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사랑할 때’, 황정민이어서 눈물이 난다

황정민(43)의 사랑은 투박하다. 촌스럽고 때론 저돌적이며, 세련된 이별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이런 아날로그적인 사랑은 추억을 일깨우고, 가슴을 저미게 해, 끝내 크리넥스 티슈를 찾게 한다.
22일 개봉한 ‘남자가 사랑할 때(한동욱 감독) 역시 낯설지 않은 ‘황정민표 멜로다. 가난한 남자의 따스한 사랑과 이별 얘기를 그렸다. 새로울 것 없는 사랑 얘기지만, 이 영화는 수컷의 사랑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교도소를 집처럼 들락거리는 뒷골목 일수꾼 태일(황정민). 대책없는 이 남자는 아직도 형 집에 얹혀 산다. 조카한테 삥 뜯기기도 일쑤다. 여자에게 다가갈 땐 바지부터 내리고 보는, 평생 사랑과는 거리가 멀 것 같던 남자. 그런데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호정(한혜진)을 만나면서 사랑에 눈을 뜬다.

‘너는 내 운명 이후 9년 만의 정통 멜로. 최근작에서 사나이 소굴에서 살다시피 한 그였는데, 왜 이 타이밍에 멜로일까.
신파에 통속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진심과 진정성 때문이죠. 가을이면 멜로 영화 한 편씩 나오곤 했는데 점점 사라지는 현실도 안타까웠고… 30대가 아닌 40대 중반에 멜로 연기하는 제 모습도 궁금하더군요. 하하!”
오랜만에 멜로 연기를 해 본 소감은 신나고, 설레고, 여전히 어렵다”였다. 남녀 간에 흐르는 공기, 잔잔한 떨림, 쾌감마저도 새로웠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것이 사랑 연기더라”며 멋쩍게 웃는다.
사랑 연기는 어렵고 힘들지만, 가장 행복감을 줘요. 1차원적이고, 촌스럽고 올드하지만 그게 사랑인데 어쩌겠어요. 시대를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잖아요.”

‘태일은 전작 ‘신세계 속 ‘정청과 닮아있다. 거친 삶을 살아왔고, 입에 욕을 달고 살고, 말 보다 주먹이 앞선다. 또, ‘너는 내 운명의 우직한 ‘석중도 떠오른다.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두 작품 속 캐릭터가 나란히 오버랩 된다.
당연한 현상일 겁니다. 묻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해요. 굳이 석중과 태일을 비교하자면, 개인적으로 태일이 더 좋아요. 석중은 드라마틱한 요소가 강했다면, 태일은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이잖아요.”
그의 말마따나 ‘태일은 군산 뒷골목 어디선가 진짜 살다갔을 것만 같다. 눈빛, 옷매무새, 말투, 껄렁껄렁한 걸음걸이까지 황정민은 완벽한 ‘태일이었다.
캐릭터와 한 몸이 되기 위해 화려한 문양의 셔츠, 유행 지난 기지 바지, 일수꾼 가방, 헤어 스타일, 피부 상태까지 깨알같이 준비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건달답게 보이려” 노력했다. 흔한 얘기로 들릴까 생략됐지만, 뇌종양 시한부 인생을 연기하기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도 했다.
‘남자가… 앞에 ‘비로소란 말이 생략됐다고 생각해요. 왜 ‘남자가 사랑할 때일까를 생각해봤는데, 비로소 단 한 번의 사랑을 만났다는 절박함의 극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형, 조카, 가족을 사랑할 때 진정한 남자가 되어간다는 의미로도 느껴지거든요.”
상대 역 한혜진과의 호흡은 거슬림이 없다. 황정민은 남자들과 눈 부라리고 싸우다 여배우와 연기하려니 처음엔 어색해.눈을 못 맞추겠더라”며 웃었다. 그런데 당초 그녀가 캐스팅 됐을 땐 너무 예뻐 어떡하지?” 했단다. 지방 수협 직원치곤 고와도 너무 고운 얼굴이 아닌가 했다.
너무 맑은 친구더라고요. 방송에서 본 느낌과 달랐어요. 직접 만나니 수수하고 평범한 느낌이 강했죠. 아무리 상대 배우가 중요하다고 해도, 저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잘 하면 다른 사람도 안고 갈 수 있다 생각해요.”
연기에 대한 호평도 보냈다. 호정(한혜진)의 버스 엔딩신을 이번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는다. 그가 등장하지 않는 신이다.
태일이 떠난 7개월 후 호정이가 버스를 타잖아요. 스스로도 평상심을 찾은 줄 알았던 한 여자가 문득 기억이 떠올라 모든 걸 내려놓고 우는 얼굴이 너무 좋았어요.”
황정민의 차기작은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이다. 3월부터는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테랑 촬영에 돌입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강영국 기자]