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파키스탄을 혼란속으로 끌고 들어갔던 파키스탄 탈레반이 정부 인사들과 마침내 '평화협상'을 위해 마주앉았다.
양측의 대표단은 6일 파키스탄 이슬라바마드에서 첫 회담을 열었다. 이로서 일각에선 10년간 이어지던 내전이 종식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협상에 나선 파키스탄 탈레반 조직은 '타흐리크 이 탈레반 파키스탄(Therik-i-Taliban Pakistan.TTP)'으로 2007년 말 극단주의를 표방하는 30여개의 파키스탄의 이슬람 무장정파들이 연대한 조직이다. 이들은 그동안 친미성향과 세속주의를 내세운 파키스탄 정부를 대상으로 각종 테러를 일으켜 지난 2001년 이후 최소 4만명의 파키스탄인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와 유혈충돌을 지속하던 TTP가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된 것은 TTP를 상대로 무력대응보단 대화를 중시하는 새로운 파키스탄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총선으로 집권한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TTP와 대화에 나서 수년 간 지속된 폭력사태를 종식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샤리프 총리는 2001~2008년 대통령을 역임하며 미국의 대테러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페르베즈 무샤라프와 달리 TTP에 손을 내미는 과감한 정책을 시도했다.
샤리프 총리가 이끄는 새로운 정부는 협상을 위해 대테러전을 위해 무인기(드론) 공격을 지속하던 미국을 비난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드론의 공습으로 TTP 지도자 하키물라 메수드가 사망하자 샤리프 정부의 일부 고위 관계자들은 미국 때문에 평화협상이 좌초됐다면서 강한어조로 비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각에서 협상이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지만 TTP는 정부측 대표들과 마주보고 앉기로 선택했다. 미국도 이에 샤라프 총리의 임기 내 파키스탄에서의 드론 공습을 완전 중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평화협상 기간엔 드론 공습을 대폭 줄이기도 했다.
협상에 앞서 3일 TTP는 이슬람성직자와 정치 지도자 등 5명으로 구성된 평화협상위원회를 결성해 정부측과의 회담을 준비했다. 탈레반측 협상단장은 '파키스탄 탈레반의 아버지'로 불리는 종교지도자 마울라나 사미울 하크, 정부측 협상단장은 저명한 언론인 출신인 샤리프 총리의 특별보좌관 이르판 시디키가 맡기로 했다.
6일 첫 회담에서 정부측은 5대 전제조건으로 '협상기간엔 폭력행위 중지', '모든 대화는 헌법 틀 안에서 진행', '협상은 분쟁지역만을 대상으로할 것', '탈레반 자체조직인 9인위원회 역할의 명확한 공개', '협상의 단기간 내 종료'를 제시했다.
10일 파키스탄 언론 데일리 타임스(DT)에 의하면 탈레반은 2차 협상에서 15가지 요구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내건 요구조건에는 '재판에 샤리아(이슬람 율법)도 적용', '이슬람 교육과정도 정규교과에 포함', '드론 공격의 중단', '수감된 탈레반 대원들의 석방', '탈레반 지역 부족이 다스리는 곳에서의 정부군 철군' 등이 있다. TTP 협상 대표 중 한명인 마눌라나 압둘 아지즈는 7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샤리아 적용 문제가 가장 중요하며 아프간의 미군 주둔은 매우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6일부터 양측이 대화를 시작했고 요구조건도 주고받았지만 당장 가시적 성과가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협상이 별 성과없이 이어지자 압둘 아지즈는 7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400~500명의 여성 자살폭탄대원들이 와지리스탄주와 다른 지역에 대기하고 있다"며 "정부는 이같은 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요구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언급은 파키스탄 정부를 압박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로 추정된다.
일각에서 TTP가 제시한(협박한) 수치는 과장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협상이 실패하고 양측이 다시금 충돌을 빚기 시작할 경우 파키스탄과 미국 모두에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혈충돌이 시작되면 평화협상 기반으로 2250억달러(약 241조원)규모에 달하는 파키스탄 경제를 재건하려는 샤리프 총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현재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소탕을 위해 아프간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아프간 주둔 미군은 TTP 등을 상대로 파키스탄에서 대테러전도 수행하는데 TTP가 활동을 재개할 경우 미군으로선 당분간 아프간에 계속 발이 묶이는 골치아픈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제부 =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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