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박지성, 그가 남긴 한국축구의 `위대한 유산`
입력 2014-05-14 17:08  | 수정 2014-05-15 08:06
[매경닷컴 MK스포츠 김세영 기자] 박지성(33)이 14일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대한민국은 그의 축구와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지성이 그간 쌓은 업적 속에는 영광의 순간도 있겠지만, 좌절의 순간도 있었다. 그저 그런 선수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참 많았다. 특히 해외 다수의 클럽에서 겪었던 경력은 그의 성공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가 한국축구에 남긴 '위대한 유산'을 정리해 본다.

▲ ‘꼴찌 팀을 우승팀으로 교토 퍼플 상가(2000.06~2002.12 /85경기 12골)
2000년에 명지대학교를 휴학한 박지성은 당시 하위권이던 일본 프로축구(J리그) 교토 퍼플 상가로 입단했다. J리그 시미즈 에스펄스의 스카웃 제의 대신 주전급 대우를 보장한 교토 퍼플 상가를 택하기에 이른다.
박지성은 3년간 교토 퍼플 상가에서 맹활약했다. 팀이 2부리그 강등된 후에도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잔류해 다시 1부리그로 이끌었다. 박지성은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약이 2002년 12월 31일자로 종료됐지만, 팀의 첫 우승을 위해 기꺼이 경기에 출전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2003년 1월 1일에 찾아왔다. 그는 일왕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일본의 FA컵) 결승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맞아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기적의 역전승을 일궈내는 데 일조했다. 후반 7분 프리킥으로 헤딩 동점골을 성공시킨 박지성은 팀의 2-1 역전승을 돕는다. 교토 상가의 첫 우승컵이었다.
▲‘다시 또 처음으로… PSV 에인트호벤(2002.12~2005.06 /92경기 11골)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4강으로 이끈 눈부신 활약으로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선택을 받는다. 박지성은 계약기간 3년 6개월에 연봉 100만달러의 조건으로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명문팀 ‘PSV 에인트호벤으로 떠났다.

2003-04시즌 이적 초기에는 들쭉날쭉한 플레이로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급기야 홈팬들로부터 야유를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에인트호벤의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히딩크 감독은 그를 원정 경기에만 투입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할 정도였다.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간 박지성은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다. 그에게 야유를 보냈던 팬들도 ‘위숭 빠르크 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에인트호벤의 2004-05시즌 리그 우승에 이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행에 있어 박지성은 혁혁한 공을 세운다.
유럽 최고를 위한 기회도 찾아왔다. 챔피언스리그 AS모나코(16강)와 올림피크 리옹(8강)을 차례로 꺾은 박지성은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맞는다. AC밀란과의 원정 1차전 0-2 패배 이후,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박지성은 기적같은 선제골을 꽂아 넣는다. 당시 철벽 수비를 자랑했던 밀란을 상대로 전반 9분 만에 전광석화 같은 선제골을 기록하며 밀란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에인트호벤은 3-1로 승리했으나, 원정 다득점 원칙에 밀려 결승에 오르진 못했다. 그러나 경기 후 박지성의 가치는 치솟기 시작한다. 주요 외신들의 찬사에 이어 팀 동료들 뿐만 아니라 상대팀 밀란에서도 찬사가 이어졌다. 당시 최고의 미드필더로 군림했던 젠나로 카투소는 박지성의 인상적인 플레이에 혀를 내둘렀다. 그의 골은 축구 종가 잉글랜드도 뒤흔들었다. 끝내 박지성은 꿈의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05.07~2012.07/ 205경기 27골)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 명문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박지성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화려한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박지성은 2005년 7월 14일 입단식을 갖고 본격적인 잉글랜드 생활을 시작한다. 2005년 8월 13일 에버턴과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첫 데뷔전을 치른 박지성은 4개월이 지난 12월 21일 버밍엄시티와의 리그컵 경기에서 잉글랜드 무대 첫 골을 신고한다. 이후 2006년 아스날전에서 리그 첫 골을 신고했다.
박지성은 2006-07시즌 2년차 징크스를 극복하고, 꾸준히 성장해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은 선수로 기록된다. 2007-08시즌에는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더블) 우승에 일조했다. 부상 복귀 이후 꾸준한 선발 기회를 잡지 못했던 박지성은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한다. AS로마(8강)와 바르셀로나(4강) 원정경기에 선발 출장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지만, 정작 첼시와의 결승전에선 명단에서 제외되는 아픔도 겪었다. 승부차기 접전 끝에 맨유는 첼시를 6-5로 누르고 ‘빅이어를 들어올린다.
2008-09시즌 초반에는 경기에 나오지 못했지만, 5월 5일 아스날과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전반 8분 만에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이어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 선발 출전해 66분간 활약하면서 결승전에 출전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됐지만, 맨유는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009-10시즌에도 계속된 무릎부상으로 초반 경기를 뛰지 못했지만,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자신의 챔피언스리그 통산 4호골을 터트렸다. 박지성은 당시 상대 핵심선수인 안드레 피를로를 완벽하게 막아 찬사를 받았다. 맨유는 첼시에 밀려 리그 준우승을 거두었지만, 박지성은 리버풀과의 라이벌전에서 시즌 3호골을 기록하는 등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2010-11시즌 한 시즌 최다골을 기록한 박지성의 활약으로 맨유는 19번째 우승을 결정지었다. 2010-11시즌에도 박지성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로 나섰지만, 바르셀로나에게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1년 8월 12일, 박지성은 맨유와 2년 재계약을 맺었고, 2012년 2월 6일, 첼시와의 리그 23라운드에서 맨유 소속으로 통산 200경기에 출전했다. 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92번째 기록이며,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다. 2012년 2월 24일, 아약스와의 유로파리그 32강전에서는 입단 최초로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 박지성은 7시즌 동안 총 205경기 출전, 통산 27골을 넣었다.

▲ ‘조금 아쉬운 마무리 퀸즈파크 레인저스(2012.07~2014.06 / 아인트호벤 임대 포함: 32경기 2골)
2012년 7월 9일, 박지성은 이적료 500만 파운드(한화 약 88억원)로 2년 계약을 하며,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로 전격 이적했다.
2012-13시즌 박지성은 새 주장으로 임명됐지만, 팀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시즌 개막 3개월이 지나도록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최악의 부진 속에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 마크 휴즈 감독은 경질됐고, 새 사령탑으로 해리 레드냅 감독이 임명됐다. 시즌 내내 유수의 선수들들 끌어들임과 동시에 감독까지 교체했지만, QPR은 강등을 면치 못했다. 박지성도 팀 내 워스트 선수로 선정되는 등 불명예를 떠안았다. 박지성은 25경기 출전에 그치며 골 역시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다음(2013-14) 시즌, 에인트호벤과 임대 계약을 확정짓고 8년 만의 네덜란드 무대로 복귀했다. 에인트호벤 선수시절 함께 했던 필립 코쿠(감독)와 재회한 박지성은 팀의 맏형 역할을 소화하며, 다시 한 번 재기에 성공한다. 부상여파 속에서도 팀을 리그 4위와 유로파리그에 안착시키며, 저력을 발휘했다. 시즌 뒤 국내로 복귀한 박지성은 2014년 5월 14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ksyreport@maekyung.com]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