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맥] 또 다른 11명을 위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현재의 국가대표팀은 사실 일찌감치 틀이 잡힌 팀이다. 2009년 U-20월드컵을 시작으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거쳐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이어진 홍명보 감독과 ‘그 아이들의 역사는 꽤 깊어졌다. 그리고 그 흐름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흐름 속 멤버가 현재 홍명보호의 주축이라는 것도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이는 잘못된 것도 아니고 문제가 될 것도 아니다. 홍명보 감독이 선호하는 선수들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기량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성용 구자철 홍정호 김영권 등은 홍명보 감독의 지도 아래 대한민국 대표 축구선수로 성장했다.
이처럼 오래도록 호흡을 맞춰온 선수들이 다수 포함된 덕분(?)에 홍명보호는 빠르게 팀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최근 부진을 거듭한 홍명보호가 조직력을 갖췄다고 하니 팬들의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다. 이 평가는 ‘기본 틀을 중심으로 치른 경기가 대상이다. 소위 ‘홍명보의 아이들로 불리는 선수들에 몇몇 유럽파가 가세해 치른 경기와 국내파들이 중심이 된 경기들은 번번이 느낌이 달랐다.
결과적으로 2일 미국전에서의 0-2 패배와 함께 막을 내린 해외 전지훈련도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그리움만 키워놓은 꼴이 됐다. 국내파들의 간절한 승부욕을 자극시켜 팀 전체적인 시너지를 키우겠다는 복안으로 진행된 전지훈련이었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몸도 마음도 허망하게 만들었다.
패할 수는 있으나 내용이 졸전에 가까웠다는 게 문제다. 멕시코전에서 나온 문제점이 미국전에서 반복됐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팬들의 성토는 ‘국내파의 기량 미달 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번 전지훈련의 가장 큰 손실이다. 홍명보호는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홍명보 감독이 부임 후 줄곧 강조하고 있는 ‘원팀의 길과는 역행하는 구도다.
몇 명이 합류할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이번 전지훈련을 뛴 국내파들 중에서도 브라질행 비행기에 탑승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베스트11에 포함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큰 대회에서는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없어야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국내파들의 기운을 떨어뜨린 셈이 된 이번 전지훈련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홍명보 감독이 최종엔트리의 80%는 결정됐다”고 말한 것을 비롯해 사실상 큰 틀에서의 윤곽이 결정된 상황에서 괜스레 형식적인 훈련 아니었냐는 지적도 있다. 때문에 선수들의 동기부여가 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축구선수로서 일생일대의 꿈같은 월드컵에 나가고 싶은, 눈도장을 받지 못한 선수들의 간절함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20%가 아니라 2%로라도 희망이 있다면 불속이라도 뛰어들고픈 이들이 대다수다. 어차피 내 자리는 없으니 열심히 뛰지 않아 나온 결과라는 해석은 적어도 이번 전지훈련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다만 우려는 생겼다. 월드컵에서 주전 11명만큼 중요한 다른 11명에 대한 걱정이다.
어차피 대회를 치르는 주축인원은 13~14명 선이다. 이 인원이 팀의 성적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벤치를 지키는 10명~11명이 합심하지 못한다면 좋은 성적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유경험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2002월드컵 멤버들이 항상 말하는 것이 우리는 23명이 똘똘 뭉쳤기에 4강이 가능했다”라는 자부심이다. 홍명보 감독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고민일 것이다.
홍명보호에 중요한 숙제가 떨어졌다. ‘원팀을 중시하고 강조하는 홍명보 감독으로서는 더더욱 집중해서 해결해야할 과제다. 주전 11명만큼 중요한 11명을 소외받지 않는 전력으로 끌어안을 수 있느냐의 여부는 브라질월드컵 성패의 중요한 열쇠다. 2002월드컵과는 상황이 또 다르다. 그땐 유럽파가 드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절반이다. 박탈감이 더 커질 수 있다. 한때 홍역을 치른, 국내파와 해외파 갈등 이야기가 다시 나올 수도 있다.
시간은 이제 베스트 멤버를 결정하라고 보채고 있다. 암암리에 깔려 있던 주전과 비주전의 구도는 아예 명확해질 것이다. 또 다른 11명을 위한 홍명보 감독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가 찾아왔다.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