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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방송비하인드] ‘기황후’ 소품팀, 사료(史料)와의 전쟁을 선포하다
입력 2014-04-26 11:28 
[MBN스타 금빛나 기자] 화면상 아주 잠깐 지나가는 부분일지라도 저희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할 수밖에 없어요. 카메라에 비치는 작은 물건 하나가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이죠. 제가 일해서가 아니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그만큼 고생한 티가 안 나는 곳이 바로 ‘소품인거 같아요.”

브라운관을 통해 보는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의 세계는 화려하다. 거대한 중국대륙을 호령했던 원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웅장함은 물론, 고려 공녀에서 원나라 제 1황후가 되는 기황후의 삶을 다루는 만큼 섬세하면서도 이국적인 아름다움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기황후의 세계를 탄생시킨 숨은 공신은 소품에 있다. 그동안 사극의 단골 소재인 조선과 ‘기황후의 시대인 원나라를 구분시켜 준 데에는 소품의 힘이 8할이나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면 밖에서 소품을 통해 ‘기황후의 세계를 꾸미고 있는 소품팀원들과 만나 이에 얽힌 뒷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인만큼, 조선의 미술은 실용적인 서민공예를 중심으로 발달해 나갔다. 조선백자로 대표되는 조선의 미학은 소박한 선비의 지조를 강조하듯 소박하면서도 청아한 아름다움 중시했고, 현대의 사극들은 이러한 부분을 부각하기 위한 소품들을 적극 사용해 왔다.

하지만 ‘기황후의 시대배경이 되는 곳은 조선이 아닌 거대한 중국대륙을 하나로 통일시켰던 원나라(지금의 몽골)다. 조선 보다 앞선 시대인 데다, 영토와 민족까지 다르다보니, 자연스럽게 기존의 사극들과는 차이를 보이게 됐다. 이 같은 차이는 기존의 소품들을 사용하는데 있어 한계를 만들어 냈고, 결국 ‘기황후는 ‘기황후 만의 소품을 준비하기에 이르른다.

이때 가장 먼저 당면한 문제는 바로 자료였다. 일정한 거처를 정하지 않고 물과 풀밭을 찾아 옮겨 다니면서 목축을 해왔던 유목 민족들의 국가 원나라인 만큼 기록된 역사와 유적, 자료 등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황후의 모티브가 된 기황후 역시 그녀가 공녀출신의 고려 여인이라는 사실 외에는 그 이름도 전해지지 않을 정도다. 이에 따라 ‘기황후 소품팀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했던 과제는 바로 ‘부족한 사료와의 전쟁이었다.

사극이나 시대극 등 소품을 준비할 때 가장 힘든 점은 지금은 없는 그 시대만의 물건들을 구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나마 요즘은 인터넷에 자료가 풍부해서 한층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무조건 책을 붙들 수밖에 없었죠. 예전에 이사할 때 이삿짐 절반 이상이 책이었으니 말 다했죠.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좋아졌다고 한들 여전히 어려운 부분들은 있어요. 예를 테면 극중 기승냥이 연못의 잉어에게 밥을 주는 장면에서, 과연 옛날 사람들은 어떤 ‘물고기 밥을 사용했을까 하는 거죠. 만약 현대극이면 그냥 사료를 사서 던지면 되지만, 그때는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하잖아요. 그럼 저희는 고민에 빠지는 거죠. 어떻게 하는 것이 극에 어울릴까, 혹시 이때 이런 걸 사용하면 어색하지 않을까 하고요. 잠깐 스쳐 지나가는 신일지라도, 작은 디테일 하나가 작품의 완성도를 좌지우지 하다 보니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는 거죠.”

소품팀은 크게 세트팀과 소도구팀으로 나뉜다. 세트팀은 말 그대로 극의 필요한 세트(촬영에 쓰기 위하여 꾸민 여러 장치)를 만드는 곳으로, 처형틀과 같은 큼직한 소품들을 제작한다. 세트팀의 작업이 끝나면 다음은 소도구팀들의 차례다. 미적 센스를 발휘한 다양한 소품을 이용해 화면을 꾸미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감독의 눈에서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것이라고 한들 전체 촬영을 진두지휘하는 감독과 뜻이 맞지 않다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 준비해온 소품을 사용하지 못 할 때도 많다. 시대에 맞게 잘 보이지 않는 청동거울을 준비해 왔지만, 아무래도 드라마다 보니 여러 조건들을 고려한 감독의 지시에 따라 현대의 거울로 교체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유의해야 할 것은 ‘카메라에 어떤 모습으로 담기느냐다. 카메라 동선이나 각도 등에 따라 전해주는 느낌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미리 파악해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대본숙지를 감독 못지않게 철저하게 하는 곳이 바로 소품팀”이라는 팀원들의 자부심처럼, 소품팀은 작가와 감독의 마음을 파악하고 카메라 기법까지 생각해야 하는 일종의 멀티플레이와 같다.

왕권을 나타나는 옥쇄에서부터, 강렬한 색체를 자랑하는 장식품들, 조선왕조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던 등불 등의 ‘기황후 속 소품들은 기존의 사극 속 조선시대와 차별을 두고 있다. 실제 역사적으로 원 간섭 당시 원나라와 고려가 서로의 영향을 받았던 만큼 ‘기황후 속 소품들은 호화롭고 귀족적인 고려의 미술을 참조했다.


또한 ‘기황후에서 주 배경이 되는 곳이 전쟁터가 아닌 궁중암투가 이뤄지는 중국 원나라 황실이다 보니 투박함 보다는 빨강과 황금색 등 강렬한 원색으로 아름다움을 꾀했다. 중간 중간 삭막해 보일 수 있는 곳들은 꽃을 이용해서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밋밋해 곳들은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작은 장식품으로 채웠다. 얼핏 보면 여성의 시각에서 섬세하게 꾸며진 것처럼 보이는 ‘기황후의 황실이지만 이를 꾸민 이들은 모두 투박한 손을 자랑하는 남자들이었다.

사실 의상팀이나 다른 팀에는 여자 팀원들이 있지만, 소품팀만큼은 금녀의 구역이에요. 이건 저희 뿐 아니라 전 방송사 역시 마찬가지일 거예요. 저희가 일부로 차별을 하는 아니라 그만큼 여자들이 버티기 어려운 곳이라는 뜻이죠. 같은 남자라도 ‘군필은 필수라고 말할 정도로 아무나 들어올 수 있지만 아무나 버티지 못하는 곳이 바로 소품팀이거든요. 겉보기에는 거칠어보이지만 그래도 ‘기황후 뿐 아니라 ‘대장금 ‘동이 등 많은 작품에서 꾸미고 장식한 경험이 원체 많다보니 이제는 웬만한 여자들보다 꾸미는 걸 더 잘해요.”

소품팀의 소속은 바로 방송미술국이다. 이에 소품팀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 미술을 전공으로 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미술을 전공한 이는 극히 일부였고, 성악전공, 윤리교육학 전공, 연극영화과 전공, DJ 출신 등 각양각색이었다.

분장팀이나 의상팀, 조명팀 등 다른 분야들은 전문 양성기관을 통해 오는 이들이 많지만 소품팀 만큼은 전문양성기관이 없다보니 무조건 습득이에요. 소품 챙긴다고 해서 쉽게 보는 이들도 많은 것 같은데 진짜 상상이상으로 힘들거든요. 소품은 매 순간 필요하다보니 밤샘작업은 기본이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매 순간이 고비이고 고난의 연속이에요. 게다가 분명 소품을 준비하기 위해 배워야 할 것도, 알 것도 많지만 이를 교육시켜주는 기관이 없다보니, 아무런 정보와 준비 없이 쉽게 접근했다가 하루만 하고 줄행랑치는 이들도 정말 많아요.”

어느 팀보다도 대본을 충실히 파악하고 준비하는 소품팀이다. 하지만 알아봐주는 이 없다보니, 잘하면 본전 못하면 득달같은 지적과 질타가 이어지는 곳이 바로 ‘소품팀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속상한 마음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하나하나 신경쓰면 일 못한다”고 허심탄회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냥 내 작품을 만든다 생각하고 일을 하는거지, 사람들 칭찬을 기대하거나 돈을 보고 한다면 절대 이 일 못해요.”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 ‘기황후 속 등장하는 소품들을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기황후의 곶감사랑, 진짜 곶감 PPL 아니에요?”

PPL 아닙니다. 저희는 정말 100% 대본에 있는 그대로 재현한 것뿐이에요.”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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