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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자24시]‘축제의 달’은 없다…애끓는 영세기획사
입력 2014-04-23 13:07  | 수정 2014-04-23 14:24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실종자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촛불 기도회가 지난 21일 오후 안산 문화광장에서 열렸다(사진=유용석 기자)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우영 기자] T.S. 엘리엇은 시(詩)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차라리 '겨울이 오히려 따뜻했다'고 한다. 봄비가 잠든 뿌리를 깨우기 때문이다. 돋아난 새싹은 이제 비·바람을 견뎌내야 한다.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 살기 위해 버텨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전 국민이 슬픔에 빠진 시점이다. 방송·연예가가 거의 멈췄다. 웃고 노래하는 풍경을 찾아보기 어렵다. 어느새 사고 1주일 여가 지났지만 활동 재개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조심스럽다. 사고 희생자와 가족을 떠올리면 이들의 상황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마냥 넋놓고 무기력해질 수만도 없다. '황무지'에서 새싹은 돋아나 또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것이 생명이자 우리네 삶이다. 시인은 그것이 잔인하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잔인한 이야기지만 영세한 소규모 기획사일수록 타격이 크다. '축제의 달' 5월은 없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가수들의 실질적인 수익은 행사와 광고모델료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음반·음원 판매나 방송 출연 등을 통한 수입은 사실상 무의미한 수준이다.

23일 공연기획업계에 따르면 전국 주요 대학들이 축제를 취소하거나 잠정 연기했다. 국민대 동국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한성대 한양대(가나다 순) 등이 이미 다음달 축제를 취소했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논의 중이다. 수 십여 지방자치단체의 봄꽃 축제나 문화제 등도 대거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불가피하게 진행해야 될 축제는 소박하게 꾸려질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가수들의 설 자리가 크게 줄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 축제나 지자체 행사 횟수는 예년과 비슷했으나 경기 위축으로 인해 기관·기업·대학들이 예산 규모를 줄였던 터다. 해외 진출도 드물고 팬덤이 약해, 별다른 수입이 없는 인디·힙합 뮤지션의 주머니는 더욱 얇아지는 분위기다.
몇 천 만원 이상 (행사) 출연료를 받는 아이돌그룹에 비해 인디·힙합 뮤지션의 몸값은 10분의 1이다. 적게는 30만원부터 많게는 700만원 정도다. 그럼에도 여느 아이돌 그룹보다 열정적이고 흥겨운 무대로 인기가 많은 한 힙합 듀오는 요즘 울상이다.
소속사 관계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스케줄이 90% 가까이 급감했다"며 "대목 시장이 무너지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솔직히 올 한해가 암담하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6월 열리는 '2014 브라질 월드컵'이 회생 기회가 될 지는 의문이다. 각지에서 응원전과 축하 공연이 펼쳐지는 이 시기는 평소 주류 무대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밴드의 활약이 가장 기대되는 때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다. 현장에 초대를 받으려면 공개적으로 미리 응원가를 발표해야 하는데, 애도 분위기 속에서 이는 불가능하다. 더불어 빅 스포츠 이벤트 열풍을 피하기 위해 4월과 5월께 컴백을 준비 중이던 대형 가수나 아이돌 그룹이 대부분 시기를 늦췄다. 이들과의 경쟁이 영세기획사 아티스트에게는 벅찬 일이다.
탄탄한 자본력이 뒷받침 된 대형기획사가 아닌, 영세한 중소업체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우려가 계속 나오는 이유다. 수입원이 바닥난 상태로 몇 개월을 유지하기 힘든 회사가 가요계에는 부지기수다.
A 기획사 관계자는 "모두가 세월호 참사로 비통해 하고 있지만 추모 분위기가 길어질 경우 우리도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며 "돈과 시간을 들여 내놓은 앨범이 묻혀지면 (투자사로부터 받은) 빚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지금 이 순간에 살 걱정을 해야 하는 내가 싫지만, 그것이 냉혹한 현실인 걸 어쩌겠느냐. 애간장이 탄다"고 말했다.
쥐구멍에 몰린 영세 기획사들의 법적 분쟁도 뜨거운 감자다. 이미 행사 출연료로 받은 돈 때문이다. 작은 금액일지라도, 몇몇 기획사는 수입이 생기면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는 이른바 '돌려막기'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B 기획사 관계자는 "천재지변이 아닌 이상 행사가 취소되면 받은 출연료를 주최 측에 반환할 필요가 없다"면서 "그럼에도 도의상 돌려주겠지만 당장 형편이 어려운 곳은 서로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답답해 했다.

fac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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