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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이승훈의 ‘페이스 메이커’는 이승훈이다
입력 2014-02-09 06:21 
이승훈이 지난 8일(한국시간) 2014 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페이스가 흔들리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사진(소치)=옥영화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죄송합니다.”
이 한 마디로 설명이 됐다. ‘밴쿠버의 영웅 이승훈(26‧대한항공)은 부담이 엄청났다. 스스로 자신의 페이스를 잃었다. 초반 러시도 막판 스퍼트도 잃었다. 이승훈다운 독한 레이스를 찾기 힘들었다. 4년 전 ‘감동의 질주를 선보였던 그 이승훈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승훈은 지난 8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 스케이팅센터에서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 남자 5000m에 출전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첫 주자로 메달 사냥에 나섰다.
그러나 결과는 10위권 밖인 전체 12위. 빙질을 감안했을 때 올 시즌 자신의 최고 기록인 6분07초04보다 낮은 6분10초대 기록이 예상되긴 했지만, 이보다 훨씬 뒤진 6분25초61을 기록했다. 2010 밴쿠버올림픽 이 종목 은메달리스트였던 이승훈의 성적으로는 예상 밖 부진이었다.
고개 숙인 이승훈은 완벽한 레이스를 펼치며 올림픽 신기록을 갈아치운 스벤 크라머(6분10초76)를 비롯한 네덜란드 대표팀의 금‧은‧동 싹쓸이를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이승훈은 밴쿠버 대회 직후인 2011년부터 슬럼프에 빠졌다. 2년 동안 나선 국제대회에서 모두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역도와 쇼트트랙 훈련 등 강점을 극대화시키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특훈을 자처했다. 고통을 참고 몇 번이고 이겨냈다. 끝내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일어섰다. 기록도 수직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엄청난 훈련량으로 극복한 결과였다. 그러나 부담까지 완벽하게 지워내진 못했다.
4년 전은 달랐다. 무명의 이승훈은 아무 부담없이 레이스를 펼쳤다. 후회없는 역주였다. 이승훈은 밴쿠버 대회 5000m 은메달에 이어 1만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운도 따랐다. 1만m 기록에서 앞섰던 크라머가 코스 실수로 실격 처리되면서 얻은 행운의 금메달이었다. 그러나 이승훈을 금메달을 폄하할 수 없었다. 아시아 최초의 감동적인 기적 드라마였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이승훈을 향한 기대는 컸다. 또 스타트를 끊어야 하는 부담까지 안았다. 특히 크라머의 막강한 존재감은 이승훈을 경직시켰다. 크라머는 이승훈보다 앞서 경기를 치르며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이승훈은 크라머와 객관적 기록에서 뒤졌다. 세계기록 보유자인 크라머는 자신이 세운 세계기록을 대회마다 깨는 장거리의 절대 지존이었다.
또 얀 블록후이센(은메달)과 요리트 베르그스마(동메달) 등 네덜란드 선수들도 뛰어난 레이스를 펼쳤다. 게다가 이승훈과 함께 마지막 조에서 레이스를 벌인 한 수 아래로 평가됐던 패트릭 베커트(독일)도 이승훈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오히려 앞섰다.
이승훈은 경기 전부터 흔들렸고, 경기를 치르면서 리듬이 깨졌다. 자신의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면서 막판 스퍼트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무너졌다. 사실상 심리적 붕괴였다.
이승훈은 이제 5000m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주종목인 1만m와 강세를 보였던 팀추월이 남아 있다. 부담이 아닌 4년 전 초심으로 돌아가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시아인으로서 장거리에서 절대적 신체적 핸디캡을 안고 있는 이승훈의 잠재적 힘은 그때 나온다.
고개 숙인 이승훈을 향한 전 국민들의 성원도 뜨겁다. 메달의 색깔보다 이승훈 스스로 후회없는 레이스를 펼치길 응원하고 있다. 이승훈은 이미 ‘올림픽 영웅이다. 최고의 페이스 메이커는 이승훈 자신이다.
[min@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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