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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이규혁 은퇴와 모태범 노메달의 숨은 메시지
입력 2014-02-14 06:01  | 수정 2014-02-14 07:05
준비는 선수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규혁의 은퇴와 모태범의 노메달 교훈을 곱씹어야한다. 별은 매번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사진(러시아 소치)= 옥영화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20년이 넘도록 한국 스피드스케이팅계의 기둥으로 활약했던 이규혁이 긴 여정을 마쳤다. 1994년 16살의 나이로 출전한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36살이 된 2014년 소치올림픽까지, 20년간 6번의 올림픽 무대를 밟았던 살아 있는 전설의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질주가 마침표를 찍었다. 쉼표일 수는 있으나 적어도 올림픽과의 인연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언제나 함께할 것 같던 이규혁의 은퇴만큼 아쉬운 것은 현재의 간판스타 모태범의 예상치 못한 ‘노메달이다. 지난 밴쿠버 올림픽에서 500m 금메달과 1000 은메달을 휩쓸면서 혜성처럼 등장했던 모태범은 이번 소치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이 기대한 중요한 메달 후보 중 하나였다. 4년 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규혁과 이강석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을 때 ‘깜짝 낭보를 전해준 모태범이었기에 물이 오른 소치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졌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 아쉬웠다.
모태범은 한국시간으로 13일 새벽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 스케이팅센터에서 끝난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1분09초37을 기록하면서 12위에 그쳤다. 500m 4위의 아쉬움을 달래면서 자존심까지 회복시켜줄 메달 획득을 기대했으나 외려 순위는 더 떨어졌다. 결국 모태범의 소치올림픽은 아쉬움 속에서 막을 내렸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가 범접할 수 없는 기량으로 500m 올림픽 2연패의 대업을 달성한 것은 분명 반갑고 고무적이며 기쁘게 즐겨야할 일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한국 빙상계는 이번 소치올림픽을 통해 큰 교훈과 숙제를 동시에 얻었다. 철저한 준비 없이는, 합당한 투자 없이는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모태범이 1000m를 마치고 전한 의미심장한 소감을 진지한 충고로 받아들여야하는 한국 빙상계다. 모태범은 레이스를 끝낸 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네덜란드 선수들이 부럽다”는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그네들의 풍부한 인프라부터 넓은 저변, 국민적인 관심과 사랑 그리고 풍족한 지원까지 선수 입장에서 모든 것이 부러웠다. 그런 배경이 곧 성적을 만드는 바탕이기에 또 부러웠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은 그야말로 오렌지 광풍이다. 특히 남자 부문은 싹쓸이에 가깝다. 500m와 1000m 그리고 5000m에 걸린 9개 매달 중 8개가 네덜란드 선수들 몫이었다. 500과 5000은 금은동메달을 싹쓸이 했고 1000m에서만 은메달을 놓쳤을 뿐이다. 단거리 장거리 가릴 것 없이 네덜란드 천하다. 여자 부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광풍 앞에서 이승훈을 시작으로 이규혁과 모태범까지 차례로 쓰러진 셈이다. 모태범은 네덜란드 선수들은 다 잘하는 거 같다. 정말 부럽다”는 말로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몇몇 이들이 이를 악물고 땀 흘리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까닭에 절로 ‘부럽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한국 빙상계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대목이다.
이규혁이라는 영원한 피터팬이 6번이나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것 역시 되짚어볼 일이다.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한국의 현 주소를 말해주는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이규혁을 뛰어넘는 후배들이 등장하지 않았기에 이규혁의 고군분투가 길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 시간이 무려 20년이다. 이규혁의 전설적 행보 뒤에는 아쉬운 대한민국 빙상계의 현실이 숨어 있다.
이제 정신을 바짝 차려야할 한국 빙상계이다. 별은 매번 뚝하고 떨어지지 않는다. 모태범이라는 혜성이 또 하늘에서 나타나 주겠지, 이상화라는 꽃이 땅에서 활짝 피어나주겠지 라는 상상은 일반 국민들의 머릿속에서나 있어야할 일이다. 전문가들은 그래서는 곤란하다.
다음 올림픽은 대한민국 평창에서 열린다. 안방에서 들러리에 그치지 않으려면, 또 다른 나라를 부러워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 준비는 모태범을 비롯한 선수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규혁의 은퇴와 모태범의 노메달 교훈을 곱씹어야한다.
[lastuncle@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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