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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조선의 엔터테이너⑦] 지식을 사고팔던 조선의 기인 조신선
입력 2014-04-09 14:50  | 수정 2014-04-09 15:26
김영주 작가의 장편소설 "책쾌"의 표지
[MBN스타] 인쇄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책은 귀한 물품이자 재산이었다.

교보문고 같은 서점이나 예스24(yes24) 같은 온라인 서점도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원하는 책을 손에 넣으려면 반드시 중개상이 필요했다. 서쾌, 혹은 책쾌라고 불리는 서적 중개상들은 언뜻 생각하기에 예술가나 스타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책쾌는 단순한 중개상이 아니었다. 관련된 정보들이 제한되어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책이 어떤 내용인지 상태는 어떤지를 알고 있어야만 했다. 따라서 한문을 알고 있어야 했던 것은 물론이고, 아울러 책을 팔고 싶어 하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을 두루 꿰뚫는 인맥과 대인관계도 필수적이었다.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지식을 사고파는 존재라고 봐도 무방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수많은 책쾌들이 활동했지만 조신선의 존재는 개중에도 두드러졌다. 정약용의 다산 시문집을 비롯한 조수삼의 ‘추재기이(秋齋紀異)에 그의 이야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비롯한 당대의 지식인들은 물론이고 한양 백성 중에도 그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일단 그의 나이나 고향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언제부터 책쾌 노릇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해만 뜨면 한양을 누비고 다녔는데 항상 책을 끼고 다녔다고 한다. 사람들과 오랫동안 어울려 지낸 탓에 넉살도 좋았고, 아는 것도 많아서 누가 말을 붙여도 꿀리지 않았다. 그리고 술을 좋아해서 항상 책을 사고팔아서 이익이 남으면 주막으로 달려가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짚신과 베옷으로 사시사철을 보냈다고 하니, 책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양한 고객들을 상대로 책을 팔았는데 선비뿐만 아니라 글을 배우는 학동이나 마부까지 가리지 않았다. 이렇게 폭넓은 고객을 상대하려면 그들이 어떤 책을 원하고 그것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두 꿰뚫어야만 했다. 실제로 그가 책을 사려는 했던 선비와 나눈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책의 내용은 물론 판본과 발행 시기까지 줄줄이 얘기했다. 평생 책을 읽은 선비와 책을 주제로 막힘없이 대화를 나눌 정도로 박학다식함을 자랑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나이와 고향은 물론 어디에 사는지조차 몰랐다고 하는 걸 보면 온종일 책을 구하고 팔고 술을 마셨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내일은 누구에게 책을 사고 어떤 사람에게 넘길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런 모습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매우 기이하게 비쳤을 것이다. 누군가 왜 그렇게 책을 고생스럽게 사고파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비록 책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누가 무슨 책을 언제부터 가졌는지 잘 알고 있다오. 그리고 그 책의 내용이 무엇이고 누가 언제 썼는지도 꿰뚫고 있지. 그러니까 이 세상의 책은 모두 내 책이란 말이오. 세상의 책이 모두 사라진다면 나는 책을 팔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술잔을 기울이지도 못했을 것이오. 이는 하늘이 나에게 점지해준 일이니 죽을 때까지 책을 사고팔 생각이요.”

책에 대한 관능적인 집착과 광기가 느껴진다면 나만의 생각일까? 하지만, 조신선은 분명히 책을 사고파는 것을 상행위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지는 않았다. 그는 책을 사고파는 것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겼다.


영조 47년인 서기 1771년, 이렇게 맹활약을 하던 조신선을 비롯한 책쾌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진다. 영조가 불온서적들을 유통한다는 명목으로 책쾌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체포된 책쾌들이 사형에 처하고 가족들이 모두 유배를 떠난 와중에 조신선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하지만, 몇 해 뒤 다시 나타난 그는 여전히 책을 가슴에 품고 달렸다. 죽음조차 책을 향한 그의 뜀박질을 막지 못한 것이다.

정명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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