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똘똘한 펀드, 너 하나만 있으면돼" 소수정예 펀드의 힘
입력 2014-05-21 17:30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물려줄 100년 펀드의 꿈을 실현하는 게 목표다."(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펀드를 한 개만 남겨 명품 펀드로 키울 작정이다."(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는 자산운용사들이 운용업계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수십 개 펀드를 운용하는 다른 운용사들과 달리 이들 운용사는 한두 개 펀드에 모든 운용 역량을 집중하면서 박스권 장세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운용사의 선전이 감당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펀드를 운용하며 신통치 않은 성과를 내 온 운용사들에 자극제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21일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자산운용사별 연초 이후 수익률 현황에 따르면 에셋플러스(6.51%), KDB자산운용(4.07%), 메리츠자산운용(3.61%) 3개사 수익률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들 운용사의 국내주식형 액티브펀드의 성과를 집계한 수치다. 액티브펀드란 적극적인 운용 전략으로 시장수익률을 초과하는 성과를 추구하는 펀드를 말한다. 같은 기간 국내주식형 액티브펀드들의 평균 수익률이 -0.05%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우수한 성과를 낸 셈이다.

이들 3개 운용사를 관통하는 특징을 꼽자면 소수 정예 펀드에 집중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 에셋플러스자산운용과 메리츠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펀드는 각각 3개에 불과하며, KDB자산운용도 6개로 적은 편에 속한다. 반면 자산운용사들의 국내주식형 액티브펀드는 사당 평균 12.2개에 이른다.
펀드 수가 많은 운용사들의 수익률은 대체로 좋지 않은 편이다. 운용 펀드가 45개에 이르는 하나UBS자산운용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1.19%에 불과하고 △한국투자신탁운용(29개) -1.16% △삼성자산운용(27개) -1.27% △신한BNP파리바(25개) -3.50% 등 저조한 편이다.
그렇다면 펀드 수와 수익률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소수 펀드를 운용하는 경우 운용사의 운용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는 점이 좋은 성과로 이어진다고 분석한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매니저들이 관리해야 할 펀드 수가 많아지게 되면 아무래도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투자유형별로 펀드 수를 최적화하는 게 운용성과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에셋플러스운용과 메리츠운용은 이 같은 '선택과 집중'의 운용 철학이 확고한 운용사로 정평이 나 있다.
가치투자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강방천 회장이 이끄는 에셋플러스운용은 국내 주식투자 역량을 사실상 '에셋플러스코리아리치투게더펀드' 1개에 집중하고 있다. 이 펀드에 에셋플러스 운용 자금의 98.5%가 몰려 있을 정도다. 강 회장은 "운용 역량을 분산시키지 않고 소수 펀드에 주력할 것"이라며 "우리의 투자철학을 고집스럽게 지켜가겠다"고 강조했다.
존 리 대표의 메리츠운용도 대표 펀드인 '메리츠코리아펀드'에 모든 운용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는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는 하나면 충분하다"며 "같은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가 여러 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 두 회사는 한국 자본시장의 중심인 서울 여의도에서 벗어나 사옥을 이전하는 등 신선한 발상으로도 주목받는다.
에셋플러스운용은 분당 판교에, 메리츠운용은 북촌에 둥지를 틀고 있다. 마치 미국을 떠나 카리브해 바하마에 근거지를 뒀던 가치투자의 대가 존 템플턴이나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과 비슷한 모습이다.
연초 이후 국내주식형 펀드(액티브)에서 1조2470억원이 빠져나갔지만 이들 소수 정예 운용사로는 계속 자금이 몰리고 있다. 에셋플러스운용으로는 연초 이후 1054억원, 메리츠운용으로는 346억원이 유입됐다. 이들 운용사를 제외하고 연초 이후 100억원 이상 주식형 펀드로 자금이 몰린 운용사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신영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등 4개사에 불과하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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