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일 만의 등교…단원고 학생들 합숙치료 중 화재 감지기 오인 공포
71일 만의 등교, 71일 만의 등교
71일 만의 등교를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의 최대 피해자 단원고 학생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에서 가까스로 구조된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남녀 학생 74명이 손목에 찬 ‘remember 0416이라고 적힌 노란 팔찌에 눈길이 쏠렸다.
사고 71일 만인 25일 아침 학교 정문 앞에 모습을 드러낸 학생들이 찬 팔찌는 한 기업체가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난 4월16일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의미로 만들어 준 것이다.
지난 4월 중순이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중소기업연수원에서 학부모와 함께 합숙, 심리치료를 받아가며 적응훈련을 거친 학생들은 버스 4대에 나눠타고 학교에 도착했다.
등교에 앞서 학생 대표는 우리 모두의 뜻을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학생들이 직접 쓴 글을 읽어나갔다.
이어 기자라는 말만 들어도 공포에 떠는 친구가 많다. 기자들의 카메라 렌즈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돌아왔다”며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이제는 애타게 불러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다”며 2014년 4월16일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위기의 순간에서 벗어난 학생들이지만, 끔찍한 사고를 겪고 두 달 여 만에 학교로 돌아온 아이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지난 22일 합숙치료를 위해 함께 지내고 있던 숙소에서 화재 감지기가 잘못 작동되는 바람에 또 한 차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소동을 겪기도 했다.
생존 학생의 가족 A씨는 전날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세월호 승무원들에 대한 재판에서 발언을 요청하면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A씨는 엊그제 일요일(22일) 저녁에도 (중소기업연수원) 숙소에 화재감지기가 작동해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리고 경보기가 번쩍거렸다”며 ‘화재가 발생했으니 대피하라는 방송이 서너 차례 나왔을 때 어떤 아이들은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다 다치기도 했고 대부분은 주저앉아 꼼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배에 머물러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떠올린 학생들은 함께 수학여행을 떠났던 친구들을 배에 놓고 나왔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현장에서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화재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런 경보에 놀라 119구급차에 의해 실려 간 학생도 나오는 등, 살아 돌아온 아이들의 아픔은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부모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았습니다.
정문 안에서 기다리던 학부모와 유가족, 교직원들은 교정으로 들어서는 학생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 어깨를 감싸 안아주며 눈시울을 붉혔다.
71일 만의 등교, 71일 만의 등교
71일 만의 등교를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의 최대 피해자 단원고 학생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에서 가까스로 구조된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남녀 학생 74명이 손목에 찬 ‘remember 0416이라고 적힌 노란 팔찌에 눈길이 쏠렸다.
사고 71일 만인 25일 아침 학교 정문 앞에 모습을 드러낸 학생들이 찬 팔찌는 한 기업체가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난 4월16일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의미로 만들어 준 것이다.
지난 4월 중순이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중소기업연수원에서 학부모와 함께 합숙, 심리치료를 받아가며 적응훈련을 거친 학생들은 버스 4대에 나눠타고 학교에 도착했다.
등교에 앞서 학생 대표는 우리 모두의 뜻을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학생들이 직접 쓴 글을 읽어나갔다.
이어 기자라는 말만 들어도 공포에 떠는 친구가 많다. 기자들의 카메라 렌즈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돌아왔다”며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이제는 애타게 불러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다”며 2014년 4월16일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위기의 순간에서 벗어난 학생들이지만, 끔찍한 사고를 겪고 두 달 여 만에 학교로 돌아온 아이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지난 22일 합숙치료를 위해 함께 지내고 있던 숙소에서 화재 감지기가 잘못 작동되는 바람에 또 한 차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소동을 겪기도 했다.
생존 학생의 가족 A씨는 전날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세월호 승무원들에 대한 재판에서 발언을 요청하면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A씨는 엊그제 일요일(22일) 저녁에도 (중소기업연수원) 숙소에 화재감지기가 작동해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리고 경보기가 번쩍거렸다”며 ‘화재가 발생했으니 대피하라는 방송이 서너 차례 나왔을 때 어떤 아이들은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다 다치기도 했고 대부분은 주저앉아 꼼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배에 머물러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떠올린 학생들은 함께 수학여행을 떠났던 친구들을 배에 놓고 나왔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현장에서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화재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런 경보에 놀라 119구급차에 의해 실려 간 학생도 나오는 등, 살아 돌아온 아이들의 아픔은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부모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았습니다.
정문 안에서 기다리던 학부모와 유가족, 교직원들은 교정으로 들어서는 학생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 어깨를 감싸 안아주며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