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눈의 신부' 정일우 신부 선종, 그의 업적 보니…"뭉클"
'파란눈의 신부'로 알려진 한국 천주교 예수회의 정일우(미국명 존 데일리·세례명 요한) 신부가 선종했습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정 신부는 1960년 9월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1963년 실습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4년 뒤 고등학교 은사인 고(故) 바실 프라이스 신부(2004년 선종)의 영향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정 신부는 프라이스 신부와 함께 서강대에서 강의하던 1972년 학생들이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잡혀 들어간 것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에 눈을 떴습니다. 이때 정 신부는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8일 동안 단식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개발 논리에 밀려 비참하게 살아가는 빈민들의 삶을 접한 뒤 청계천과 양평동 판자촌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빈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빈민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의식 교육을 하고 판자촌 철거 반대 시위를 주도하면서 빈민의 '정신적 아버지'로 자리잡았습니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 곳곳에서 철거작업이 진행되자 상계동과 목동 등지에서 철거민을 도왔고 이들의 자립을 위해 '복음자리 딸기잼'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1998년 귀화한 뒤 충북 괴산에 농촌 청년 자립을 돕기 위한 누룩공동체를 만들어 농촌 운동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2004년 70세 생일을 앞두고 단식 도중 쓰러졌다가 이듬해 중풍으로 다시 쓰러진 뒤 모든 활동을 접고 요양해 왔습니다.
빈소는 성모병원 영안실이며, 장례미사는 4일 오전 8시 30분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열립니다.
정일우 신부 선종에 대해 누리꾼들은 "정일우 신부 선종,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일우 신부 선종,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정일우 신부 선종, 정일우 신부님의 업적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죠. 존경합니다. 좋은 곳으로 가세요"등의 애도를 표했습니다.
'파란눈의 신부'로 알려진 한국 천주교 예수회의 정일우(미국명 존 데일리·세례명 요한) 신부가 선종했습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정 신부는 1960년 9월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1963년 실습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4년 뒤 고등학교 은사인 고(故) 바실 프라이스 신부(2004년 선종)의 영향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정 신부는 프라이스 신부와 함께 서강대에서 강의하던 1972년 학생들이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잡혀 들어간 것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에 눈을 떴습니다. 이때 정 신부는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8일 동안 단식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개발 논리에 밀려 비참하게 살아가는 빈민들의 삶을 접한 뒤 청계천과 양평동 판자촌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빈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빈민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의식 교육을 하고 판자촌 철거 반대 시위를 주도하면서 빈민의 '정신적 아버지'로 자리잡았습니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 곳곳에서 철거작업이 진행되자 상계동과 목동 등지에서 철거민을 도왔고 이들의 자립을 위해 '복음자리 딸기잼'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1998년 귀화한 뒤 충북 괴산에 농촌 청년 자립을 돕기 위한 누룩공동체를 만들어 농촌 운동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2004년 70세 생일을 앞두고 단식 도중 쓰러졌다가 이듬해 중풍으로 다시 쓰러진 뒤 모든 활동을 접고 요양해 왔습니다.
빈소는 성모병원 영안실이며, 장례미사는 4일 오전 8시 30분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열립니다.
정일우 신부 선종에 대해 누리꾼들은 "정일우 신부 선종,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일우 신부 선종,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정일우 신부 선종, 정일우 신부님의 업적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죠. 존경합니다. 좋은 곳으로 가세요"등의 애도를 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