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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안타’ 역사 쓴 이병규와 인색한 KBO
입력 2014-05-07 13:54  | 수정 2014-05-07 14:29
6일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2014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8회 말 1사 1루에서 LG 이병규가 한화 윤규진을 상대로 통산 2000안타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병규가 1루에서 헬멧을 벗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적토마 이병규(40‧LG 트윈스)가 프로야구 역사상 단 4명뿐인 2000안타 대기록을 썼다. 그러나 그는 꿈꾸던 자리에 섰는데 마음껏 감격을 누리지도, 시원하게 웃지도 못했다. 그는 내 스스로 대견하다, 칭찬해주고 싶다”고만 말했다.
이병규는 지난 6일 잠실 한화 이글스전에서 개인 통산 2000안타 금자탑을 세웠다. 종전 양준혁(전 삼성)이 1803경기 만에 작성한 기록을 150경기나 앞당긴 역대 최소 경기(1653) 기록이다. 또 2007년 최초로 달성한 양준혁, 2008년 전준호(전 히어로즈), 장성호(롯데)에 이어 역대 4번째로 2000안타 고지를 밟았다. 한 팀의 유니폼만 입은 프랜차이스 스타로는 최초다.
이병규는 8회말 1사 1루서 한화 투수 윤규진의 초구 중전안타로 2000번째 안타를 작성했다. 그 순간 잠실야구장 전광판에는 이병규의 통산 2000안타 대기록을 알리는 문구가 떴다. 1루 베이스를 밟은 이병규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이병규는 헬멧을 벗어 관중석을 향해 흔든 뒤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으로 세리머니를 했다. 사실 이 순간을 꿈꾸며 준비된 세리머니였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두 아들이 보는 앞에서 역사적 장면을 그렸다. 수많은 커리어를 쌓은 이병규였지만, ‘2000이라는 숫자는 의미가 달랐다.
그러나 모든 것이 급박했다. 경기 진행을 위해 이병규를 재촉했다. 이병규는 짧은 세리머니 뒤 서둘러 다음 플레이를 위해 준비해야만 했다.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며 15시즌, 1653경기를 돌아 노력의 결과로 이룬 2000안타의 감격적인 순간을 누릴 시간으로는 턱 없이 부족한 순간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이병규의 2000안타 대기록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몰려든 팬들의 모습. 사진=LG 트윈스 제공
이병규는 경기 후 방송 인터뷰도 없었다. 끝내기안타를 친 이병규(7번)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병규는 경기 후 기자실을 찾아 공식 인터뷰로 소감을 대신 전했다. 조촐했다.
이병규는 솔직히 섭섭했다. 2000안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대단한 기록인데…”라며 동료들의 축하도 받으며 여유 있게 세리머니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KBO에서 빨리 진행을 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시간을 끌며 세리머니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의 시간적 여유도 주지 못했을까”라고 짙은 아쉬움을 남겼다.
외부적 요인도 있었다. LG는 올 시즌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 김기태 감독의 자진 사퇴로 분위기도 최악이었다. 지난달 한화전 벤치 클리어링 사태도 있었다. 근거 없는 소문에 휘말리며 이병규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이병규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억울함을 표출하지도 못하고 속으로 앓았다.
대기록 역사를 쓴 날,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LG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겪는 고충이다. LG에서 2년차 유니폼을 입은 투수 류제국도 얼마 전 왜 LG가 조금만 못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욕을 많이 하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런 비난을 가장 많이 받는 선수가 이병규다.

국내 프로스포츠는 기록과 역사에 인색하다. 프로야구는 타 종목에 비해 기록에 큰 의미를 둔다. 그러나 이날 이병규의 쓸쓸한 뒷모습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대회요강 표창규정에 의거하여 이병규에게 기념상을 수여할 예정이다. 상패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고 기억시키느냐다. 프로야구 역사상 4번째 2000안타 기록의 순간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이날 경기를 마친 이후 잠실구장 뒤편 기념상품 판매대는 한동안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병규의 2000안타를 기억하기 위한 팬들의 발걸음이었다. 그라운드가 아닌 야구장 뒤의 풍경이었다.
[min@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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