 논란에 휩싸이며 대중들의 시선을 떠나지 못했다. 거북이의 원년 멤버이자 끝까지 거북이로 남아있는 멤버 지이(본명 이지이)를 만나 활동 당시, 그리고 팀 해체 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직접 들어봤다.



◇ 평탄해 보이던 가수생활, 항상 빚에 허덕였죠”

지이는 거북이라는 그룹이 결성되기 전인 17살, 터틀맨(본명 임성훈)의 팀과 함께 데모 작업에 함께 했다. 터틀맨과 함께 작업하면서 완전 반했다”는 그녀는 터틀맨과 한 팀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결심은 현실이 됐다. 햇수 3년 이들은 파티 애니멀스라는 그룹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컴필레이션 앨범을 제작했다.

이 앨범을 계기로 이들은 거북이라는 이름으로 드디어 대중들을 만나게 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룹이 삐걱 거렸다. 보컬로 영입했던 멤버 수빈이 탈퇴를 하고, 2집 발매 직전 새 멤버 금비를 영입했다.

수빈은 탈퇴 이후 한 방송에 출연해 팀내 불화가 있었다며 강제 탈퇴를 권유받았다는 말을 내뱉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이는 수빈이 탈퇴한 이후 제가 노이즈 마케팅에 제대로 걸렸어요. 저도 SNS를 통해 심경을 전하긴 했지만 세상에는 일방적인 게 없잖아요. 감정도 마찬가지에요. 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뿐이죠. 그 아이의 사생활을 모두 이야기 하고 싶진 않았어요”라며 말을 이어갔다.

금비의 합류 이후 팀은 그런대로 잘 굴러갔다. 아니,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래보였다. 라디오에서는 거북이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음악 방송에서도 1위를 하는 등 그야 말로 승승장구했다. 특히 4집은 대성공을 이루기도 했다.


사실 3집까지 돈 한 푼 못 받고 활동했어요. 그래서 소송을 결심했는데 오히려 우리 그룹에게 80억을 요구해 오는 거예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4억을 물어내게 됐어요. ‘비행기로 라디오 선곡순위 14주 연속 1위를 했어요. 2002년 ‘오! 필승 코리아보다도 높았으니까, 정말 굉장했죠. 이때부터 조금씩 돈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숨통이 트일 뻔 했죠.”

이들은 3집 이후 부기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활동했다. 이때부터 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이들의 통장은 여전히 마이너스였다. 심지어 거북이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터틀맨의 건강악화로 이들의 활동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비행기가 나오기 전 터틀맨은 이미 한 차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대에 올랐다.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와중에 그는 무대에 서고자 하는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활동을 강행했다.

오빠가 수술을 받으면서 멜로디가 들렸다고 했어요. 그렇게 나온 곡이 ‘비행기였는데 오빤 활동 자체가 무리였거든요. 근데 죽어도 좋으니까 노래를 하고 싶다고 해서 함께 활동을 하게 됐어요.”

무리한 활동 강행이 문제였을까. 터틀맨은 결국 2008년 4월 사망했다. 거북이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터틀맨의 부재는 엄청났다. 다음 앨범까지 이미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거북이로 활동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 돈을 고스란히 뱉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결국 이들이 택한 것은 해체 기자회견이었다. 이후 지이는 세상과 담을 쌓고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동안 조금씩 모아놓았던 돈을 모두 빚 청산에 퍼붓고 빈털터리가 된 채 숨어버린 셈이다.



◇ 잊을만하면 다시 돌아오는 빚더미, 노숙생활까지 감행”

그녀는 국내의 인지도를 모두 버리고 2009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길거리에 나가기만 해도 사람들이 ‘힘내요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거북이라는 그룹은 대중들의 동정의 대상이 됐다. 당시 정말 심적인 고통을 느끼고 있는 그녀로서는 그 응원이 그저 감사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일본에서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아니, 무조건 다른 삶을 살자고 결심했죠. 제 집도 빼고, 차도 없애고 3개월 기숙사비만 들고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어요. 장학금을 받고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하루에 일곱 가지의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조그마한 월세 방을 구했죠. 100엔짜리 요깃거리 세 개로 하루를 버텼어요.”

그녀는 한국어 강사, 가이드, 번역, 식당 주방일, 이자카야, 통역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쉴 틈 없이 지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집을 구하고 피아노와 마이크, 그리고 녹음을 할 수 있는 미디를 구입해 다시 꿈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터틀맨 오빠랑 3년 고생해서 거북이라는 그룹을 만들어냈으니, 혼자서 5년 정도 하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인사하면 내쳐지고를 반복했죠. 수모도 많이 당했고, 통역 일을 하면서 백지영 언니를 만나기도 했어요. 나도 한 때는 노래를 하던 가수였는데 한 편으로는 씁쓸했어요. 어쨌든 이후에 작은 공연을 하면서 지냈어요.”

그렇게 2년 반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는 2010년 12월 마지막 주였다. 거북이 해체 이후 금비에게 재결성 제의를 받게 된 것이다. 그녀 역시 거북이라는 그룹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고민 끝에 재결성에 동의했다. 터틀맨의 빈자리는 새 남자 멤버 이강이 대신했다.

하지만 재결성 6개월 만에 거북이는 또 한 번의 좌절을 맛봤다. 경제적인 여건만 됐다면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을 터다. 하지만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대출을 받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모든 회사의 빚을 그녀가 떠안게 된 것이다.

그 빚을 갚기 위해 서울 카페에서 일본어 과외를 했어요. 집이 용인이었는데 집에 갈 기름 값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카페에서 세수하고, 차에서 생활했어요. 겨울이었는데 차에 시동도 못 걸고 딱 죽을 맛이었어요.”

지이는 그 추운 겨울에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남기고 4개월 동안 홀로 노숙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지인 아버지가 창고로 쓰는 곳(가스, 전기도 없는)에서 살게 됐고 발가락에 동상이 걸리는 것도 모르고 빚을 갚는 것에만 열중했다. 과거의 일을 말하는 듯 하지만 이 같은 생활은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 나에게 부족한 걸 찾으니, 행복도 찾아오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 전혀 사람 챙길 줄 몰랐고 세상 혼자 살았어요. 나만 피해 안주면 남도 안주는 게 당연하다는 주의였죠. 친해지려는 노력도 없었고, 그냥 살았어요. 다만 게으름은 안 된다는 생각으로요. 이제서 돌아보니까 저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그거더라고요. 사람이 없었어요.”

자신의 문제점을 깨달은 지이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나섰다.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들, 그리고 항상 자신의 곁에 있어준 이들을 찾아 진심으로 이야기를 털어놓고 교류했다. 그러다 보니 보는 눈도 넓어지고, 이들을 통한 새로운 일들도 그녀를 찾았다.

한 지인이 소개시켜 준 한국예술방송진흥원 교수를 하게 됐죠. 근데 지금 신랑이 제 옆방 교수였어요. 사식 넣어주듯 학생들 통해 간식도 전해주고…. 그런 관심을 받으니까 마음이 안정되더라고요. 그래서 만나고 결혼까지 간 거죠.”

결혼은 그녀의 인생에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해줬다. 작곡가인 남편과 함께 오는 8월 초를 목표로 일렉트로닉 앨범을 준비 중에 있으며, 공동저자로 책 발간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특히 그녀는 남편에게 작곡을 배우며 알콩달콩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DJ, 번역, 강연, 강사, 행사 기획, 마케팅회사 본부장 등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어요. 한 번 날아본 사람은 아무리 떨어져도 다시 그 만큼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린 나이 때부터 배신과 사기를 수도 없이 당하면서 경험이 쌓였고, 많은 걸 배웠어요. 전 지금 주머니가 가벼워요. 여전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지만, 다시 한 번 해보려고요.”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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