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멘트 】
6·25 전쟁 당시 천막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학교를 세웠던 미군들이 60여 년 만에 교정을 다시 찾았습니다.
학교 역사관을 둘러보며 이곳에 뿌렸던 씨앗이 맺은 결실을 벅찬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홍승욱 기자입니다.
【 기자 】
6·25 전쟁의 포성이 끊이지 않던 지난 1952년, 한국땅을 밟은 미 40사단 장병들.
변변한 건물도 없이 천막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려고 한 사람에 2달러씩 모두 3만 달러를 모았습니다.
전사한 부대원 이름을 딴 '가이사 중학원'은 그 뒤 가평고등학교가 돼 지금까지 만 3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뜻을 모았던 청년들은 백발이 된 모습으로 62년 만에 다시 학교를 찾았습니다.
학교 측이 40사단과의 인연을 기리는 '가이사 역사관'을 지어 개관식에 초청한 겁니다.
참전용사들은 전시된 유품과 당시 사진들을 보며 젊음을 바쳤던 그때의 추억에 잠겼습니다.
▶ 인터뷰 : 데이비드 프레씨 / 미국 40사단 참전용사
"당시 한국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하고 싶은 건, 제가 한국인들에게 큰 존경심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40사단은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학교의 중요한 행사 때마다 한가족처럼 꾸준히 참여해 왔습니다.
매년 그래 왔듯 이번에도 졸업식에서 장학금을 전달하며 학교와 반세기가 넘는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노병들은 벅찬 마음으로 이 아이들이 훗날 또 다른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리기를 소망했습니다.
MBN뉴스 홍승욱입니다.
영상취재 : 이원철 기자
영상편집 : 송현주
6·25 전쟁 당시 천막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학교를 세웠던 미군들이 60여 년 만에 교정을 다시 찾았습니다.
학교 역사관을 둘러보며 이곳에 뿌렸던 씨앗이 맺은 결실을 벅찬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홍승욱 기자입니다.
【 기자 】
6·25 전쟁의 포성이 끊이지 않던 지난 1952년, 한국땅을 밟은 미 40사단 장병들.
변변한 건물도 없이 천막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려고 한 사람에 2달러씩 모두 3만 달러를 모았습니다.
전사한 부대원 이름을 딴 '가이사 중학원'은 그 뒤 가평고등학교가 돼 지금까지 만 3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뜻을 모았던 청년들은 백발이 된 모습으로 62년 만에 다시 학교를 찾았습니다.
학교 측이 40사단과의 인연을 기리는 '가이사 역사관'을 지어 개관식에 초청한 겁니다.
참전용사들은 전시된 유품과 당시 사진들을 보며 젊음을 바쳤던 그때의 추억에 잠겼습니다.
▶ 인터뷰 : 데이비드 프레씨 / 미국 40사단 참전용사
"당시 한국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하고 싶은 건, 제가 한국인들에게 큰 존경심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40사단은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학교의 중요한 행사 때마다 한가족처럼 꾸준히 참여해 왔습니다.
매년 그래 왔듯 이번에도 졸업식에서 장학금을 전달하며 학교와 반세기가 넘는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노병들은 벅찬 마음으로 이 아이들이 훗날 또 다른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리기를 소망했습니다.
MBN뉴스 홍승욱입니다.
영상취재 : 이원철 기자
영상편집 : 송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