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에 실패해 수 천 만원의 빚을 떠안게 된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실패를 밑천 삼아 재기에 도전했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연 7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큰 CEO로 성장했습니다.(주)청담이상 이정욱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의 성공 이면에는 어떤 눈물겨운 스토리가 있는 지 MBN ‘정완진의 The CEO에서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아 래-
Q.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면?
어릴 때 아이스하키를 했습니다. 운동을 하다 보니 집에 있기 보다는 동료들과 함께 훈련을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자연스레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고 특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 의견을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어떤 모임을 가든지 제가 주도하고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Q.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대학교 1학년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운동을 그만두고 학교도 자퇴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벌어야 했는데 마침 작은 형이 운영하던 맥주 전문점에 일손이 모자라 지배인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일이었지만 제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해 손님들을 접대하고 서빙하고 청소까지 했는데도 힘들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거든요. 오히려 일하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하다 보니 손님도 많아지고 가게 매출도 많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내 가게를 직접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종자돈을 모아 스물다섯 살, 맥주 전문점을 창업했습니다.
Q. 처음 하는 창업, 장사 수완은 어땠습니까?
처음인데도 불구하고 장사가 제법 잘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어떤 비법이나 전략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열심히 해서 잘 됐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만든 음식을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게 좋아 가격대비 푸짐한 양의 안주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고 매출도 날이 갈수록 더 큰 상승세를 탔습니다. 장사가 잘 되니 주위에서 동업 하자는 제안이 끊이질 않았고 ‘내가 하면 뭔들 안 되겠어 라는 마음으로 가게를 늘려갔습니다. 결국 3개나 되는 맥주 전문점을 운영하게 되었고 세군데 모두 장사가 잘되어 매달 수 천 만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Q. 첫 창업부터 승승장구, 위기는 없으셨나요?
한창 호프집을 운영하던 그때 서울 전역에 조개구이 식당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대학로에는 그런 식당이 없었기 때문에 조개구이를 팔면 대박이 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개구이 식당을 오픈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내지 않고 추가로 스티커 사진 전문점 까지 개업했습니다. 당시 스티커 사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두 곳 모두 장사가 잘 됐지만 손익 계산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장사를 한 탓에 조개구이 식당에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스티커 사진 전문점들이 늘어나면서 손님이 분산되어 제 가게를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습니다. 맥주 전문점에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두 가게의 적자를 메꾸어 나갔지만 한계에 부딪쳤고 결국 운영하고 있던 가게들 모두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대학로의 잘나가는 사장님이 하루아침에 빈털터리로 전락한 것이죠.
Q. 어떻게 다시 재기에 성공했습니까?
운영하던 가게들 모두 문을 닫고 나니 그동안 장사만 했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제 자신이 원망스러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일 술로 하루를 보냈었죠. 실의에 빠진 제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는 검정 비닐 봉투 하나를 저에게 건네 주셨고 그 안에는 제가 피던 양담배 한 보루와 만 원짜리 5장이 들어있었습니다. 돈 없는 자식, 기죽지 말라고 주신 것 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다시 재기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무작정 인력 사무소를 찾아가 거기서 시키는 일이라면 공사장 이든 어디든 간에 가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술만 마시고 지낼 때에는 아는 체도 안했던 주위 사람들이 제가 다시 일하기 시작하니 재기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셨습니다. 특히 다시 장사를 시작해보라고 돈까지 빌려주셨습니다. 그렇게 지인의 도움을 받아 소주 전문점을 창업 하게 되었습니다. 한번 실패했던 경험을 발판 삼아 장사에만 전념하다 보니 맥주 전문점을 운영했을 때처럼 큰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Q.‘이자까야를 오픈하게 된 계기는?
장사를 잠시 쉬고 있던 2006년, 그때 당시 일본식 선술집이라 할 수 있는 ‘이자까야가 국내에 들어와 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저렇게 인기가 많을까 궁금한 마음에 서울에 유명하다는 이자까야를 전부 찾아가 보았습니다. 수많은 이자까야 중에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 있는 가게들을 보니 저마다 특별한 차별화 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다른 곳에서 접할 수 없는 색다른 음식을 판매하거나 음식 메뉴 가격이 저렴했습니다. 그런 가게들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 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전에 여러 호프집을 하며 큰돈을 벌어 ‘내가 하면 안 될 게 뭐 있어 라는 자신감이 제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자까야를 창업하기로 결심했고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프랜차이즈 가맹을 받아 가게를 오픈했습니다.
Q. 이자까야 창업을 위해 ‘나 이런 것까지 해봤다 하는 게 있다면?
3년 간 이자까야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본사의 허락 없이는 제가 메뉴를 개발하고 내부를 인테리어 하는 등의 새로운 변화를 주기가 어려웠습니다. 때문에 나만의 매장을 오픈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운영해 나가고 싶었습니다. 제가 다른 이자까야들과 달리 차별화로 내세운 것은 이자까야에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한 달에 몇 번씩이나 일본에 건너가 가게 안에 쓰일 작은 소품 하나하나 까지도 제가 직접 골라 인테리어를 완성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겨우 제가 추구한 ‘한국형 이자까야 청담이상 1호점을 서래마을에 오픈할 수 있었습니다.
Q. ‘한국형 이자까야, 손님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잡지나 서적들을 보며 창업 성공 사례를 분석해보니 처음에는 모두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손님들을 불러 모으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수입 맥주를 들여오는 가격보다 더 저렴하게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응은 즉각 나타났습니다. 술을 저렴하게 마실 수 있으니 많은 손님들이 몰렸고 한국 전통의 분위기가 풍기는 색다른 인테리어에 반한 사람들은 계속 저의 가게를 찾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매출도 상승하게 되고 가맹문의도 잇따라 하나 둘씩 가맹점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발전을 거듭해 청담이상을 세운지 4년 만에 연 70억 원이라는 매출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앞으로의 꿈은 무엇입니까?
조만간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해외에도 가맹사업을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담이상의 대표인 저 자신부터가 사소한 일부터 큰일까지 모든 일에 앞장서며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와 직원들 모두 의기투합해 (주)청담이상을 이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 그것이 저의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