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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럭키걸’ 고성희? 준비되지 않은 행운은 없다
입력 2014-03-11 08:02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도도하고 차갑기만 하던 김재희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슬픈 비밀의 빗장이 풀리고 딸로서 인정받는 순간, 잔뜩 날이 서있던 그녀의 마음은 -너무 착하다 싶을 정도로- 일순간 녹아내렸다.
MBC ‘미스코리아에서 김재희 역을 열연한 배우 고성희(24)와의 첫만남은 지난 3개월간의 험난했던 ‘미스코리아 여정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유쾌한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그녀는 드라마 말미 진·선·미와의 화합, 아버지와의 해후를 넘어 선의의 라이벌이기도 했던 그 자신과 화해한 극중 인물의 마음을 살고 있는 듯 하다.
요즘 인터뷰를 돌면서 재희와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마지막 촬영도 정신없이 끝냈고 되새김질 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서 스스로도 되새김질 하게 되는 것 같고. 작별인사 중이죠.”
데뷔 첫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오지영(이연희 분)의 라이벌이라니, 고성희에게 ‘미스코리아는 다소 각별하다. 극중 김재희는 극 전반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꽤나 중요한 인물이면서도 전형적인 라이벌이 아닌, 그만의 스토리가 있는 당당한 캐릭터였다.
‘파스타, ‘골든타임 등으로 각광받은 권석장 감독-서숙향 작가 사단이 의기투합한 ‘미스코리아였지만 경쟁작인 SBS ‘별에서 온 그대에 밀려 한자릿수 시청률로 고전했다. 하지만 고성희는 권석장 감독님의 김재희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라며 아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위한 고군분투는 비단 촬영에 국한되지 않았다. 드레스는 물론 수영복 심사에 개인기 무대까지 보여줘야 했으니 몸매 관리는 기본이요, 촬영 틈틈이 안무 연습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미스코리아는 워낙 독특한 아이템의 작품이라 많은 것들을 경험해볼 수 있었죠. 물구나무서기, 엉덩이레이스 등 참 많은 걸 했는데, 재미있었어요. 힘들기도 했지만 확실히 재미있는 게 컸고요. 50명 정도 함께 춤과 노래를 밤 새워가며 연습했는데,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힘이 많이 났어요. 재희를 연기하면서 보여줄 수 없는 부분을 그 안에서 해소한 것 같기도 하고요.”
인터뷰 내내 망가지고 싶다” 노래를 부른 고성희는 재희가 처음에 몸치인 척 춤 출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조금이라도 망가질 수 있어서, 그 장면에서 해소를 했다”며 웃어 보였다.
새삼스럽고 뒤늦은 얘기지만 고성희는 ‘미스코리아에는 오디션을 통해 합류하게 됐다. 몇 차례 미팅과 리딩까지 거쳐 최종 확정 됐지만 정작 왜 나를 뽑아주셨는지는 여전히 궁금하다”며 눈을 반짝였다.
나중에 듣기론, 재희 역할을 끝까지 고민하셨다고 들었어요. 많은 분들을 만나보셨지만 캐스팅을 못 하셨다고요. 감독님도 재희를 어떻게 그려야 할 지 고민이 많으셨다고 들었는데, ‘롤러코스터를 보신 조감독님의 추천에 믿고 맡겨보자 하셨다고 들었어요.”
감독의 믿음에 고성희는 참 예쁘게 화답했다. 도도하지만 차가워 보이지 않게 캐릭터의 균형을 잘 잡아냈으며, 대회를 통해 변화해가는 감정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며 ‘20대 여배우 기근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남다른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런 고성희를 향한 기획사들의 유혹은 초등학교 때부터 끊이지 않았다. 연예기획사들의 ‘길거리 캐스팅이 유행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걸출한 기획사에서도 될 성 부른 떡잎이던 그녀를 눈여겨봤다.
모델로 활동하며 카메라 앞에도 여러 차례 서봤지만 ‘스타로 대변되는 연예인이 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단다. 그 땐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일을 할 마음은 없었어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고요. 연기 공부를 해보고 싶어 학교도 합격했는데도, 막상 그 세계에 대한 선입견과 두려움 때문에 도전할 엄두를 못 냈었죠.”
그러다 언제부턴가, 전세가 역전(?)됐다. 연기가 재미있어졌어요. 무언가에 내 모든 것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생각이 전환하는 계기가 됐죠. 그런데 그 생각을 실천하기까진 3년이나 걸렸고요. 학교 다닐 때 나름 ‘럭키걸이라는 별명이 있었을 만큼, 좋은 일도 많았고 마음먹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거든요. 그래서 더 실패를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뭔가를 한다는 게, 더 자존심 상하기도 했죠.”
막상 부딪쳐보기 전까진, 실패가 두려웠다. 나도 모르게 안주하고 있던 시간들. 그랬던 고성희를 깨우친 건 특별한 계기는 아니었다. 그저 연기가 하고 싶었다”는, 배우로서의 단순 명쾌한 생각이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누구의 도움 없이 기획사에 프로필도 돌려봤고, 오디션도 직접 찾아다니며 봤다. 처음엔 두려웠던 ‘문을 두드리는 일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두려움 앞에 심호흡 한 번 하고 진중하게 두드려보니, 그토록 갈망했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게 참, 힘들게 한 걸음 내딛으면 그거의 열배, 백배는 돌아오는 것 같아요. 사람도 그렇고, 사람을 넘어서도요. 그 한 번이 참 어려웠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회가 왔죠. 그 기회를 잘 해내고 늘 앞으로 나가려 하다 보니, 이렇게까지 오게 되더군요.”
이제 갓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딛었을 뿐이지만, 지난 1년은 고성희의 연기 인생에서 꽤나 특별했다. 영화 ‘롤러코스터를 통해 하정우의 선택을 받은 것만 해도 그렇다.
10년지기 친구들이 저를 장난삼아 놀릴 때 쓰던 말이 ‘럭키걸이에요. 입시 때도, 비교적 짧게 준비했는데 성균관대학교에 합격한 걸 보면서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죠. 물론 그게(운) 전부였다고 생각하진 않고, 그렇게 믿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제가 복이 있다는 생각은 해요. 럭키의 럭(Luck)을 만들어준 데는, 희한하게도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참 많이 계셨죠. 그 분들과 일한 덕분에 이렇게 조금은 빨리 오게 된 것 같아요.”
겸손하게 말했지만 세상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고성희에게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 없었다면, 그녀의 2013, 2014년은 어쩌면 다른 모습이었을 지 모른다.
올해의 첫 단추를 정말 잘 꿴 기분이에요. ‘롤러코스터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2013년이 평생 잊지 못할 해였다면 그 해부터 2014년에 걸쳐진 ‘미스코리아는 저에게 전환점이 된 작품이죠. 연기가 업이 됐다는 느낌을 준 첫 작품이기도 하고요. 제가 말띠인데, 2014년에는 더 쉬지 않고 달리고 싶어요.(웃음)”
그녀가 꿈꾸는 배우상은 늘 궁금한 배우”다. 한 가지 이미지를 잘 지켜나가면서 하는 것도 좋겠지만 저는 다양한 작품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뻔한 배우가 되고 싶진 않죠. 늘 신선하고, 다음 작품이 궁금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경험과 노력이 중요하지만, 타고나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 바로 예술 아닌가. 하지만 고성희는 스스로 천의 얼굴”이라는 다부진 발언도 덧붙였다.
실제 제 모습과 ‘미스코리아 속 재희는 참 다른 인물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엽기적인 그녀처럼 완벽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금은 오히려 좀 감추는 배역을 맡아서, 뭔가 분출하고 드러내는 역할을 해보고 싶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지만 ‘내가 원하는 것과 ‘나를 원하는 것 사이 딜레마가 존재하는 만큼, 고성희는 모든 역할을 해내야 하는 게 신인의 의무이자 장점이라 생각한다”고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단 겸손한 태도를 잊지 않았다.
스타도 좋지만 진짜배기 ‘배우를 꿈꾸는 그녀, 고성희. 미스코리아 대회만큼이나 치열한 곳이 연예계지만 성공을 위해 그렇게 ‘독하게 살고 싶진 않다며 의지를 다졌다.
최근 나온 기사들의 헤드라인 중에서 ‘진보다 아름다운 선이라는 헤드라인이 참 좋았어요. 물론 연희언니와 저를 비교하는 게 아니고요. 동떨어진 얘기일 수도 있지만, 요즘은 너무 1인자들만 주목받는 세상이잖아요. 하지만 알고 보면 누구나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 밑에 있는 사람들도 노력을 통해 아름답게 끝을 맺을 수 있는 것도 같아요. 저 역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psyon@mk.co.kr / 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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