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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야구생각] 아직도 풀리지 않는 WBC 일본전
입력 2014-02-05 08:22  | 수정 2014-02-06 09:20
김인식 당시 한국 대표팀 감독. 사진=MK스포츠 DB
우연히 2009년 한국과 일본의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 하이라이트를 봤다.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슴 뭉클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선 오늘도 그날처럼 ‘울분이 터졌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9회말 2사후 이범호의 천금 같은 좌전 적시타로 3-3 동점을 만든 뒤 맞은 10회초 한국 수비. 한국은 1사 1,3루에서 가와사키를 유격수 플라이로 잡아내 실점위기에서 한 숨을 돌렸다. 한국 투수는 임창용이었다. 다음 타자는 이치로. 이치로는 앞선 타석까지 5타수 3안타를 기록 중이었다. 굳이 이 경기의 타격감을 따지지 않더라도 이치로가 누구인가. 100년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를 단번에 뒤바꿔 놓은 ‘타격 머신 아닌가.

1루 주자가 2루를 훔쳐 2사 2,3루. 이치로를 거르고 다음 타자인 나카지마를 상대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상황이 펼쳐졌다. 임창용은 초구부터 정면승부를 걸었다.
볼카운트 1볼 2스트라이크. 임창용은 계속해서 150km를 웃도는 빠른 직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꽂았다. 이치로는 5구와 6구를 연속 쳤지만 임창용의 구위에 밀려 파울볼이 됐다.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쩌려고 이치로와 정면승부를 걸지? 저러다 맞고 말텐데.” 경기가 열리던 다저스타디움은 물론, 잠실야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 그리고 안방에서 TV를 시청하던 온 국민은 애간장을 태웠다.
단 한 명, 김인식 감독은 어찌된 일인지 덕아웃 앞에서 물끄러미 경기장을 지켜볼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임창용은 볼카운트 2볼 2스트라이크에서 8구째 한 가운데 높은 변화구를 던지다 이치로에게 2타점 중전 적시타를 맞았다. 한국의 WBC 우승 꿈은 이렇게 날아갔다.

더 웃지 못 할 코미디는 경기 뒤 인터뷰 시간에 벌어졌다. 김인식 감독은 이치로를 거르라는 사인을 냈는데 임창용이 승부를 했다”고 책임을 임창용에게 돌렸다. 졸지에 임창용은 역적이 됐다.
야구팬들의 집중포화를 맞은 임창용은 선수단과 함께 귀국길에 오르지 못하고 소속팀인 야쿠르트에 곧바로 복귀했다. 얼마 뒤 임창용은 거르라는 사인을 받은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포수 강민호는 김인식 감독에게 사인을 받았을까. 강민호는 이 대회 뒤 한 동안 이에 대한 물음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의구심이 커졌지만 한국야구의 ‘위대한 도전이란 대명제에 가려 이날 결정적 '판단미스' 사건은 묻히고 말았다.
며칠 전 미국 애리조나에서 전지훈련 중인 강민호에게 당시 상황을 다시 물었다. 강민호는 김인식 감독한테 사인을 받았는데 잘 이해하지 못해 임창용에게 전달하지 못했다”고 했다.
여기서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 번째로 김인식 감독의 행동이다. ‘이치로를 거르라는 사인을 냈다면 임창용이 처음부터 정면승부를 거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특히 2스트라이크 이후 이치로가 연속 파울볼을 쳐내는데도 임창용은 정면승부를 고집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김인식 감독이 사인을 낸 것이 사실인 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강민호의 대응도 석연치 않다. 어떤 식이든 김인식 감독한테 사인을 받았다면 그 상황에서 이치로와 정면승부를 펼치지 않았을 것이다. 사인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타임을 걸고 벤치에 확인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 중차대한 순간에는 더욱 그렇다.
당시 야구계와 국민들은 한국야구가 WBC에서 준우승을 했다고 열광했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일본을 누르고 우승할 수 있는 기회를 어이없는 플레이로 날려버린 셈이었다.
한국야구가 언제 또 다시 WBC 같은 대회에서 결승에 올라갈지 모른다. 우승은 더욱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2009년 3월24일, 한국과 일본의 WBC 결승전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미는 건 필자뿐일까.
김인식 감독은 이 대회 이후 ‘국민 감독으로 칭송받고 있다.
[매경닷컴 MK스포츠 편집국장 dhkim@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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