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이달 말 4년 임기를 완주하고 야인으로 돌아간다. 김 총재는 지난 4년 재임 기간을 "치열했다. 공과(功過)는 지금 당장보다는 시간이 흐른 뒤 평가될 것"이라고 소회하며 나름 후한 평가를 내렸지만 그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후하지만은 않다.
재임 기간 폐쇄적인 한은 조직에 성과중심의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주요국 중앙은행과 교류를 확대하며 한은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통화정책운영과 시장과의 소통 측면에서는 다소 평가가 엇갈린다.
◆폐쇄적 한은에 경쟁체제 도입…글로벌 위상 제고
김 총재가 한은에 준 가장 큰 변화는 조직의 개방성을 확대한 점이 손꼽힌다. 박사급 연구인력, 외화자산운용인력, IT전문인력 등 조직의 경쟁력과 유연성 제고를 위해 전문·경력직원 영입을 꾸준히 확대했다. 특히 부총재보, 경제연구원장, 외자운용원장, 일부 부장 및 팀장 직위 등에 대해서는 대내외 공모 등을 통해 임용했다. 재임 기간 총 64명이 채용돼 신규 인력 중 전문·경력직원 비율이 4명중 1명꼴인 평균 25%에 달했다.
성과중심의 급여체계 개편도 김 총재 부임 후 한은의 변화다. 성과연봉제 대상을 기존 2급 이상 직원에서 3급 팀·반장 이상 직원으로 확대했다. 기존 하향식평가(근무성적평가) 및 상향식평가(관리능력조사)에 수행평가(동료평가) 등을 추가하는 등 다면평가시스템도 마련했다.
글로벌 시대에 한은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 힘쓴 점도 긍정적 평가다. 재임 중 국외 국제기구를 비롯해 주요국 중앙은행에 13명을 파견했으며 그 외 동남아시아중앙은행기구 소장 및 조사연구국장, 동아시아역내거시경제감시기구 법률자문관 등 국제기구에 전직한 경우도 있다.
지난해에는 국제회의·행사를 39번 개최했으며 의장 또는 사회, 발표, 패널 및 토론자 참가 등 국제회의·행사에서 실질적 역할 수행을 위한 참가는 49차례에 이를 정도로 김 총재 부임 후 부쩍 늘었다.
통화정책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제고한 점도 높이 평가받는다. 특히 김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이 회의일로부터 약 6주 후 공개되던 것은 약 2주 후로 크게 단축시켰다. 경제전망 공표횟수도 연 3회에서 4회로 확대하는 한편 공표일자도 금통위 익일에서 당일로 앞당겼다. 금통위원 만장일치(기준금리) 여부를 비롯해 찬반위원 수 또한 금통위 당일 공개했다.
◆"통화정책운영·대내외 소통 부족" 지적도
한은의 국제적 위상 제고와 통화정책의 투명성 측면에서 좋은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한은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통화정책운영에 있어선 '실기(失期)'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2010~2011년 물가 상승 압력이 심해지는 시기, 적극적인 긴축정책을 통한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한은의 선택은 동결이었다. 2012년 하반기부터는 저물가가 지속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됐다. 적극적인 통화정책(금리인하)으로 경기부양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한은은 경기가 회복 국면에 있다며 금리동결로 대응했다.
특히 지난해 5월 금리인하 시기를 놓고는 국정감사와 신임 이주열 총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당시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경제 부처와 여당은 추가 경정예산을 추진하면서 정책공조 측면에서 한은에 금리인하를 직·간접적으로 요청했다. 한은으로선 통화정책의 독립성 훼손 논란 등을 감수하고 정부의 바람대로 금리를 인하할지 그렇지 않을지 결단을 내야했다. 결과적으론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정부의 비위를 맞춰준다'는 지적에 더해 '늑장 인하' 실기 논란까지 감수하게 됐다. 이런 논란에 대해 김 총재는 "먼 훗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대내외 상황을 고려해 결정한 사항이라고 맞섰다. 퇴임을 앞두고 26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선 실기 논란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김 총재는 재임 48개월간 금리조정을 딱 8번(인상5번/인하3번) 하고 임기를 끝마치게 돼 '동결중수'라는 별명도 붙었다.
연공서열을 파괴하는 파격적인 인사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이주열 차기 총재는 2012년 부총재 자리에서 물러나는 퇴임식에서 "60년에 걸쳐 형성된 고유의 가치와 규범이 하루아침에 부정되면서 혼돈을 느낀 사람이 많아졌다"고 직격탄을 날리는 등 한은 내부에서 인사를 놓고 상당한 진통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각종 발언도 논란이 되곤 했다. 김 총재는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거쳐 주(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로 활동하다가 한은 총재를 맡았다. 이러한 탓에 취임 초기부터 물가안정보다 성장을 지향하는 '비둘기파'로 인식돼 왔다. 특히 "한국은행도 정부다" 등 그의 발언이 한은의 독립성 논란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총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높은 나라는 독일 분데스방크"라며 "분데스방크의 총재 옌스 바이트만은 메르켈 총리의 경제수석이다. 큰 틀에서 '정부다'라고 얘기를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시장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금융 IT컨퍼런스, 국가통계발전포럼, 은행 리스크관리 담당 임원회의, 통화정책자문회의, 지급결제제도 컨퍼런스, 국제업무담당 임원회의, 외화자산 운용 자문회의, 경제전망 전문가집단 대상 간담회, 채권시장 전문가와의 간담회, 주식시장 전문가와의 간담회, 국고업무 협의회, 전자금융세미나, 금융안정포럼 등 시장참가자 등 외부 전문가를 초청한 실무자 중심의 간담회 개최하며 시장과 소통에 힘썼다고 주장했다.
[매경닷컴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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