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주거문제의 우선적 해결과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억제하기 위해 지난 1989년 4월 신도시개발 계획을 전격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서울과 인접한 5개 지역을 신도시로 지정하고 주택 200만호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1기 신도시는 주택난이 심각했던 수도권을 쾌적하게 변화시켰고, 임대주택을 공급해 전·월세 등 주거 약자들에게 주거생활의 질을 한 단계 상승시켰다는 호평과 함께 건설경기 과열, 교통체증, 주거환경 획일화 같은 부작용도 공존했다.
이 중 분당신도시는 수도권 기능을 분산 수용하는 것과 수도권의 과밀화 현상을 완화시키고자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도시기능이 우수한 강남지역의 주택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도시기능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첨단 도시기반 시설 갖춘 신도시로 건설된 ‘분당
1989년 8월~1996년 12월까지 개발된 분당신도시는 서울 도심에서 동남쪽 25km 반경 내에, 서울 강동구, 강남구와는 10km 이내에 위치해 있다.
계획대상 지구는 경부고속도로 동쪽의 개발 가능지 대부분을 포함하되, 군사 시설 및 비행안전구역을 제외했다. 대상 지역 중앙부는 남북방향으로 좁고 긴 평탄지였고, 동부와 남동부는 표고 300m~400m의 급경사 산지였다.
신갈에서 발원한 탄천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북으로 흘러서 양재천과 합류해 한강에 이른다. 동서방향으로는 야탑천 등 6개의 지류가 연결되나, 전체영역은 넓지가 않으며 평상시 수량도 매우 적었다. 남단상류 쪽 지류인 동막천은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분당신도시는 쾌적한 환경과 안전한 도시, 그리고 편리한 시설을 목표로 삼은 야심의 제1기 신도시의 대표작이다. 공해없는 미래지향적 도시공간을 창조하고 충분한 녹지공간과 편익시설을 확보하며 자연과 조화되는 도시경관을 만들고자 했다.
신도시 내부도로 건설, 자체발전소 설치, 지역난방시스템의 도입, 취사용 연료로 무공해인 LNG의 사용 등 최첨단 도시기반 시설을 갖춘 신도시로 건설됐다.
이 외에도 전통조경 양식의 도입으로 47만㎡ 규모의 중앙공원조성과 국내 최초의 야생 수목 재활용, 조상의 문화보전을 위한 문화재 사전조사와 발굴에까지 큰 관심을 뒀으며 장애우도 이용 가능한 육교건설 등 쾌적한 도심을 완성했다.
특히 분당선 전철 중 18.5km의 분당~수서 구간은 총 사업비 7320억원이 사업시행자인 당시 한국토지공사(현 LH)가 6845억원, 철도청이 248억원, 서울시가 235억원을 분담해 1994년 9월1일 개통됐다.
그 후 6.6km의 수서~선릉 구간은 1994년 9월 1일 연장 개통했고, 2564억원의 비용을 사업시행기관이 부담하게 됐다. 이 구간은 2012년 10월 1일 왕십리까지 연장됐고, 2013년 11월30일에는 수원까지 연장 개통되어 분당 신도시 주민의 수도권 내 대중교통 접근이 원활하게 됐다.
신도시 사업 추진 첫해인 1989년은 국민의 불안감 해소와 전체사업의 성공을 위해 매우 중요한 때였다. 정부는 1989년 4월 27일 발표한 ‘신도시 건설계획에서 올해 10월 착공해 11월에 분양을 개시한다”고 발표했으며 실천방안으로 ‘시범단지 건설을 결정했다.
시범단지의 목적은 우선 신도시 건설이 정상 추진되고 있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제공하고, 우수한 설계와 시공으로 쾌적한 단지를 선보여 성공적인 사업추진을 유도하며, 시중 여유자금을 흡수해 주택가격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범단지의 위치는 분당의 표준적인 모형이 된다는 점에서 지하철 역사 인근과 소음 등을 최소화하는 녹지공간이 인접한 지역을 물색해 서현동, 수내동, 분당동 일원을 선정했다.
이름 그대로 분당 신도시의 시범적으로 조성된 시범단지는 분당 신도시 전체로 보았을 때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못한 초기의 단지였기 때문에 모든 부분이 미흡했고 생활에도 불편함이 많았다.
주거 우선으로 진행하다보니 주위의 상업시설 및 생활편익시설이 전무해 필요시에는 성남시 구시가지까지 가야하는 불편과 주위 도로개설의 미비로 단지에 접하기까지는 미 포장도로를 거쳐야 했는데, 맑은 날에는 비산하는 흙먼지로 고생해야 했고 비가 오는 날에는 장화를 신지 않고는 시범단지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먼저 겪은 고생의 보답(?)으로 재산가치 상승은 분당 신도시 내 어느 지역보다 재산 증식의 효과는 여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한 시범단지이기도 했다.
개발 당시 문화유적 보존에 논란 및 관심 많아
분당은 개발과정에서 문화 유적의 보존에 대한 많은 논란과 관심을 받았다. 1989년 7월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해 연합 발굴단이 1990년 6월부터 12월까지 발굴 조사를 했다.
문화유적 중에 수내동 한산 이씨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16호), 정자동 전주 이씨 서원군파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17호), 정자동 전주 이씨 태안군파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18호), 한산 이씨 종가인 이택구 가옥(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78호) 등 4개의 유적은 1990년 12월 29일 지방문화재로 지정 고시됐다.
유적 중 일부는 현장에 그대로 두고 사업을 추진할 경우 많은 문제점이 야기될 것으로 판단, 전주 이씨 태안군파의 이평수 묘역과 전주 이씨 서원군파 묘역은 1990년 4월 19일 현상변경 허가를 받고, 발굴 조사 후 1992년 6월 30일 사업지구 밖으로 이전했다.
신도시 건설시 전통문화의 양상과 자연환경을 남기기 위해 20개의 동명과 가로명에 대해 전문가의 자문 등으로 마을 이름은 ‘까치마을 ‘느티마을 ‘청솔마을과 같은 단지의 이름은 지역 역사를 살려 신도시에서 고유한 것이면서도 가능한 우리말로 지었다.
계획당시 수용인구는 39만명이었고 수용호수는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을 합쳐서 9만 7500호로 정해졌다. 사업면적은 1963만 9219㎡으로 용지비가 1조 2565억원, 개발비 1조 3315억원, 간선시설 지원비가 1조 5762억원으로 총 사업비는 4조 1642억원이 투입됐다.
[자문 JNK 개발원 정인택 원장 / 정리 조성신·이미연기자]
[참고] 정인택 원장은 現 JNK 개발원 원장으로 사단법인 도시경영 포럼 부회장과 前 서울시 도시정비과, 한국토지공사 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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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서울과 인접한 5개 지역을 신도시로 지정하고 주택 200만호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1기 신도시는 주택난이 심각했던 수도권을 쾌적하게 변화시켰고, 임대주택을 공급해 전·월세 등 주거 약자들에게 주거생활의 질을 한 단계 상승시켰다는 호평과 함께 건설경기 과열, 교통체증, 주거환경 획일화 같은 부작용도 공존했다.
이 중 분당신도시는 수도권 기능을 분산 수용하는 것과 수도권의 과밀화 현상을 완화시키고자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도시기능이 우수한 강남지역의 주택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도시기능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첨단 도시기반 시설 갖춘 신도시로 건설된 ‘분당
1989년 8월~1996년 12월까지 개발된 분당신도시는 서울 도심에서 동남쪽 25km 반경 내에, 서울 강동구, 강남구와는 10km 이내에 위치해 있다.
계획대상 지구는 경부고속도로 동쪽의 개발 가능지 대부분을 포함하되, 군사 시설 및 비행안전구역을 제외했다. 대상 지역 중앙부는 남북방향으로 좁고 긴 평탄지였고, 동부와 남동부는 표고 300m~400m의 급경사 산지였다.
신갈에서 발원한 탄천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북으로 흘러서 양재천과 합류해 한강에 이른다. 동서방향으로는 야탑천 등 6개의 지류가 연결되나, 전체영역은 넓지가 않으며 평상시 수량도 매우 적었다. 남단상류 쪽 지류인 동막천은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분당신도시는 쾌적한 환경과 안전한 도시, 그리고 편리한 시설을 목표로 삼은 야심의 제1기 신도시의 대표작이다. 공해없는 미래지향적 도시공간을 창조하고 충분한 녹지공간과 편익시설을 확보하며 자연과 조화되는 도시경관을 만들고자 했다.
신도시 내부도로 건설, 자체발전소 설치, 지역난방시스템의 도입, 취사용 연료로 무공해인 LNG의 사용 등 최첨단 도시기반 시설을 갖춘 신도시로 건설됐다.
이 외에도 전통조경 양식의 도입으로 47만㎡ 규모의 중앙공원조성과 국내 최초의 야생 수목 재활용, 조상의 문화보전을 위한 문화재 사전조사와 발굴에까지 큰 관심을 뒀으며 장애우도 이용 가능한 육교건설 등 쾌적한 도심을 완성했다.
[2003년 분양된 분당 정자동 일대 주상복합아파트, 매경DB]
또한 서울의 지하철과 연계되는 분당선 개설로 서울과의 분당선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교통의 편리성까지 배려된 신도시로, 해외 도시 관련 전문가들이 보고 싶어하는 세계적인 신도시의 표본 도시로 만들어졌다.특히 분당선 전철 중 18.5km의 분당~수서 구간은 총 사업비 7320억원이 사업시행자인 당시 한국토지공사(현 LH)가 6845억원, 철도청이 248억원, 서울시가 235억원을 분담해 1994년 9월1일 개통됐다.
그 후 6.6km의 수서~선릉 구간은 1994년 9월 1일 연장 개통했고, 2564억원의 비용을 사업시행기관이 부담하게 됐다. 이 구간은 2012년 10월 1일 왕십리까지 연장됐고, 2013년 11월30일에는 수원까지 연장 개통되어 분당 신도시 주민의 수도권 내 대중교통 접근이 원활하게 됐다.
신도시 사업 추진 첫해인 1989년은 국민의 불안감 해소와 전체사업의 성공을 위해 매우 중요한 때였다. 정부는 1989년 4월 27일 발표한 ‘신도시 건설계획에서 올해 10월 착공해 11월에 분양을 개시한다”고 발표했으며 실천방안으로 ‘시범단지 건설을 결정했다.
시범단지의 목적은 우선 신도시 건설이 정상 추진되고 있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제공하고, 우수한 설계와 시공으로 쾌적한 단지를 선보여 성공적인 사업추진을 유도하며, 시중 여유자금을 흡수해 주택가격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범단지의 위치는 분당의 표준적인 모형이 된다는 점에서 지하철 역사 인근과 소음 등을 최소화하는 녹지공간이 인접한 지역을 물색해 서현동, 수내동, 분당동 일원을 선정했다.
이름 그대로 분당 신도시의 시범적으로 조성된 시범단지는 분당 신도시 전체로 보았을 때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못한 초기의 단지였기 때문에 모든 부분이 미흡했고 생활에도 불편함이 많았다.
주거 우선으로 진행하다보니 주위의 상업시설 및 생활편익시설이 전무해 필요시에는 성남시 구시가지까지 가야하는 불편과 주위 도로개설의 미비로 단지에 접하기까지는 미 포장도로를 거쳐야 했는데, 맑은 날에는 비산하는 흙먼지로 고생해야 했고 비가 오는 날에는 장화를 신지 않고는 시범단지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먼저 겪은 고생의 보답(?)으로 재산가치 상승은 분당 신도시 내 어느 지역보다 재산 증식의 효과는 여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한 시범단지이기도 했다.
개발 당시 문화유적 보존에 논란 및 관심 많아
분당은 개발과정에서 문화 유적의 보존에 대한 많은 논란과 관심을 받았다. 1989년 7월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해 연합 발굴단이 1990년 6월부터 12월까지 발굴 조사를 했다.
문화유적 중에 수내동 한산 이씨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16호), 정자동 전주 이씨 서원군파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17호), 정자동 전주 이씨 태안군파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18호), 한산 이씨 종가인 이택구 가옥(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78호) 등 4개의 유적은 1990년 12월 29일 지방문화재로 지정 고시됐다.
유적 중 일부는 현장에 그대로 두고 사업을 추진할 경우 많은 문제점이 야기될 것으로 판단, 전주 이씨 태안군파의 이평수 묘역과 전주 이씨 서원군파 묘역은 1990년 4월 19일 현상변경 허가를 받고, 발굴 조사 후 1992년 6월 30일 사업지구 밖으로 이전했다.
신도시 건설시 전통문화의 양상과 자연환경을 남기기 위해 20개의 동명과 가로명에 대해 전문가의 자문 등으로 마을 이름은 ‘까치마을 ‘느티마을 ‘청솔마을과 같은 단지의 이름은 지역 역사를 살려 신도시에서 고유한 것이면서도 가능한 우리말로 지었다.
계획당시 수용인구는 39만명이었고 수용호수는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을 합쳐서 9만 7500호로 정해졌다. 사업면적은 1963만 9219㎡으로 용지비가 1조 2565억원, 개발비 1조 3315억원, 간선시설 지원비가 1조 5762억원으로 총 사업비는 4조 1642억원이 투입됐다.
[자문 JNK 개발원 정인택 원장 / 정리 조성신·이미연기자]
[참고] 정인택 원장은 現 JNK 개발원 원장으로 사단법인 도시경영 포럼 부회장과 前 서울시 도시정비과, 한국토지공사 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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