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M+조선의 엔터테이너①]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자, 이업복
입력 2014-02-26 13:01  | 수정 2014-02-27 11:10
사진=ㅡMBC드라마넷 "별순검"-전기수 편
[MBN스타]
케이팝(K-POP)으로 대표되는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문화적 역량이 그만큼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어땠을까?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춤과 노래로 대표되는 유흥이 억압당했다. 시장 바닥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전기수 부터 시와 붓글씨로 양반과 어깨를 나란히 한 기생까지 조선시대의 예술가들은 모두 천하고 손가락질 받는 신분이었다. 하지만, 재미와 흥미를 찾는 인간의 마음은 이런저런 억압을 뚫고 가지를 뻗었다. 조선의 엔터테이너들은 대부분 불행하고 손가락질 받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힘들고 고된 삶을 살아가던 일반 민중들은 그나마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자.


조선시대에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여러 가지 직업 중 가장 흥미로운 직업은 아마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일 것이다. 문맹률이 거의 제로인 오늘날에는 타인의 입에 의지해서 책을 읽을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한문이 주로 쓰였던 조선시대에는 아마 백 명 중에 한두 명 정도만 글씨를 읽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접어들면서 한글로 된 소설책들이 등장하면서 아녀자들과 일반 백성도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늘어났다. 이야기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과 갈증은 나날이 높아져 갔지만, 여전히 책은 고가의 물건이었고, 귀한 존재였다.

그 틈을 메워준 것은 다름 아닌 책의 내용을 들려주는 전기수였다. 시간과 돈이라는 장벽을 입을 통해서 뛰어넘게 해준 것이다. 그렇다고 전기수가 단순히 글을 못 읽는 사람에게 책을 낭독해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같은 내용을 강의하더라도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해주는 강사가 있는 것처럼 이들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포장해주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비슷한 장르로 창이 있긴 했지만, 일반 백성이나 부녀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종이에 활자로 인쇄된 책과 전기수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후자는 전기수의 몸짓이나 표정, 혹은 몸짓 덕분에 이야기가 지루해지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전기수의 낭랑한 목소리는 눕거나 혹은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들을 수 있다. 따라서 실력이 좋은 전기수들은 ‘슈퍼스타 대접을 받았다.

이업복은 전기수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조선시대 생활사를 보여주는 책에서도 이미 소개가 되었고, ‘별순검이라는 인기 드라마의 일화에도 등장했다.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서얼인 그의 본래 직업은 겸인, 즉 청지기였다. 서얼 중에서도 풍족한 삶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지 아니면 집이 가난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지기는 노비는 아니었지만 결국 주인의 수발을 드는 미천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낭랑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풍부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언제부터 본격적인 전기수로 나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양반집 부녀자들을 비롯한 한양의 부호들이 다투어 그를 초청해서 얘기를 들었다는 것을 보면 전기수로 나선 직후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감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토해내면 듣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거나 미친 듯이 웃었다고 하니, 아마 그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지 않았나 싶다.

사실 전기수의 등장은 소설의 탄압과도 연관이 있다. 정조는 소설을 인간의 본성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탄압했고, 문체를 규정지으려고 했다. 정조는 전기수의 얘기를 듣던 구경꾼이 주인공이 좌절하는 부분을 듣자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담배 써는 칼로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을 직접 언급하면서 소설의 위험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이업복이 활약하던 시대 역시 이렇게 소설이 불온한 취급을 받던 때였다. 이업복을 소개한 ‘청구야담에는 그가 옆집에 사는 아전의 딸을 겁탈하는 장면이 나온다. 전기수와 양반집 부녀자 간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소문이 떠돌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전기수를 찾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울고 웃었다. 한 말로 접어들면서도 전기수들은 여전히 맹활약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극장의 변사로 탈바꿈했다가 우리 곁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정명섭(소설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