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모님과 아내의 차량 사고로 마음이 철렁 내려 앉은 직장인 김성우(가명·39) 씨. 아내는 경미한 부상에 그쳤지만 부모님은 갈비뼈에 금이 가는 등 장기간의 치료가 불가피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고 과실을 따지는 보험사 판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당했다. 김씨의 아내 차량을 들이 받은 차량의 과실이 누가봐도 100%임에도 불구하고 차량이 정차된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라 아니라는 이유에서 20%의 과실을 억지로 떠안았다. 바퀴가 굴러가는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는 모두 쌍방과실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보험사의 설명이었다.
#정지 신호를 보고 차량의 속도를 점점 줄여나가던 나혜영(가명·28) 씨. 뒤에서 오던 차량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나씨의 차량을 들이 받았다. 뒤따르던 차량 역시 정지 신호를 보고 속도를 줄이고 있던 터라 충격이 크진 않았지만 범퍼가 깨졌다. 차량이 뒤에서 들이받았기에 당연히 과실은 100% 상대방 차량에 있다고 생각한 나씨. 보험사 사고처리 과정에서 나씨는 10%의 과실을 떠안았다. 나씨의 차량이 완전히 정차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이유에서다. 나씨는 "뒤에도 눈을 달고 운전을 해야 하는가"라며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와 나씨의 사례처럼 차량 사고를 놓고 납득할 수 없는 보험사의 과실비율 처리 때문에 불만을 표하는 운전자들이 적지 않다. 잘못은 분명히 상대방이 했는데 보험 처리 과정에서 과실을 일정부분 떠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10일 손해보험협회가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하고 있는 자동차사고 과실비율 관련 '구상금분쟁심의 결정사례' 1512건을 분석해 보면 과실비율이 어느 한쪽에 100% 있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찾아보기 어렵다.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차량 사고 시 어느 한쪽이 잘못을 했다고 분명히 가리는 것이 어렵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차량 사고에 있어 '바퀴만 굴러가면 쌍방과실'이란 운전자들의 볼멘소리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닌듯하다.
이같이 차량 사고에 대한 과실비율이 대부분 어느 한쪽이 아닌 쌍방 간의 나눠지는 것은 경우에 따라 보험사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손보사 한 관계자는 "쌍방과실의 경우 보험금 부담이 양쪽 모두 발생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보험금 지급 의무가 있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이득이 될 것이 없다"면서도 "현행 자동차 보험료 할인·할증 산정 기준에서는 사고에 따른 과실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자동차보험 갱신 시 보험료 할증은 제외하더라도 무사고가 아닌 탓에 할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서 이익이 될 수 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는 어떻게 과실비율을 산정하고 있을까.
미국은 과실비율을 따질 때 이른바 '51% 룰'을 적용하고 있다. 과실비율이 높은 운전자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하는 체계다.
장택영 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사는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사고를 유발한 운전자에게 사고 책임을 100% 지게 하는 방식으로 과실비율을 따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 박사는 우리나라의 과실비율 산정방식은 미국과 달리 사고를 유발한 운전자의 과실을 덜어주는 행태로 적용되고 있어 일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박사는 BMW 등 고가의 외산차량과 마티즈 같은 상대적으로 저가의 차량 간의 사고를 예로 들었다. 과실비율이 BMW 운전자에 90%, 마티즈 운전자에 10%로 산정됐다고 하자. BMW 운전자의 과실비율이 크지만 차량 가격 자체에 대한 차이 때문에 물어줘야 할 수리비 등 일련의 보험금은 마티즈 운전자가 더 많아진다. 장 박사는 "사고를 유발한 운전자의 과실을 상대방 운전자가 지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우리나라의 과실비율 산정 기준은 1976년 일본의 것을 모태로 들여와 현재까지 적용·활용되고 있다.
[매경닷컴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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