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직장人 직장忍] "그 날 밤을 전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입력 2014-02-26 11:14  | 수정 2014-03-18 19:20

일영일상(一詠一觴), 왕희지는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시를 읊는 풍류를 즐겼다는데 우리 직장인들 '회식자리'에서 풍류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 만취 상태의 주사와 다음 날 민망함만 가득 남는 술자리 잔혹사를 들어봤다.
◆ 부축하는 선배 발등을 하이힐로 '쿡'…다음날 '싹싹'
무역회사에 다니는 2년차 직장인 A씨는 입사 후 임원들과 첫 대면식을 하던 날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입사 전 '술 못 먹는 여직원은 소극적으로 보이니 조심하라'는 조언을 워낙 많이 들어 평소같이 않게 과하게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체질상 술을 잘 못하지만 하늘같은 임원들이 주는 술잔을 한잔 두잔 받아 먹다보니 어느새 취기가 머리끝까지 올랐다는 A씨. 그는 그날 결국 직장 선배의 손에 이끌려 술집 밖으로 끌려 나가게 됐다.
"차라리 그 때 조용히 잡혀 나올 걸 그랬어요. 왜 그 때 '어떻게 해서든 내 발로 걸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창피한 마음에 계단을 내려오며 발에 힘을 주며 내딛었는데 그게 하필 부축하던 선배의 발등일 줄이야. 하이힐 신은 발로 선배의 발등을 찍은 순간 당황한 선배는 A씨와 함께 계단 세 칸 밑으로 떨어지며 발목을 접질렸다. 그 선배는 한동안 깁스 신세를 면치 못했다.

A씨는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모든 게 기억나면서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퇴사해야 할 것 같아서 엉엉 울었다"며 "선배에게 싹싹 빌고 같이 있었던 임원들의 방마다 찾아가 사과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 술자리에선 불만 털어놨다 주먹다짐까지
지난해 12월 종로의 한 호프집. 송년회 분위기가 무르익자 부장이 일어나서 "1년간 수고했다"며 "서운한 점이 있으면 한 번 털어놔봐라"고 쿨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다들 "불만 같은 것 없다"며 어색하게 웃었지만 술잔이 몇 차례 더 돌자 B대리가 "이건 좀 말씀드려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입사원 뒤치다꺼리에 차장 수발까지. 업무가 너무 과중돼 힘들다는 주장이었다. 결혼을 생각했던 여자친구가 회사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며 이별을 통보했다고 눈물을 훔칠 땐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문제는 B대리의 하소연을 듣던 C과장이 "네가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이 내 탓이냐"며 "회사에서 그 정도 일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소리를 지르면서 터졌다. 진정되는 것 같던 B대리가 말릴 새도 C과장에게 돌진하면서 즐거웠던 송년회에 피바람이 불었다.
C과장은 "주먹다짐 이후부터는 B대리한테 주던 업무를 신입사원에게 직접 지시하고 있다"며 "업무 부담을 줄었을지 몰라도 인사 평가에서 좋은 점수 받기는 틀렸다"고 차갑게 말했다.
◆ 실수 했을 땐 정중한 사과와 재발(再發) 방지 선언해야
D부장은 "아무리 야자타임이지만 선은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회식자리에서 재미로 시작한 야자타임에서 딸 같은 인턴 사원 E씨가 "평소에 넌 실수 안 하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자 불쾌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황당한 마음에 빠져나와 담배부터 입에 물었다는 D부장. 그러나 곧 따라 나와 사죄하는 E씨를 보자 마음이 누그러졌다.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사회생활이 부족해 실수인지도 몰랐다'는 등, '선배들이 말해서 실수한 것을 깨달았다'는 등 차근차근 말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렇게 미웠는데 같은 실수 안하겠다면서 허리를 굽히는 거 보니까… 나도 옛날엔 실수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깨 한 번 툭 치고 자리로 들어왔죠 뭐."
대기업의 한 인사담당자는 "술자리 실수로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이기 때문에 잘 푸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도 "웬만하면 상사가 있는 술자리에서는 주량에 맞게 마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구직 포탈 인크루트가 인사담당자 2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술을 잘 못할 경우에는 ▲첫 잔은 비우고 그 다음부터는 재주껏 피하기 ▲술 대신 몸으로 때우겠다며 장기자랑으로 분위기 띄우기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사실대로 말하고 정중히 거절하기 등이 좋은 대처법으로 뽑혔다.
[매경닷컴 이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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