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최초 신고 학생 / 사진=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세월호 최초 신고 학생' '세월호'
입관실에 모인 단원고등학교 2학년 최덕하(18) 군의 가족들은 입관의식이 끝난 뒤에도 노란 천을 덮고 아무 말 없이 누워있는 최군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한참을 흐느꼈습니다.
최군의 시신을 담은 관이 옮겨지자 아버지 최성웅(52)씨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장례식장 밖으로 힘없는 걸음을 옮겼습니다.
최씨는 전날까지 전남 진도에서 수습된 시신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팽목항과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오가며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잠수부들을 찾아가 "남의 목숨을 담보로 죽은 자식 살리기 싫다"고 말하고 아들을 바다에 묻기로 뼈아픈 결심을 하려던 찰나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의 시신을 찾았다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한걸음에 달려가 만난 아들은 추위에 떨었던 듯 트레이닝복 위에 반바지를 겹쳐 입고 있었다. 구명조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최씨는 "바다를 보며 기도 밖에 할 수 없는 한심한 현실에 화만 났는데 이렇게라도 (아들이) 돌아와 줘서 정말 감사하다"며 "구명조끼라도 입었으면 가슴이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는 "전날 밤에 덕하가 안개가 많이 끼어 출항이 늦어지고 있다고 전화했는데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며 "애미, 애비에 전화할 새도 없이 신고를 하고 이렇게 돌아온 아들이 자랑스럽지만 정말 보고싶다"고 흐느꼈습니다.
장례식장을 찾은 성당 교우들은 최덕하 요한이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가 미처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남윤철 담임교사를 유독 따랐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그 선생님에 그 제자"라며 안타까운 듯 혀를 차고 빈소로 향했습니다.
최군의 시신은 23일 바다 속 깊이 가라앉은 세월호에 진입해 수색에 나선 잠수부들에 의해 4층 선미 부분에서 발견됐습니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유족과 협의해 최군을 의사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한편 24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전날 4층 선미 부분에서 최초 신고자인 단원고 학생 A군을 발견했습니다.
앞서 A군은 지난 16일 오전 8시 52분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한다'는 첫 신고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는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첫 신고보다 3분 앞선 시각이었습니다.
A군은 당시 "제주도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바꿔 드릴까요?"라고 신고했습니다.
해경은 A군의 신고전화를 소방본부로부터 건네받고 구조선과 헬기 등을 보내 승객 174명을 구조했습니다.
세월호 최초 신고 학생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세월호 최초 신고 학생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세월호 최초 신고 학생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월호 최초 신고 학생 끝까지 책임감있는 행동을 보인 아드님 너무 자랑스럽고 안타깝습니다"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