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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만의 퇴장’ 김응용 감독, 한화를 깨우다
입력 2014-05-22 06:01  | 수정 2014-05-22 07:45
김응용 한화 이글스 감독이 15년만의 퇴장을 통해 선수단을 일깨웠다. 21일 목동 한화-넥센전 6회 말 2사 2루에서 윤석민의 2루타 페어 판정에 항의한 김 감독이 선수단을 철수 시키고 있다. 사진(목동)=김영구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73세의 노장(老將) 김응용 감독이 15년만에 퇴장 당했다. 그 퇴장은 잠들어 있던 한화 이글스의 본능을 깨웠다. 강력한 어필은 선수단을 결집시키는데 성공, 1승보다 훨씬 더 값진 1승을 거뒀다. 올해 한화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독수리가 깨어났다.
야구에서 멘탈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경기였다. 동시에 ‘하나된 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지, 그리고 승리를 향한 열정이 경기 내용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경기였다. 또한 노회한 감독의 승리를 향한 집념과 선수단을 일깨우는 비책이 아직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한 경기이기도 했다. 끈끈한 컬러가 없었던 한화에게 볼 수 없었던 집념과 끈기, 그리고 독기는 1승 이상의 무형의 가치였다.
한화는 21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의 원정경기서 석연찮은 심판 판정과 김 감독 퇴장의 어려움을 딛고 9-7 승리를 거뒀다. 수장이 경기 중 퇴장을 당했고 이틀 연속 심판 판정의 제물이 되는 듯 한 분위기서 거둔 극적인 승리. 한화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9회 2방의 홈런포를 묶어 5점을 뽑아내며 감독의 메시지에 부응했다.
이날 한화는 전날인 20일 심각한 오심을 이겨내고 6회초까지 4-2로 앞서갔다. 흐름이 바뀐 것은 6회 말 2사 2루 상황. 넥센 윤석민이 3루 선상을 타고 흐르는 타구를 때려 2루 주자를 불러들였다. 김준희 3루심은 페어를 선언했는데 정확하게 3루 베이스위를 통과했는지 확인이 어려운 상황.
한화의 3루수 송광민을 비롯해 선수단은 타구가 파울이라고 강하게 주장했고 김 감독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왔다. 김 감독은 지난해 부임 이후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한 어조로 판정에 대해 항의했고, 판정이 번복되지 않자 막내 장운호만을 남겨두고 선수단을 철수시키는 강수를 뒀다.
이후에도 김 감독은 강한 어조로 핏대를 세우며 심판진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후에도 선수들에게 짐을 싸라며 거칠게 응수했다. 과거 ‘해태왕조를 이끌던 당시의 익숙했던 모습. 이날 전까지 감독 최다에 해당되는 통산 5회의 퇴장을 당했던 김 감독은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 규칙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에 따라 철수 5분이 지난 시점에서 통산 6번째 퇴장을 당했다.
이날 김 감독은 지난해 부임 이후 가장 강력한 강도로 심판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며 향후 불리한 판정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임과 동시에 선수단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진(목동)=김영구 기자
결국 이 충격요법이 한화 선수단의 승리를 향한 투지를 깨웠다. 7회 맥없이 동점을 허용한 한화는 9회 마지막 공격에서 반전을 이뤄냈다. 선두타자 고동진의 내야안타성 타구 상황 넥센 1루수의 발이 떨어진 듯 보였으나 아웃으로 판정됐다. 충분히 무너질 수 있었던 타이밍이었지만 한화는 그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후속 타자는 이날 경기 전까지 타율 9푼5리에 그치고 있었던 정범모. 하지만 정범모는 어떤 홈런보다 값진 솔로포를 때려 값진 리드를 가져왔다.
이어진 상황, 한화는 이용규와 한상훈의 연속 안타에 이어 정근우의 볼넷으로 기어이 만루를 만들었다. 이후 4번 김태균이 통산 7호째 우월 그랜드슬램을 작렬시켜 승부를 완전히 가져왔다. 40일만의 시즌 4호 홈런. 동시에 2009년 7월7일 대전 히어로즈전 이후 무려 1779일만에 나온 만루홈런이었다. 한화는 9회 구원진이 3실점을 하며 2점차로 쫓겼으나 끝내 승리를 지켰다.
사실 지난해부터 한화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승리에 대한 투지였다. 구원진이 불안한데다 경기 후반 득점이 많지 않다보니 무기력한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전날만 해도 김 감독이 이영재 주심이 명백한 홈 태그아웃 상황을 세이프로 판정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이날 경기 전 사고 날까봐 그랬다”며 농담을 섞어 웃어 넘겼으나 이틀 연속 이어진 석연찮은 판정에는 참지 않았다. 김 감독이 퇴장을 당한 건 해태 감독 시절인 1999년 4월 30일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김 감독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의 불리한 판정과 오심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 동시에 넘어가는 흐름을 끊으며, 선수단에 승리를 향한 의지를 다시 일깨웠다.
효과는 컸다. 이날 만루홈런 포함 5타점 맹타를 휘두른 김태균은 경기 종료 후 감독 님의 퇴장 이후 더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코칭스태프도 꼭 이기자고 이야기했다”며 이날 이를 악물고 뛰었던 배경을 밝혔다. 비단 김태균만이 아니었다. 선수들은 끝까지 기회를 이어 득점을 내기 위해 노력했고, 구원진도 최선을 다했다. 유독 더 뜨거웠던 더그아웃의 분위기에서 이날 승리를 향한 한화 선수단의 의지는 넘칠 정도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여러모로 값진 승리다. 한화가 이날 승리의 과정을 기억한다면 똑같은 상황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성난 코끼리의 성난 일성(一聲)이 독수리를 깨웠다.
[one@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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