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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만의 역사적 ‘노히트노런’…여유 없었던 씁쓸한 여운
입력 2014-06-25 06:01  | 수정 2014-06-25 10:13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11번째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NC 다이노스 찰리 쉬렉이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와~ 찰리! 찰리! 찰리!”
지난 24일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 NC 외국인 투수 찰리 쉬렉(29)이 9회말 28번째 마지막 타자였던 LG 박용택(35)을 110구째 좌익수 뜬공으로 잡아낸 순간. 찰리의 이름이 울려퍼졌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4년 동안 사라졌던 노히트노런 대기록이 찰리의 오른 손끝에서 완성됐다. 찰리는 9이닝 동안 단 3개의 볼넷만 내주며 무안타 무실점 기록을 세웠다. 지난 2000년 5월18일 송진우(광주 해태전) 이후 나온 한국프로야구 통산 11번째 대기록이었다.
찰리의 노히트노런이 확정된 순간 NC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로 달려 나와 찰리를 향해 격하게 축하 세리머니를 했다. 비교적 담담했던 찰리는 동료들과 함께 ‘인생 경기의 기쁨을 만끽했다.
감격적인 현장. 오랜 기다림 끝에 완성된 노히트노런 대기록. 그러나 감동과 환희의 순간은 참으로 짧았다. 길게 여운을 느낄 틈도 없었다. 찰리는 그라운드에서 방송 인터뷰를 마친 뒤 쓸쓸히 퇴장했다. 14년 만에 나온 대기록 현장의 감동적 이벤트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기록 달성 때문이었을까. 그저 분주했다. 심지어 NC 구단 스태프는 찰리가 너무 늦게 나온다고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했다. 구단 버스 한 대가 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이유였다. 김경문 NC 감독도 버스로 같이 이동하기 때문에 찰리를 빨리 버스로 보내라”는 재촉이었다.
이날 잠실구장에는 찰리의 가족이 함께 했다. 찰리의 아버지 랜디 쉬렉과 어머니 조이 쉬렉이 지난 21일 한국에 입국해 아들의 감격적인 노히트노런 경기를 직접 관전했다. 찰리의 여자친구 알리사 젠킨스도 동행했다. 경기 내내 숨죽여 아들과 남자친구의 110구를 지켜봤다. 노히트노런이 완성된 순간, 아버지는 기쁨의 미소를 감추지 못했고 어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여자친구는 관중석에서 찰리의 방송 인터뷰 마지막 장면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찰리와 가족, 여자친구의 감격적인 포옹이나 키스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먼 발취에서 지켜봤을 뿐이었다. 찰리는 노히트노런 직후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찰리는 외국인 투수다. 엄밀히 따지면 ‘용병이고 ‘이방인이다. 그래서일까. 외국인 투수 최초의 기록이고 14년 만에 나온 기록이지만, 그를 위한 배려는 부족했다. 또 잠실구장은 원정경기였다. 마음껏 감격을 누릴 수 없는 배경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NC 구단이 필요 이상의 눈치를 봤다.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뒤 관중들의 축하를 받으며 감격하고 있다. 사진=조미예 특파원
지난 19일 미국프로야구(메이저리그)에서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26)가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서 노히트노런 대기록을 작성했다. 커쇼는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이후 감격적인 장면이 연출되며 감동의 여운을 더했다.
커쇼는 선수단은 물론 코칭스태프와 일일이 포옹을 한 뒤 홈팬들 앞에서 노히트노런의 감격을 마음껏 누렸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 누구도 커쇼를 방해하지 못했다. 깜짝 이벤트도 있었다. 방송 인터뷰 도중 커쇼의 아내 엘렌 커쇼가 그라운드로 내려와 진한 포옹을 나눴다. 역사적인 순간을 더 가치 있게 빛낸 장면들이었다.
한국 프로스포츠는 역사적인 기록을 담아내는데 인색하다. 프로야구는 국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표적인 프로스포츠다. 그러나 아직 역사적 기록의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없는 듯했다. 찰리의 노히트노런 뒤에 남겨진 씁쓸한 뒷모습이었다.
[min@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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